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온 뒤로 매주 일요일이 되면 나는 나의 엄마, 아빠와 영상통화를 한다. 여기 자리를 틀고 앉은 지 달 수로는 6개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나의 부모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대전화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어른은 일요일마다 ‘언제 한국에 들어오냐’ 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데 (특히 아빠) 나는 그것이 듣기가 퍽 싫지 않아 매번 내일 간 댔다가 아직은 못 간 댔다가 갈팡질팡하며 본의 아니게 나이 60을 바라보는 중년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이다.
나는 우리 부모님 앞에만 서면 나에 관해서는 한없이 솔직해지는 경향-그래서 아마 나의 부모는 나를 대단히 별나고 주구장창 걱정만 하며 사는 예민한 아이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이 있어 이건 이래서 힘들고 저건 저래서 싫다 하며 별 얘기를 다한다. 해서 듣다 지친 엄마가 ‘그냥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할 때마다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지금 가면 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아빠가 ‘그런 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면 또 옆에서 듣던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오면 다 해결된다’ 고 말한다. 무작정 이렇게 공수표를 마구 날리고 보는 두 어른이 이상하게 나는 너무나도 든든하다.
뒤에는 내가 있을 테니 어서 이리 넘어져보라는 수련회 때 하던 그 의리게임 같은 것. 어린 내가 걸음마를 배울 적처럼 얼마든지 넘어져도 좋다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껏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런 무조건적인 지지 속에서 내가 바라본 세상은 푹신하고 말랑한 쿠션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나는 이 커다랗고 사랑스러운 에어백을 마음에 품고 사실은 무섭기 짝이 없는 현실 사회로 또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어딘가에 걸려 넘어져 수없이 쓰러지겠지만, 괜찮다. 두 어른에게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으니까.
나도 든든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일까? 아직 나는 너무 어리고 겁나지만 그래도 저렇게 자랄 수만 있다면 그깟 나이 몇 살쯤 더 먹는 것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말해야지. ‘이리 와서 넘어져도 돼! 괜찮아!’
사랑한다는 말로는 너무 부족할 만큼 내가 많이 사랑하는 사람 둘. 많이 보고 싶고, 그립고, 미안하고 고맙다. 오래오래 건강하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