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길'
짠무 자박하게 물에 재워놨다가 고추도 썰어 넣고, 파도 썰어 넣고, 고춧가루도...
그거 먹음 소원이 없겠네."
"나는 멀건 미소 말고,
엄마가 항아리서 막 퍼온 된장 진하게 풀어서 무만 넣어도 그게 젤로 맛있는데."
....
"죽을 때까지 못 먹겠지.."
영화 '눈길'
새침한 부잣집 공주 영애와 영애처럼 이쁜 옷 입고 학교 다니고 싶은 종분이. 둘 다 거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다들 잘못 왔다. 그 기차에 실린 소녀들은 모두 잘못 왔고,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넓은 바다를 옆에 끼고 달렸다.
지옥 같은 곳, 그곳에서 짐승처럼 사느니 죽고 싶다는 영애 곁에서 종분이는 죽는 게 제일 쉽다며 희망을 차곡차곡 덮어준다.
똑똑똑 벽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지옥에서 벗어나길...
불편하고 아픈 역사, 수십 번 닦은 눈물이 멈추지 않고 다시 흐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밝은 영화이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멈출생각을 않지만..) 시린 아픔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를 잔뜩 건네주는 이야기이다.
고춧가루 팍 풀어 넣은 물김치에 밥 말아먹고 싶은 종분이와 진한 된장국 먹고 목화솜 이불 덮고 자고픈 영애. 조그마한 창문 아래, 대비 강한 조명 빛 속에서 여리고 고운 소녀들이 그 소박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게 너무 고와서 슬펐다.
시원한 김칫국과 진한 된장국, 그 강렬한 색 대비처럼 서로 다른 영애와 종분이가 이제 같은 희망을 품는다.
희망은 절망보다 강한 힘을 가진다. 종분이의 삶에 대한 긍정이 영애의 절망을 목화솜 이불처럼 포근하게 덮어주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소녀에게 소녀가 대답한다.
'미안하다 사과할 놈은 안 하는데 니가 나한테 미안할게 뭐 있어.'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좀 쉬워지냐며 묻는 소녀에게 소녀가 대답한다.
'이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니. 그래도 살아져... 벌써부터 걱정 말아.'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세상에 스스로 상처받을 필요 없다.
목화솜 마냥 하얗고 푹신한 눈 길 위로 한발 한발, 그렇게 살아진다.
하늘이 눈시리게 예쁜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