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는 이유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을 때 다른 선생님들이 해외여행을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왜 하고 많은 대한민국을 내버려두고 해외여행을 가느냐?’라고 반문을 하였다. 돈이 아깝기도 하고 굳이 멀리까지 나가서 여행을 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나라 여행에라도 충실해야겠다면서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둘 다 여행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가오는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해외 연수단에 선정이 되고 의도치 않게 홀로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다녀오면서 사실 느낀 점이 많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꼈던 일상적인 말이 어느 순간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과 전혀 다른 생활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 익숙하지 못한 것에 짧은 순간 익숙해져야 하는 자신, 여권을 잃어버리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고국에 대한 애뜻함. 가장 큰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나의 모든 익숙한 것들이 그리워진다는 점이었다.. 첫 여행의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매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서 전날 듣고 보고 느꼈던 것을 글로 남겨서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며 A4용지 30장이나 적었던 기행문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해외 연수단에 내리 3번이나 더 선정이 되어서 가기까지. 기록을 남기고 또 남겼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집의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참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지구의 땅덩이는 크고 너희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교사인 나 자신부터 더 많이 경험하고 느껴보아야 아이들에게 좀 더 생생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패키지 해외여행을 공짜로 다니면서 처음에 감동, 두 번째는 쬐끔 감동, 세 번째는 그냥 그렇게, 네 번째는 돈 내고 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하였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다른 나라를 경험하는 것은 닭장 안에서 바깥 세상이 이렇고 저렇다고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것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전세버스에 오르면 가이드님은 열심히 그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저는 사실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가이드의 이야기를 모두 기행문에 담으려고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듣고 또 들었다) 사람들은 바깥을 둘러보고 피곤했는지 태반이 자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가이드가 안내하는 곳만 가야지 다른 곳으로 대열을 이탈하거나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서도 아니 되는 일이었다. 한 번은 일본을 일주하는 패키지 상품에 따라 갔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아침을 모두 먹고 차에 올라타서 하루에 5, 6시간씩 버스로 이동하고 호텔에 들어오는 시간은 거의 10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정말 여행이 끝나갈 때쯤에는 여행이 아쉽고 어쩌고를 떠나서 도저히 제 몸이 감당이 안될 만큼 피곤이 밀려왔다. 요즘에는 중간중간 하루씩 자유일정을 주어서 알아서 여행하게끔 해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여행을 여행답게 해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유럽에서 만난 어느 가족도 하루 자유 일정을 주어서 베르사유궁전을 둘러보려고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만났었는데, 파리에서 3시간이나 떨어진 몽생미셀에는 다녀오면서 파리에서 30분도 안되는 베르사유 궁전을 가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장삿속이 보이는 행동이라 생각되었다.
가족을 모두 내버려 두고 혼자 열심히 몇 년에 걸쳐 여행을 다니다보니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도저히 패키지여행을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차츰 들었다. 그리고 그 해 6월에 결심했다. 이 번 여름방학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들과 함께 자유여행을 가리라.....그리고 6월 26일 날 홈쇼핑에 있던 항공권과 호텔을 묶은 상품인 에어텔을 결재했다. 당시 신종플루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고, 연일 사망자가 속출한다면서 뉴스로 나오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여행이라 무모함이 도를 지나쳤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4명의 가족이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는데 호텔과 항공권을 합쳐서 200만원이 체 되지 않았다. 당시 아이들의 나이가 첫째 아들은 7살, 둘째 딸은 4살이어서 이 아이들과 비행기를 오래 타지 않고, 도착해서도 이동이 많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고르고 고른 곳이 싱가포르였다. 도시국가인데다 경제력도 높아서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더 괜찮은 환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적중했지만, 뜨거운 날씨를 고려하지 못했다....ㅋ.ㅋ.
그리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 한 번도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가보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 아니 신혼여행 때 잠깐 다녀온 적이 있어서 그 때 여행사로부터 받았던 케리어에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아이들이 입을 옷이며, 선크림, 모자까지 다양하게 챙기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다. 아내에게는 첫 해외여행을 기념한다며 모자랑 신발, 수영복까지 사주는 일도 너무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행복은 떠나기 전이 40%이고, 여행을 가서 50%, 여행을 다녀와서 10%인 것 같다. 여행 전에 아이들 옷도 사고, 너무 재미있게 준비했고, 자유여행이다 보니 일정을 짜야 하기에 여행책자를 3권정도 구입해서 열심히 읽어보았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 위주로 살피다보니 여행 일정이 박물관, 과학관, 동물원, 식물원 등등. 어떤 여행 코스에도 없는 그런 일정을 짜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을 준비해서 다녀온 여행을 정말 우리 가족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사실 나는 여행 경험이 전무한 아내를 대신해서 현지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과 손짓 발짓을 해가며 예약을 해야 했고, 처음 가보는 곳이라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라 책에 있는 푸드코트를 찾아는 갔는데, 도저히 먹기 힘든 음식을 시켜놓고는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쩔쩔매던 기억, 4살 밖에 안되는 딸을 데리고 가야해서 거의 여행 일주일 내내 엎고만 다녔던 기억까지. 어느 하나 현실이 녹록한 것이 없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즐거웠던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하루에 하나 또는 두 곳만 정해서 다녔는데,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과학관을 가서는 과학관 내에는 물놀이 시설이 있다는 것을 차마 고려하지 않고 갔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하는지, 어쩔 수 없이 물놀이를 해도 된다고는 했지만, 온몸이 젖은 아이의 옷을 벗겨서 손으로 짜고 드라이기로 말리느라 30분 정도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 드라이기는 우리 때문에 고장이 나서 다음 사람이 사용하지도 못하게 되어서리... 그 당시 딸아이가 한 번만 더 놀게 해달라고 조르던 표정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직도 제게는 그 사진이 포토제닉이 되었다.
국내를 여행하는 일이 해외를 여행하는 일보다 훨씬 많은지라 아이들이 느끼기에도 해외여행은 특별하게 생각을 하는 것같았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잊혀 지지 않기 위해서 사진을 모아 사진첩을 만들었다. 이제는 10권이 넘었고, 아직도 지난 여행 이후 사진첩을 만들기 위해 사진만 정리하고 아직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여행 사진을 편집하면서 여행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고, 매 순간 어려웠던 일, 즐거웠던 일, 아쉬웠던 일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는 벌써 여행을 가고 있는 것이니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사치라고 한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여행이 사치가 되지 않을 여행이 되도록 각별한 신경을 쓰는 편이다. 우선 아이들에게는 여행비용이 얼마나 들고, 이 돈이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인지시킨다. 비록 어려운 살림이지만, 여행을 가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 속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아이들에게 인지시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수동적인 여행이 되는 것은 여행을 가지 않느니만 못하므로, 아이들에게 여행책자를 같이 읽자고 하면서 그들의 언어와 인사말,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을 우선 선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을 때 패키지에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을 한 곳 다녀왔는데, 바르셀로나에 있는 코스모카이샤라는 과학관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이 과학관은 가족 4명이 갔음에도 입장료가 8유로(우리 돈으로 1만원) 밖에 하지 않았다. 12시에 입장해서 5시쯤 나왔으니까 거의 하루 종일 일정을 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거의 대부분 체험하도록 꾸며놓은 공간, 아마존에 있는 가장 큰 나무를 직접 아마존에 가서 뽑아오기보다는 거기에서 나무의 본을 떠서 실제 나무처럼 만든 인공조형물까지.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보다 사실 더 많은 감동을 받고 왔다.
또한, 여행비를 마련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데, 대부분은 매달 조금씩 모은 돈일 이용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성과금이 나와서 그 돈으로 여행경비를 많이 충당하는 편인데, 요즘은 이 조차도 모으기에 살림이 팍팍하다. 여행 경비로 쓴 돈을 대충 잡아보아도 지금까지 합치면 제네시스 한 대는 충분히 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여행을 다녀와서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취미 활동이 생기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짐을 챙길줄 아는 것은 단과학원을 보내서 쓴 돈으로 겨우 공식 하나 더 외우게 하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이들은 또 꿈을 꿀 것입니다.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저도 같은 꿈을 꿉니다. 다음에는 아이들을 어디로 데리고 갈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 중에 첫 번째는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경.험. 바로 경험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책이 중요한 이유도 간접적인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옛말에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열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험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의 입장에서도 이런 경험이야 말로 아이들에게 다시 전달해 줄 수 있는 소중한 가치가 되니 그 어떤 것보다 값어치가 있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꼭 비싼 여행일 필요는 없다. 가까운 일본만 가도 된다. 우리가 일본인들을 욕하지만, 정작 일본을 다녀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의 근면함과 노력, 개개인들의 마음 씀씀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욕해야 할 것은 일본의 국민들이 아니라, 일본의 정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혐한으로 시끄러운 요즘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오면 놀랄 것이다. 정말 자기들이 생각한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을 듬뿍 받는다면 일본과 한국은 다시금 가까운 사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