국립중앙박물관은 멋진 공간이다. 우선 멋지게 지어진 건물은 그 자체로 시대에 남을 걸작이다. 정문으로 들어서 호수가 있는 정원을 가로지르면 가운데가 사각형으로 뚫린 넓고 웅장한 건물이 나온다. 사각형 통로 뒤로는 남산이 보인다. 한옥을 지을 때 창을 경치가 좋은 방향으로 내어 창 밖의 경치를 집안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차경(借景, 빌려온 풍경)이다. 멀리서 보는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은 한옥의 차경을 떠오르게 한다.
파리의 북쪽 라데팡스에 가면 가운데가 사각으로 뚫린 거대한 사각형 건물이 있다. 그랑아치라고 불린다. 이 밑에서 파리를 바라보면 멀리 일직선으로 개선문과 샹델리제 거리를 따라 이집트에서 훔쳐 온 오벨리스크까지 보인다. 이도 정말 장관이지만 차경이라 하기에는 그 밑에 가야 볼 수 있는 풍경이고 아름답지만 인간이 만든 인위적 조형미일 뿐이다. 그도 좋고 이도 좋은 것을 무어 그리 비교하냐고 하겠지만, 나는 가까운 곳에 산을 두고 조형에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서울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화제가 되었던 특별전시를 여럿 개최하였다. 하지만 나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만으로도 이미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판테온처럼 원형의 천장에서 빛이 내리쬐는 상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널찍한 구조를 지닌 시원한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1층은 각 시대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언뜻 투박해 보이지만 인간이 가진 미적 형식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2층에 사유의 방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두 분의 반가사유상이 모셔져 있다.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에 올리고 한 손을 턱을 데고 사유하는 부처의 모습이다. 넓은 방에 단 두 개의 반가사유상만 전시되어 있다. 벽은 황토로 바르고 어둑한 실내에 두 반가사유상의 위로 조명을 비추어 집중도를 높인다. 이곳에 오면 사유하는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보며 사유할 수 있다. 아주 조금씩 각도를 바꾸어 가며 두 반가사유상을 관찰하면 매번 다른 표정이 나오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반가사유상처럼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두 반가사유상과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비교하면 동서의 문화적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다. 로뎅의 작품은 근육질 남성이 무언가 심각하게 고뇌하는 모습이다. 생각이 끝나면 그 탄탄한 몸으로 뛰쳐나가 바로 행동에 옮길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반가 사유상의 얼굴은 고뇌가 아니다. 석가모니가 출가 전 생로병사를 고민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현실을 바꾸기 위한 고뇌보다는 연유를 살피고 근본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유의 모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간을 기획한 누군가에게, 기획을 실현하기 위해 땀 흘린 분들에게, 이 나라에서 이런 멋진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한 시대의 공로자들에게, 그 안을 빼곡하게 채우고 우리의 사고와 문화의 원류를 이루고 있는 먼 곳부터 가까운 곳의 선조들에게 깊이 감사를 올린다.
지금 우리의 삶의 모습도 언젠가는 유품으로 남아 어느 곳에 전시되고, 그것으로 그들은 우리와 우리의 시대를 설명할 것이다. 문득 모든 것을 조금 더 아름답게 가꾸고 혹은 꾸미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일상에 조금 더 고양된 정신의 흔적을 남기고 정제된 기록들을 남겨야겠다고. 이 시대가 너무 천박해 보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