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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15. 2017

지금 행복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창훈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체벌이 끝나면 교사는 지난주에 했던 훈계를 다시 했다.


피아노만 열심히 친다고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는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원하는 상급학교에 갈 수 있고 상급학교에서도 열심히 해야 유학을 갈 수 있다,

그래야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고 원하는 직장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행복해진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라.......


"지금 행복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_ 잡.다.한 책읽기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_한창훈

어느 측량사가 한 섬에 남는다.

그 섬은 너무나 거친 자연환경 탓에 무인도로 버려져 있던 섬이다. 국토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가 잠시 들어와 있었지만, 군인들 조차 그 혹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곳에 측량사가 남았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며 한때 자신이 꿈꾸었던 천체물리학자를 떠올리며.

그 후 섬 주위의 거친 파도 탓에 표류한 사람들이 하나 둘 섬에 남아 마을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거친 환경을 일구며 그 작은 공동체는 성장해갔다. 그리고 공동체가 커져감에 따라 원래 그들이 살던 곳과 같이 법이 필요하다 느꼈다. 그들은 고심 끝에 단 하나의 법 조항을 정한다.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바다와 같은 법을.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단 한 줄로 된 짧은 법 조항, 잔잔하거나 높게 치솟거나 언제나 똑같이 하는 파도처럼 모두 같은 높이에 동일하게 대우받는다는 단 한 줄의 정의. 그 한 문장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만나면 서로 손을 뻗어 어깨에 대는 것으로 인사를 했다.'저는 당신보다 높지 않습니다'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삶을 꾸려가던 주민들은 곧 섬의 화산활동이 시작되는 탓에 본토에서 보낸 배를 타고 잠시 섬을 떠나게 된다.

본토에 도착한 그들은 정부에서 제공해준다는 음식을 거부하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쓰레기 치우는 곳에 취직했다. 본토에서는 그 일을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꼬박꼬박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며 다시 섬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이 년 후 섬의 화산활동이 그쳤을 때 몇몇을 제외한 섬사람들은 그들의 마을로 돌아간다. 옷감 장사를 시작한 부부와 피아노에 빠진 아들, 본토 청년과 사랑에 빠진 원주민 아가씨가 그곳에 남았다. 그리고 섬사람들을 꾸준히 취재하던 한 기자가 본토에 남은 원주민들을 끝까지 취재한다.


본토에 남은 아이는 예민한 청각을 가졌다. 재능, 선천적인 음감을 타고난 그 아이는 우연히 듣게 된 피아노 소리에 금세 빠져든다. 그리고 섬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대신에 피아노를 배우는 것으로 만족한다. 모든 소리들은 아이를 타고 흐른다. 그 소리들 속에 기쁨과 슬픔, 추억과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도시의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악보대로 치지 않는 아이의 재능이 아깝기만 하다. 그 다그침에 아이는 악보대로만 치면 굳이 자신이 치지 않아도 되지 않냐며 슬퍼한다. 악보대로 연습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연주자가 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서럽게 대답한다.

“지금 행복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총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진다. '그 나라로 간 사람들',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 '그 아이', '다시 그곳으로',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이 이야기들은 모두 ‘행복’ 대해서 이야기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 그 단어가 필요한 까닭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잡아보려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발버둥이다. 행복하기 위해 음식을 먹고, 여행을 떠나고, 물건을 사고, 행복해지는 방법은 너무나 많은데 그것들을 시도하려면 또 자꾸 조건이 붙는다.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 행복하고, 지금 견디고 나면 나중에 행복해지는 삶. 그렇게 기다리고 견디는 현재가 과거에 행복을 꿈꾸던 미래였다는 걸, 실체가 없는 '행복'을 쫒느라 계속 불행한 미래를 살아간다.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곳에서, 행복하기 위해 세워 둔 기준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그 틀에 맞추어 통과해 가며 바라는 ‘행복’이라는 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섬에는 행복이라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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