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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롱쓰 Aug 18. 2022

하프마라톤

‘몰입’을 원한다면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아요. 일 년 내내 스포츠 이벤트가 있는 미국에 살아도 그럴 수 있습니다. 보스턴과 시카고에 살았어도 야구선수 이름은 몇 명 모릅니다. 보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좋아한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경쟁적인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나는 때로 어느 분야에서는 굉장히 경쟁적이 되기도 합니다. 또 운동 후에 오는 성취감도 꽤나 좋아하는 편입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팀 운동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거든요. 내 성격상 그걸 싫어해서 꺼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패스를 실패하면, 내가 골을 넣지 못하면, 내가 골을 허용하면, 팀원들 모두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 버리니까요.


이런 생각이 있으니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나게 그 스포츠를 즐긴 적이 별로 없어요. 미안하고 신경 쓰이고, 몸도 피곤한데 머리는 더 피곤해져요.


나이가 들면서 나도 취미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습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을 보면 늘 부러웠거든요. 스타크래프트도, 프로야구나 축구도, 악기나 춤 같은 것. ‘몰두’하고 ‘몰입’한다는 것이 주는 멋이 있어요. 누군가는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몇십 분을 넋 놓고 보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앞에서 ‘몰두’해보려고 했는데 난 안됐어요.


그러다가 달리기를 하게 됐죠. 뭐 어려운 운동은 아니니까요. 아는 부부의 집에 놀러 갔다가 A가 특이한 시계를 차고 있어서 자연스레 달리기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안 그래도 몇 주 전부터 밤에 혼자 몇 번 뛰어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배울 겸 A와 한번 뛰어봤는데, 내가 호흡은 나쁘지 않더라고요. 근육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문제지.


그렇게 Garmin 시계를 사고 달리기 시작했어요. 여러 상황 때문에 당시에는 내 머리가 너무 복잡했거든요. 그래서 밤에 나가서 뛰는 그 한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생각도 덜하게 되고 오히려 고민거리가 단순해지고 선명해져요, 근육이 아픈 것에 집중하니까. 호흡이 가빠지면 머리는 명료해져요.


12주 계획을 잡고 하프마라톤을 준비했죠. 문제는 이런 거 등록해본 적이 없어서 “트레일 런”을 등록했다는 거였어요. 트레일도 뭐 길이니까, 똑같은 거겠지 하고 등록했는데. 두 주 전에서야 이게 산길을 뛰는 거란 걸 알았어요. 어떻게 해요 돈은 냈고 뭐 뛰어야지. 그렇게 산길에서 죽죽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고 첫 하프마라톤을 뛰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


그리고 두 달 후에 온라인 하프. 다시 두 달 후에 정식 하프마라톤을 뛰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정말 추운 것도 모르고 매일 뛰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들은 말인데, 마라톤은 겨울 스포츠라고. 여하튼, 그리곤 오래 쉬었어요. 다른 주로 이사 와서 적응도 해야 했고, 뛸곳도 마땅치 않다는 핑계였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등록을 했고 준비 없이 뛰었는데 결과는 처참했어요. 그래도 완주를 했다는 사실에 약간 뿌듯했습니다.


아 그런데 준비 없이 무지하게 힘들게 완주를 하고 나니까 다시 뛸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몸의 기억은 중요한 거 같아요. 어쨌든 그렇게 9개월을 쉬었고, 이제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11월에 있을 하프마라톤이 목표죠. 시간 목표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냥 두 시간 안에만 들어오면 땡큐죠. 두 시간 넘는 페이스로 뛰면 몸이 너무 힘들거든요.


스포츠는 좋아하지 않는데 마라톤은 한다니… 말이 안 맞아요. 정확하게 말하면 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겠네요. 노력하고 게으른 결과를 오롯이 혼자 감내한다는 게 마라톤의 매력인 것 같아요. 못 뛰어도 다른 사람 기록을 깎아먹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운동하는 동안 누군가와 부단히 대화하며 만들어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스스로 생각하면 되고, 내 컨디션대로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에요. 그래서 내가 진짜로 ‘몰입’ 할 수 있는 운동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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