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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quum Dec 20. 2023

모야 퀘스트: 전자빵

릴리쿰이 쓰는 2023년 모야 퀘스트 회고 (2) 전자빵 편

2023년 전국 모야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 모야 퀘스트 중 ‘전자빵'에 대한 회고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전자빵’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볼까요? 

‘전자빵'은 모터가 주가 되는 전자회로를 만들기와 결합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한, 일종의 키트입니다. ‘전자빵’이라는 것은 어린이 각자가 ‘구워낸’ 만들기 작품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죠. 

이름이 특이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데, 어째서 이런 이름이 나왔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년에 진행한 프로젝트인 ‘전자빵밭'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전자빵밭'


‘전자빵밭'은 작년에 실행한 퀘스트입니다. 모야의 작은손들을 위해 기획한 전자회로 만들기 프로젝트였죠. 목표했던 것은 혼자서는 시도해 보기 어려운 회로를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이얼을 돌리면 빛의 밝기가 변한다거나, 어두운 곳에 가면 불이 켜지고, 밝은 곳에 가면 꺼지는 회로. 스위치를 활용해 리듬 연주를 할 수 있는 회로 등 작은손이 재미있어 할 회로를 7가지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안정성이었습니다. 전기는 예민한 녀석이라 아무리 간단한 회로라도 어딘가 연결 하나가 헐겁거나, 의도치 않게 간섭이 일어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실수, 실패는 괜찮지만, "다시는 안 할래!" 같은 좌절을 주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전선과 소자를 꽂는 것만으로 연결이 되는 브레드보드, 즉 ‘빵판’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빵판에 꽂는 방식이라면 소자에 전선을 꼬아 붙이고, 별도로 고정할 필요 없이 제작할 수 있으며 외부의 충격에도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회로 + 빵판 


빵판에 일렬로 늘어선 구멍이 마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골라둔 밭 같은 느낌이어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전자빵밭'으로 정했습니다. 우선 이 ‘밭'에 안정적으로 전자회로의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나면, 그 결실로 자신의 작업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획은 실패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난이도

전자회로 제작 워크숍을 해보면 의외로 성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게 빵판(브레드보드)입니다. 설명을 들어도, 빵판에 가이드선이 그려져 있어도, 이게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선뜻 시도하기를 힘들어하죠. 그런데 이걸 어린이 대상으로 가져오니 그 부분이 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전기로 하는 작업을 즐기기도 전에 ‘빵판의 원리 이해'라는 거대한 산을 먼저 넘어야 하게 된 거죠.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여 반영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질문 세례에 시달리게 된 오른손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개인 작업의 어려움

지금까지의 관찰에 따르면, 대다수의 작은손들은 자신만의 완결된 작업물을 만드는 것. 그것을 소유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어른의 눈엔 별것 아닌 것도 애착을 담아 보물 상자에 소중히 모으는, 그런 욕구가 자신의 작업물에도 적용됩니다. 하지만 ‘전자빵밭'의 경우엔 제작 후 결과물을 공동의 작업 공간에 모아두도록 안내했습니다. ‘전자빵밭'이니 다양한 회로 씨앗이 심긴 밭들을 모아서 보고, 다른 씨앗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길 바랐죠. 의도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작은손들의 참여 욕구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어버렸습니다. 


확장의 제한

이 프로젝트에는 빵판, 빛센서, 가변저항 등 평소 모야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부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경험, 제작을 기뻐해 주길 바라 넣은 것들이었지만, 문제는 우리가 제공한 것을 소진하고 나면 작은손이 그 경험을 계속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브레드보드의 정해진 위치에 소자를 꽂아 회로를 완성하고, 

그것이 동작하는 것을 본 뒤, 

공동의 공간에 두고 돌아간다.


이렇게 써놓으니 정말 매력 없네요. 

어째서 시작 전에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물론 제작의 확장을 즐거워한 작은손도 있었고, 그걸 반겨주신 모야도 있었습니다만, 돌아볼 때 저희에겐 이 세 가지 단점이 꽤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그 세 가지 단점을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 빵밭에 씨앗을 심고 끝내는 게 아니라 수확물을 확실히 즐길 수 있게 하자.   

 - 만들 때 바로 회로를 적용할 수 있게 해 별도의 이해나 공부가 필요하지 않게 하자.  

 - 모야에 있는 재료만으로도 만들 수 있게 해 재료가 소진된 후에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하자.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었고, 다양한 ‘씨앗’을 심기보다는 평소 작은손들이 관심은 많지만, 쉬이 활용하지 못하는 모터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올해 나온 것이 ‘전자빵'입니다.



전자빵


전자빵은 모터의 특성을 활용해 세 종류의 움직임을 내도록 기획했습니다.

모터를 기어와 결합해 바퀴를 돌리는, 굴러다니는 빵
무게중심을 삐뚜르게 잡아 퉁퉁거리게 만든, 튀어오르는 빵 
회전그네나 애니메이션 제작을 경험할 수 있는, 회전하는 빵 


세 종류의 빵 모두 뼈대로 저희가 직접 제작한 MDF 막대를 이용하지만, 이것은 모야의 기본 재료인 아이스크림 막대와 정확히 같은 크기로, 제공된 것을 모두 쓴 다음에도 원한다면 아이스크림 막대를 가공해 활용할 수 있습니다.


메인 소자인 모터와 배터리 케이스 역시 모야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입니다. 


난이도는 회전하는 빵 > 튀어오르는 빵 > 굴러다니는 빵 순으로 차이를 두어 쉬운 것부터 도전할 수 있게 하였고, 이번만큼은 오른손이 질문 세례로 힘들지 않게 작은손이 바로 참고할 수 있는 동영상, 그림, 텍스트 세 종의 매뉴얼을 제작해 함께 제공하였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electronrecipe


이번만큼은 괜찮아! 잘 만들었어! ᕦ(ò_óˇ)ᕤ


꽤 자신했었는데 말이죠.


작년 ‘전자빵밭'의 악몽 탓일까요. 

전자빵을 신청한 모야는 다섯 군데에 그쳤습니다. -_ㅜ 

(그에 비해 신청이 쇄도한, 심령사물... 부럽다... 질투난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전자빵을 신청한 모야의 작은손들은 멋진 작품을 보여주었고, 세세하게 제작한 매뉴얼 덕분에 전자빵을 신청하지 않은 모야도 매뉴얼을 참고해 모야의 재료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자-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한 번 보시죠!

회전하는 빵위에 색을 칠해보는 율목도서관 작은손


튀어오르는 빵에 펜을 고정해 움직이는 성을 만들고 싶은 양정달팽이 작은손 작품 - 가이드를 변형해 4개의 축을 가지도록 했다.


회전하는 빵위에 폼폼이를 붙여 입체적으로 만든 위스테이 별내 작은손


굴러다니는 빵을 변형 제작한 양정작은 달팽이 작은손 작품


멋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글은 여기서 팡파레를 울리고, “와!!! 이번엔 잘했어!!” 자축하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은 여기가 끝일 테죠. 


퀘스트 운영이 끝난 후 오른손이 작성해 주신 피드백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 다음이 있다면 보완해야 할 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모야의 오른손들은 정말 착실한 관찰자이십니다. 눈 찡긋. 엄지 척.

우선 우리는 키트의 개수 배분에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키트의 난이도는 회전하는 빵 > 튀어오르는 빵 > 굴러다니는 빵 순입니다. 제공 개수는 1:1:2 비율로 정했습니다. 굴러다니는 빵, 즉 자동차 만들기가 가장 인기가 많을 거라고 예상했죠. 하지만 전달받은 피드백은 ‘회전하는 빵과 튀어오르는 빵의 소진이 빠르다. 개수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난이도가 낮은 것에 먼저 도전해 보고 이를 경험함으로써 다음으로 넘어가게 마련인데, 이 점을 간과해버린 거죠. 어른 만큼은 아니지만, 어린이들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어려워한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다음은 안정성 문제였습니다. 

키트를 만들면 모터 부분이 뜨거워지는 부분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사실 전기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바뀔 때는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좀 뜨거워졌군- 정도에 그치나 회전이 잘 안되어 과전류가 흐르면 과열로 전선이 녹거나 모터가 타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차이를 구분하는 법, 그리고 방지하는 법에 대해 친절히 안내하지 못한 것을 반성했습니다.


다음에 해결해야 할 것들이 정해졌네요. :)


전기로 불빛이 들어오게 한다거나, 소리를 내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참 매력적인 기술입니다. 그래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만들기에 지친 작은손에게 살짝 동기부여를 줄 때, LED에 불이 들어오는 걸로 유혹하곤 하죠.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건 쉬운데, 나중에 작은손이 스스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꼭 뒤따르곤 합니다. 그래서 전자빵을 경험한 작은손은 ‘전자작업이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고장 나도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럴 힘을 주는 퀘스트였길 바라요. ;)

 

글 _ 상호 & 물고기(릴리쿰)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은 도서관 속 어린이 작업실 '모야 MOYA'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떤 팀들이 모여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도와 시도를 담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어린이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궁금하신 분,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의 변화를 상상하는 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릴리쿰, 도서문화재단 씨앗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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