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모를 품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방은찍지 말아주세요'
한 기사를 보았다.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의 이야기였다.
최근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나이 든 사람과 범죄 현장 뿐 아닌 젊은 사람들도 해당되는 여러 흔적을 정리하는 특수청소부의 이야기였다. 나는 책을 사서 그 안에 이야기들을 곧장 읽었다.
외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마지막 순간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지금 예외일 수 없다고. 그리고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의 직업과 일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고 고독사한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우리사회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리고 누군가는 한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해 준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이 책 속에서 나도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고 그 사람을 궁금해 하게 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죽은 사람이 오래 방치된 바닥은 으레 기름 막으로 덮여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어갑니다... 그 방이 바로 당신이 숨을 거둔 곳입니다… 오늘부터 나는 남겨진 흔적을 요령껏 지울 것입니다.’- 김완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 중에서
꼭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고시원에 지낸 적이 있다.
누워있는데 숨이 막혔다. 옆방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누가 죽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남일 같지 않아서 책을 더 감명깊게 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샌가 미디어에는 글이 아닌 현장의 사진이 반복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블러로 가려졌다 해도 살점과 피가 주는 느낌은 블러 너머의 것이 실제 사람의 것이라는 걸 인지하기에는 충분했다. 기자들은 기사 상단에 현장의 모습부터 전시하고 기삿말을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어느 특수청소부는 유튜브에 자신이 정리하는 집의 모습을 머리에 웹캠까지 달아서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상식적인 일인지 생각한다. 죽으면 그 즉시 존엄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마지막 발버둥과 현장이 고스란히 공개되었다. 그게 고독사에 대한 이 사회의 대답인 것처럼.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지만 가끔 그런 일도 죽은 자와 나머지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나는 메모를 품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청소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제 마지막 장소를 찍지는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