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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_ '나'로부터 시작해 보세요.

by 유재은


'생활문'이란 무엇일까요? 맞아요, 말 그대로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쓴 글'이지요. 생활문은 어른들의 '에세이'와 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어린이들은 그건 일기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럼 대답하지요. '일기' '매일 그날그날 겪은 일을 쓰는 생활문'이라 할 수 있다고요. 쓰고 싶을 때 기록하는 일기는 힐링을 주지만, 억지로 써야 하는 일기는 되레 글쓰기를 싫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어렸을 때 밀린 방학 일기를 몰아 썼던 추억이 있답니다. 날씨까지 기록해야 해서 개학을 앞두고 지난 신문들을 뒤지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날씨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지요. 반복되는 일상에 도저히 쓸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며 여행을 갔다고 상상해서 쓴 일기로 상을 받은 친구도 있었어요. 또 부모의 싸움 등을 솔직하게 써서 혼나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일기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은 만큼 이를 주제로 한 동화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일기로 인해 일어난 좋지 않은 일들을 다루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일기 숙제가 없어졌어요. 그로 인해 아이들의 글쓰기가 더 부족해졌다고 걱정하는 학부모는 많아졌고요. 물론 요즘에도 담임 선생님 재량에 따라 주제 일기를 쓰는 반도 있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서록 숙제도 거의 없는 어린이들이 '글쓰기를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쉽게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이왕이면 숙제보다 학교에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일인입니다.


아이들이 글쓰기 숙제를 할 때 부모는 절대 아이들의 글을 대신 불러주며 쓰게 하면 안 됩니다. 그건 받아쓰기이니까요. 또한 다 쓴 글을 두고 맞춤법과 비문 등을 지적하거나 야단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해요. 다만 글쓰기의 분량은 자유롭게 하되, 구상하고 쓰기까지 최소 1시간은 온전히 아이의 몫으로 해주어야 합니다. 원한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쓰게 해 줘도 좋고요. 그렇게 해서 한 문장만 쓰게 되더라도 그 글에 대해 좋은 점을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시고요.


너무 어렵다고요. 그런데 글쓰기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한두 달 노력해서 금방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지요. 인풋이 충분히 되어 있는 아이들이어도 6개월 이상 걸리고, 그렇지 않다면 최소 1년은 기다려 주어야 해요. 조금씩 노력하며 보이지 않게 자라고 있을 아이의 문장력을 믿고 격려해 주면서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훌쩍 성장한 아이의 글을 만나게 됩니다. 글쓰기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는 백일장에서 대상을 타거나 작가가 되기 위해 오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부분 수행평가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활동에서 자신감 있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오지요. 집에서 어떤 것을 도와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는데, 문해력이나 어휘력 문제집 등을 몇 종류씩 더 하게 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책을 읽은 후 정독을 확인하기 위해 책내용에 대한 질문도 하지 마시고요. 그것보다는 함께 고른 주제로 토론을 하면 어린이들은 좋아할 거예요. 독서와 글쓰기만큼은 다른 과목의 공부처럼 스트레스받으며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_ 키워드 [생활문] 쓰기 (1)

_ 키워드 [생활문] 쓰기 (1)

자, 이제 본격적으로 '키워드 찾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도저히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쓸 게 없다고요?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특별한 일'을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무언가 근사하고 멋진 글감을 생각해내려 하면 글을 쓰기 전부터 진이 빠지고 찾아내기도 어려울 거예요.


'일상의 평범한 키워드들이 모두 글로 탄생'할 수 있답니다. 글쓰기 초보자인 경우에는 우선 '나'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어떤 것보다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한 가지쯤은 '좋아하는 것'이 모두 있지요. 그러면 그것들을 빈 종이에 나열해 써보세요.


게임, 캐릭터, 레고, 인형, 퍼즐과 큐브 맞추기, 동영상이나 TV 보기, 애니메이션, 영화, 문구점, 노래방, 연예인, 음악, 아이돌의 춤 따라 하기, 아이돌 사진이나 유행하는 스티커 등을 모으는 취미, 피구, 축구, 킥보드와 자전거, 야구장, 여행, 파자마 파티, 계절(봄여름가을겨울)이나 날씨, 꽃과 나무, 동물, 하늘과 무지개 등의 자연, 네 컷 사진 찍기, 놀이터에서 놀기, 침대에서 뒹굴거리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


1. 왜 이것을 좋아하나요?

2.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나요?

3. 그것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4. 누구와 함께 하면 더욱 좋나요?

5. 이것에 대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게 있을까요?

6. 앞으로 이것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경험해 보고 싶나요?

7. 그렇게 생각한 이유와 그것을 이루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 보세요.

8. "대화글"을 넣어 생생하게 써 주세요!



만약 이것 중에도 없다면,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은 무엇인지 써 보세요.


떡볶이, 피자, 치킨, 스파게티, 짜장면, 짬뽕, 탕수육, 떡국, 우동, 국수, 냉면, 삼겹살, 갈비, 돈가스, 김밥, 초밥, 오므라이스, 햄버거, 마라탕, 탕후루, 아이스크림, 과자, 케이크 등의 다양한 디저트, 엄마나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1.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나요?

2. 어떤 점이 좋은가요?

3. 먹방 유튜버가 되어 맛을 다양하게 표현해 봅시다.

('차르르 불판 위에 구워지는 삼겹살' 등 자신만의 의성어를 마음껏 써 보아요!)

4. 관련된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5. 그때의 일을 "대화글"을 넣어 생생하게 써 주세요!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키워드를 찾았는데도 시작을 못하고 있다면, '첫 문장 불러주기'를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혼자 할 수 있게 되지요. 물론 그 과정을 진심으로 격려하며 응원해줘야 하고요.


- 나는 ( )을 좋아해요.
- 나는 ( )을 하면
+ (기분이 좋아요. / 신나고 즐거워요. / 시간 가는 줄 몰라요. / 화가 풀려요.) 등.
- 그날은 정말 기뻤어요.
- ( 언제 ) 일어난 일이에요.
- ( 언제 ) ( 어디에서 ) ( 무엇을 )할 때였어요.



급식시간에 나온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생활문을 소개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읽어주니 서로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느라 시끌벅적해졌답니다.

발표 후에는 어느새 글쓰기에 몰입했고요!


[왜 나만]

학교 급식시간에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말했다.
“앗싸, 오늘은 부대찌개 나온다!”
나는 하늘로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식 아줌마께 말했다.
“아줌마, 부대찌개 좀 많이 주세요.”
그런데 급식 아줌마는 엄청 많이 국을 푸다가 다시 덜더니 아주 쪼금만 주었다. 찌개에는 달랑 소시지 작은 것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국물과 김치뿐이었다. 물론 찌개는 재배식 되지만 나는 아줌마가 내 말을 무시한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돌아보니 내 뒤에 있던 아이는 소시지를 16개나 받았다! 게다가 나 빼고 우리 반 아이들은 소시지를 3개 이상 받았다. 나는 아줌마가 너무 원망스럽고 짜증이 났다.
시무룩한 마음으로 밥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평소 나의 목소리대로 내가 너무 작게 말했던 것이다. 앞으로는 좀 더 큰 소리로 말해야겠다.






이 글의 주인공인 나의 제자 '서희'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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