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와 수령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6월, 한반도에서 통화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른바 ‘화폐정리사업’이 그것이다. 당시 조선에는 두 가지 경화, 즉 엽전과 백동화가 유통되고 있었다.
[그림] 엽전과 백동화
일본은 엽전과 백동화를 헐값으로 사들여 퇴출시켰다. 매입한 경화는 녹여 동괴로 만든 후 팔아버렸다. 근대적 화폐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주체적 노력은 이로써 좌절되었다. 일본은 철저히 종속된 통화체제를 식민지 조선에 이식하였다.
일본은 1909년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은행권은 금화(金貨) 및 지금은(地金銀) 그리고 일본은행권과 태환이 가능했다. 발행시에도 이것들을 정화준비(specie reserve)로 규제하였다.
뒤이어 한국은행은 1910년의 합병과 동시에 조선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결과 일본은행권과 조선은행권은 연동되었다. 자연스럽게 조선의 재량적인 화폐정책은 불가하게 되었다. 식민지 조선은 화폐주권을 상실했다. 두 통화를 1:1로 고정시키면서도 통합을 시키지 않은 것은 조선을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여기되, 통화질서의 교란이 일본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한 조치였다.
초기의 통화 시스템은 식민 기간 동안 많이 수정된다. 1931년 12월, 조선은행권의 금태환은 폐지된다. 이후 일본은 1937년과 1941년 사이, 조선은행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금과 은을 일본으로 빼돌렸다. 조선은행의 준비금은 일본은행권만 남게 되었다. 1941년 4월 1일, 조선은행이 소유하고 있던 일본은행권마저 일본은행의 예금계정으로 전환시킴으로 조선은행은 정화준비 없이 발행되었다. 그리고 일제 말까지 조선은행권은 준비금도 없고 발행한도도 없이 남발되었다.
일제는 사실상 아무런 내재가치도 갖지 못한 국가 지폐를 강제적으로 유통시켜, 조선의 재화와 식민지 민중의 노동력을 악랄하게 착취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