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 번은 더 가보고 싶은 여행지
작년 연말 휴가는 하와이였다. 총 다섯 친구의 가족들이 하와이에서 모이자고 연초부터 계획해오던걸 실행했다. 하와이라니. 이렇게 말해놓으니 끝내주게 멋진 삶을 사는 사람 같군. 실상은, 해야 할 일들 미리 황급히 처리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가지 못한다고 통보하고, 연말에 잘 해냈어야 하는 일들을 펑크 내면서 억지로 다녀온 것이다. 나뿐 아니라 모인 친구들 모두 각자가 눈치 보면서 꾸역꾸역 온 자리였다. 에어비앤비로 집을 두채 빌리고, 차를 세대 렌트하고, 다섯 가정의 일정을 맞추는 등 어려운 일들을 다 마친후에 카우아이 섬 포이푸에 마침내 모였다.
하와이는 크게 다섯 개의 섬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가장 북단에 있는 섬이 카우아이다 (밑에서부터 하와이, 마우이, 몰라카이, 오아후, 카우아이다). 이 섬을 고른 이유는 다른 거 없고 계획을 한참 짜던 작년 중반쯤에 원래 가려던 하와이 섬에서 화산 폭발이 있어서 부랴부랴 섬을 변경했고, 그나마 싼 곳이 카우아이였다.
수년만에 친구들이 서로 만나 가족들과 함께 모이니 참 낯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명절 때 대가족이 모이면 이런 느낌이려나? 아이들이야 저들끼리 놀고 심심해하고 하면 그만이고, 어른들은 한편에 모여 앉아서 옛날이야기도 하고. 애 키우는 이야기도 하고... 중간중간 일부러 밖에 나가지 않았다면, 지금 하와이에 와있는 건지 아니면 강원도 어디쯤에 펜션 빌려서 놀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 여행은 목적지보다 누구랑 가는지가 중요하다는데, 이런 의미였을까.
여행을 가보면 "아 와봤으니 됐다" 싶은 곳이 있고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다. 카우아이 섬. 우연히 정해지긴 했지만 분명히 후자다. 빅아일랜드는 이번에 짧게 며칠 들른 것 까지 포함해 두 번 갔었고, 오하우도 다녀왔는데 카우아이는 이중 가장 "다르다"라고 할 수 있다. 인구밀도도 가장 낮을 것이고, 큰 도시가 없다. 섬의 대부분을 개발하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둔것처럼 보인다. 쥬라기공원같은 야생 그대로의 자연풍광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이 섬에서 많이 찍었다고 하는데, 헬기에서 내려다보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가 간다. 이 섬은 뭔가 비현실적이다. 어딜 가든 닭이 뛰어다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산은 깊고 자연은 그대로다.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든 곳이 더 많다.
작은 섬이라 좋았다. 다운타운이라 봐야 섬 전체에 두 개 정도 있을까 하는 정도인데 그게 걸어서 5분 정도면 끝까지 갈 수 있는 도로 하나 정도다. 가야 할 곳이 엄청나게 많아서 고민해야 한다거나 그럴 필요도 없다. 가기 전에는 지도를 보면서 어디를 가지? 고민이 참 많은데 정작 가보면 섬에 가볼 데가 몇 군데 없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 만에 다 보고 올 정도로 가볍지도 않다. 참 애매한 건데, 이게 불만이라기보다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동남아 시골 여행지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랑 비슷한 감정이었다. 해변을 따라서 간혹 나타나는 아주 작은 번화가들과, 그 뒤로 주거지들. 그리고 그 너머에 더 큰 논밭들과 산, 계곡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마주치는 영어 표지판이 아니면 여기가 미국인지 잊게 된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아주 작은 다리다. 북쪽 프린스빌 (Princeville)로 가는 길에 있는 차 한 대만 지날 수 있는 다리를 지날 때는 뭔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구불구불하고 좁은 도로를 지나오며 긴장했던 어깨가, 이 다리를 지나면 넓게 펼쳐진 논밭과 그 너머로 싸고 있는 산들을 보면서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그 길 끝쯤에 나타나는 아주 자그마한 번화가와 바닷가. 하와이 어디를 가든, 다 평화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또 그걸 기대하고 하와이에 가는 걸 테지. 카우아이는 그중 으뜸이다.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십년이 지나서 가도 내가 지금 봤던 그 장면 그대로 있을것 같다. 사람만 바뀐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