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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서 찾아요

_ & [묘사하기]

by 유재은


'좋아하는 것' 찾기가 끝났다면, 이번에는 '싫어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글감 노트수첩'을 마련해 봅시다.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직접 고르고, 자신만의 노트 이름도

지어서 앞표지에 써두면 훨씬 더 애착이 갈 거예요. 어린 시절 나의 일기장과 글쓰기 노트 이름은 초등

학교 때 단짝과의 추억이 담긴 '너랑나랑별랑'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니 노트가 보물처럼 소중해지더라고요.


여러분도 자신만의 특별한 노트에 '글쓰기 키워드' 써 주세요. '물건, 장소, 음식, 사람, 동물, 과목, 운동종목, 교통수단' 등 항목별로 적당한 페이지를 나누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는 거예요. 단순히 단어를 나열해도 좋고, 완성되지 않은 한 문장을 써두어도 좋지요.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라면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마인드 맵'을 만들어도 됩니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떤 형식이나 예시에 따라 그대로 하는 것보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구상하기 놀이처럼 해보세요. 단어 옆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다양한 도구로 색칠하거나 스티커를 붙여도 좋고요. 어린이들의 '싫어하는 것' 키워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숙제, 공부, 학원, 학교, 교과 과목, 짝꿍, 형제자매, 벌레, 밤, 귀신, 놀이기구, 운동, 버섯이나 콩 등의 싫어하는 음식, 잔소리, 병원, 심심한 시간, 혼자 밥 차려 먹기, 동생 돌보기, 놀이터에서 놀다가 나 혼자 학원 가기 등.


자신만의 키워드 중에 하나를 골라 '좋아하는 것 글쓰기'와 같은 방법으로 글을 써 보세요.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음 어린이의 글을 읽어보고요. 글쓰기가 좋은 것은 정답이 없는 거랍니다. 물론 고쳐 쓰는 과정이 있지만, 일단 마음껏 쓰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글 색깔을 갖게 될 거예요. 다음은 '영어 학원'을 키워드로 한 어린이의 글입니다.


[영어 악마]

뚜벅뚜벅 가기 싫은 발걸음으로 힘들게 걸었다. 친구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싫다.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니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8층입니다.”
심장이 쾅,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더 다가갈수록 두렵다. 마치 악마가 나를 끌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선생님을 보면 밝게 인사하지만 머릿속은 하기 싫다는 생각 밖에 없다.
영어 공부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이유는 선생님이 계속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셔서 재미없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방법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또 이 학원으로 바꾼 이유 중 하나는 친구들과 같이 수업하고 싶어서였는데, 혼자 수업을 하게 돼서 싫다. 엄마가 친구를 구해 본다고 하셨지만 쉽지 않은 가 보다. 내가 영어를 늦게 시작해서 레벨이 맞는 친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영어라는 과목을 싫어한다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교 영어 수업 때는 재미있다. 학원 영어도 학교처럼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게다가 선생님께서 이제 중학생이 되니 더 재미없게 할 거라고 하셔서 걱정이다. 재미있게 수업할수록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중 첫 번째는 친구와 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친구와 같이 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둘째,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것이다. 지금 선생님은 재미가 없으니 좀 더 즐겁게 수업할 수 있는 학원으로 다니고 싶다. 셋째, 선생님이 수업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는 확률은 10%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넷째, 수업 시간을 조금 늦추는 것이다. 그러면 하교 후 친구들과 놀다 갈 수 있어 지금보다 즐겁게 수업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영어 학원을 고르라고 하면 꼭 즐겁게 갈 수 있는 학원을 고를 것이다.






✐ '감정'에서 찾아요!


글쓰기를 처음 하거나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면, 우선 '나'에게서 시작해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의 감정'에서 키워드를 찾아보세요.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면, 이제 다양한 '감정 단어'를 노트에 적어 봅시다.


기쁨, 즐거움, 행복, 감사, 설렘, 지루함, 심심함, 괴로움, 짜증, 분노, 억울함, 실망, 속상함, 서운함 등


각각의 단어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오늘의 키워드'가 되는 것입니다. 키워드를 떠올렸는데도 바로 써지지 않는다면 그 장면을 한 컷의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네 컷 만화로 그려도 좋고요. 그렇게 하는 동안 그날의 기억을 구체화하며 감정 소환해 낼 수 있으니까요.


[글쓰기 TIP]

1. '대화글'을 넣어 생생하게 쓰기.

: 장면이 그려져서 실감 나고, 글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줍니다.

2. 다양한 '감정 묘사'.

: '행복'을 키워드로 한 어린이의 글을 보며 '자신만의 특별한 표현'을 생각해 써 주세요.

-> 떠오르지 않는다면 처음 쓸 때는 마음껏 쓰고, 고쳐쓰기 할 때 그 부분만 바꿔 봅시다.


학교 웹 사이트에서 알림장을 확인하면서 숙제가 있는 걸 보았다. 그것은 과학 숙제였는데, 식물 관찰하기여서 결코 하루 만에 못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심장은 엔진의 피스톤보다 더 빨리 뛰었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어떡하지? 호랑이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엄마는 평소 내 공부나 숙제를 잘 신경 쓰지 않으셔서 이 사실을 모르셨다. 나는 샤워할 때도 계속 생각이 났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려고 할 때도 자꾸만 떠올랐다.
다음날 나는 *학교가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으, 학교 가기 싫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다리에 100kg짜리 아령이 매달린 것 같았다. 그때 한 친구를 만났다. 나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오늘 숙제 못 했어…….”
그런데 친구가 의아해했다.
“뭐? 그거 오늘은 탐구 주제만 쓰는 거잖아.”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온 세상이 천국 같았고, 내 눈앞에 서 있는 그 친구가 하늘에서 나를 구하러 온 천사 같았다. 그래서 얼른 반으로 들어가 재빠르게 숙제를 했다.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 심장이 두근거렸다 -> 나의 심장은 엔진의 피스톤보다 더 빨리 뛰었다.
* 학교 가기 싫었다. -> 학교가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 교실로 가기 싫었다. -> 교실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다리에 100kg짜리 아령이 매달린 것 같았다.
* 행복했다. -> 갑자기 온 세상이 천국 같았고,
내 눈앞에 서 있는 그 친구가 하늘에서 나를 구하러 온 천사 같았다.


고민 끝에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어낸 아이가 친구들의 감탄에 뿌듯한 표정을 지었던 게 생각나네요.






✐ [묘사하기]


어린이들은 느낀 점을 쓰라고 하면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좋다, 싫다, 슬프다'와 같이 단편적인 표현을 즐겨 씁니다. 그럴 때면 수업으로 활용하는 책이 있어요. 바로 레미 쿠르종『진짜 투명인간』입니다. 3학년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책은 제목과 표지 그림의 반전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주인공 에밀은 아름다운 세상의 색을 보지 못하는 블링크 씨를 위해 색깔을 알려줍니다. 자신만의 톡톡 튀는 표현으로 말이에요.


"블링크 아저씨에게 알려 주기 위해 나는 색깔을 떠올리는 것을 찾아봤어요.
가장 초록색인 것은 맨발로 걸을 때 발가락 사이로 살살 삐져나오는 축축한 풀잎이에요.
가장 붉은색인 것은 할아버지 밭에서 나는 토마토 맛이에요.
가장 푸른색인 것은 옆집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것이에요.
가장 노란색인 것은 분필이 날아가 교장 선생님 머리에 박혔던 날 교장 선생님의 표정이에요.
가장 검은색인 것은 범인이 자수하지 않아서 우리 반 전체가 벌 받았을 때예요.
가장 흰색인 것은 여름에 푹 자고 열 시쯤에 일어났을 때예요."

_『진짜 투명인간』, 레미 쿠르종


☺ 이 책을 읽고 에밀처럼 묘사한 어린이의 글을 소개합니다.


[바닷가]

바닷물은 더운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느낌이에요. 고래는 우리들 보다 많이 커요. 모래는 쿠키를 먹을 때 바삭한 느낌이에요. 갈매기는 바닷가에서 새우깡 주라고 하는 새에요. 색깔은 흰색인데 흰색은 엄마 품에서 자는 느낌이에요. 바닷가에서는 모래성을 만들기도 해요. 모래로 만드는 건데 다 만들고 나면 뿌듯한 느낌이에요.
저는 바닷가에 가면 물고기를 잡아요. 물고기를 많이 잡고 나면 노을이 지는데 노을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노을은 집에 갈 때를 알려주는 시계 같아요.


'노을은 집에 갈 때를 알려주는 시계' 같은 거라니!

소년의 시와 같은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네요.







이 글의 주인공인 나의 제자

'예원, 찬우, 하준'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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