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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자해지, 먹는 사람이 전 부치기

하기 싫은 일은 직접 해봐야 줄어든다. 역지사지?

김밥 매장에서 김밥을 직접 싸서 먹도록 하면 어떨까

체험학습 형태로는 환영받겠지만

매장운영은 안 될 것이다.


<김밥싸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사진은 찰스숯불김밥>


김밥은 준비단계만 보면 'slow food' 지만

구매행태는 'fast food' 다.

간편하고 영양밸런스도 있는 김밥이지만

싸서 먹으라면 그렇게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소풍 날 부모님이 솜씨 발휘해서 싸주는 정성이 '김밥'이다.


제사음식을 남녀 모두 고르게 준비한다면

명절 불만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조상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들끼리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것이야 나쁠리 없지만

준비과정에서 귀찮고 불편한 일이 발생하는 것은 싫을 수 있다.


주로 남성이 운전해서 먼거리를 이동하고 짐을 들고

여성은 제사음식 준비를 한다.

잘 분업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이 다른 것이 문제다.

'사서 먹지' 라는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조상님에겐 직접 정성을 들여야지' 라고 한다면 그건 강요다.


나는 좀 바쁜 편이고, 시간을 그런 곳에 쓰고 싶지 않다.

전을 부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많은 양을 부치는 것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다가 데워서 먹는 정도로 하고 싶다. (사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ㅎ)


집안 어르신 또는 가장이신 할아버님, 아버님의 신념에 따라 전을 부치고 모이는 것은

그 분들이 비록 젊은 시절 선대의 신념에 따라 고생한 바를 모르진 않으나

그로 인해 세대간 불만이 쌓일 수 있다.


먹고 싶은 사람이 직접 부치고 자기 부분 설거지하라고 한다면

사다먹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분명 신념있는분들 중에서도 직접 다 해먹는 행위의 부조리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남성들이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것이 늘어나면서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본다.


소설 '은하영웅전설' 을 보면,

'애국심 운운하며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보내는 당신들은 왜 안전한 수도에 계십니까' 라는 취지의 대사가 여러 번 나온다.

아마 김정은이 소대신참이 되어 전선에 투입되는 경험을 한다면 반전론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찰리쉰 자리에 김정은이...>


분업화된 사회에서 기획하는 이와 실행하는 이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모든 일을 다 똑같이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도산해야 하는 이념이나 방식을 강제로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차이 (기획자와 실행자가 다른 것) 로 인해 생기며, 이야말로 심각한 비효율을 낳는다.


거창하게 말하면

전부치기의 부조리함이 테러나 전쟁의 부조리함과 닮았다는 것? 도태된 제도가 유지되는 데에는 기획자와 실행자가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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