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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롱쓰 Aug 19. 2022

돌과 모래를 삼천불어치 사 왔다. 아내가.

뒷마당 프로젝트_1

미국에 유학온 지 벌써 13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우와 십 년이요?"라고 어떤 결혼하신 분께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내가 벌써 그보다 더 오래됐다니 시간참 빠르다. 한국인으로 살고, 한국밥 먹고, 한국예능보고 하니 미국에 산다는 걸 실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다 가끔 "아 내가 한국 사람이고 나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하고 실감하는 때도 있다. 영주권의 남은 기간을 확인할 때, 여권을 갱신할 때, 세금 신고할 때 등... 


"내가 미국에 참 오래 살았구나"라는 걸 느낄 때도 있다. 수도배관과 전기 스위치가 고장 나면 유튜브를 먼저 검색해보고, 부품을 사러 홈디포에 갈 때. 마룻바닥이 끼익 끼익 거릴 때 고치려면 얼마나 들지 걱정할 때. 일 년 동안 잡초만 자라던 뒷마당에 직접 바닥을 깔아보려고 할 때. 


처음부터 직접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돈이 있었다면 사람을 썼을 것이다. 드라이브 웨이를 공유하는 옆집이 뒷마당에 멋진 정원을 만들고 있길래, 대강의 비용을 물어봤다. 바닥 작업하고 돌 깔아주는데 만불이 들 거고, 펜스를 치는데 8천 불 정도 든다고... 옆집은 돈이 많군. 나는 그렇지 않으니 서둘러 자재비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3천 불 정도면 마당 작업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거든. 


하지만 일단 3천 불이라도 손에 쥐고 있는 건 아니라서, 일단 땅을 파기 시작했다. 대강 어느 정도의 흙을 파내야 되는지 알 리가 없다. 삽을 들고 파기 시작했다. 잡초는 제거하고 땅을 뒤엎고. 문제는 바닥에 큰 바위와 나무뿌리가 엄청나게 많아서 다 파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숟가락으로 두부 뜨는걸 생각한건 아니었지만, 직접 하는 건 말도 안 되게 어렵고 힘들었다. 일단 후퇴. 땅을 그대로 두었다. 내가 할 일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문제는 갈아엎은 땅에서는 잡초가 그전보다 2-3배는 더 빨리 자랐다. 

저 잡초밭을 갈아엎고, 흙을 퍼다 버렸다. 흙버리는데만 350불.

시간 날 때마다 잡초를 뽑아주고, 손댈 수 있는 곳만 끄적 대면서 석 달을 보냈다. 가장 무더운 한여름에는 어차피 아무 일도 못하니까. 이제 더 이상 핑계 댈 수 없는 8월이 왔다. 죽을 듯한 더위는 조금 약해졌고, 지금부터 작업하지 않으면 눈 오기 전에 마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저 뒷마당의 잡초 뽑느라 쓰는 힘이 더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손해보고 있던 주식을 팔아서 돈을 마련했다. 돌, 자갈, 페이버 등등을 주문하는 업체에 찾아갔고 말 그대로 질러버렸다. 내가 아니라 아내가. 


현금으로 좀 더 싸게!! 해서 3천불. 남는 건 시간이요. 없는 건 돈이다. 배달을 완료하고 나니 압박감이 느껴진다.

아내는 이런 일에 나보다 더 용감하다. 지난번 집 바닥을 깔 때도 그랬다. 내가 2달 동안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코스코에서 바닥 자재를 그냥 주문해버린 적이 있다. 차고에 바닥자재가 마감날처럼 쌓여 있으면 더 이상 중얼거리는 건 의미가 없다. 조금씩이라도 무언갈 해야 했다. 그렇게 바닥을 깔기 시작했다. 가구가 집안에 가득 있는 채로 바닥을 깐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해냈다. 유튜브에 보면 쉽게 빠르게 하던데. 내 작업은 느리고 지저분했다. 


바닥을 깔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디테일이었다. 기존 바닥을 제거하지 않고 그 위에 얹는 식으로 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조금 높아지는 건 예상했지만, 화장실 변기 쪽은 생각하지 못했다. 화장실 변기를 바닥으로부터 들어내서 작업을 하고 다시 놓아야 했다. 문지방은 어떻게 마무리할지, 코너는 어떻게 잡을지 등등. 큰 면적은 말 그래도 그냥 하나씩 "조립"만 하면 되는데, 디테일이 결국 힘든 일이었다. 그런 건 유튜브에 잘 안 나온다. 


한번 해보고 나니 다 쉬워 보인다. 하면 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로 쉬운 건 아니었다. 지금 뒷마당이 딱 그렇다. 하면 할 것 같은데, 왜 몸이 움직이질 않지? 경사로를 잡아주고, 바닥작업을 하고, 리테이닝 월을 놓고 자갈을 깔고 평탄화를 하고 돌을 놓는다. 아 이렇게 쉬운데, 하면 금방 하지. 말이 앞서는 사람을 조심해라. 말로는 집 한 채를 벌써 지었다. 돌들 간 수평을 맞추는 일, 나무뿌리를 뽑는 일, 바위를 제거하는 일, 넓은 땅을 평탄하게 (그러면서도 약간의 경사가 있게) 하는 일은 그저 나가서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



눈오기전에 마칠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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