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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18. 2023

슬램덩크를 보며 짓는 한숨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시간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 겸 얻은 작은 방에서 보냈다. 습관이 생겼고 그걸 계속 반복하는 일상을 지속했다. 커피, 글 쓰고, 독서, 헬스장, 닭가슴, 샤워. 어 벌써 하루 끝? 이불을 배에 덮고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내일도 또 이렇게 살겠구나.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한 해 목표와 계획을 미리 정해놓을 필요도 없이 자유로이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날 타일렀다. 하지만 그런 타이름이 속 편한 숙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종의 무기력감이 엄습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이뤘다는 것을 쉽게도 잊었다. 속 편한 소리나 하고 앉아있네. 누가 들으면 핀잔을 줄만한 생각이었다. 잘 알았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단조로움이 내 열정을 고갈시켜 헬스장에서도 힘이 나지 않았다. 나는 뭘 기대했던 거지? 저녁 약속이 없어서인가. 살이 쪄서인가. 어떻게든 운동을 끝내면 완전히 지쳐서 멍해졌다. 난 시간을 잘 써 보려고 습관을 더 추가했다. 생각이 틈을 매우지 못하게 더 바짝 조였다. 일을 더 받고 멍해질라 치면 유튜브를 틀었다. 내가 안절부절못할 때까지 붙들어둔 채 일상이 공허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갈고닦았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자주 갔다. 순전히 즐거움만을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했다. 수년 전부터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리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은 내가 든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내가 그가 쌓아둔 지식이 머리에서 싹 비워져 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차곡차곡 모아둔 근육들도 풀어헤쳐지는 기분이었다. 지나치게 동물 같던 내가 식물처럼 햇볕을 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날 때려 활기를 되찾아줄 뭔가를 갈망했다. 그게 아픔이라도 상관없었다.


 내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나 했는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에 빠져들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사춘기적 질문 아닌가. 삶이라니. 그렇게 철학과 문학을 넘나들면서 고작 그런 질문이라니.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한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게 불혹이 다가오는 공포인가. 나도 다 똑같은 건가. 몇 해 전 함께 독서모임을 했던 형님이 떠올랐다. 그는 얘기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긴에 직면하게 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난 그를 보며 살짝 비웃었다. 속 편한 소리. 운동이나 할 것이지. 난 그때 몰랐다. 이토록 비정하게 삶이 다가올지는. 이런 감정의 원인은 내 삶과는 무관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생물학적인 존재의 장난 아닐까. 어쩌면 이제 조금 내 삶을 이해하게 되어서, 그럴 여유가 생겨서 품은 의문 같았다. 내가 너무 많은 책을 읽고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아온 탓에 이제야 겨우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동진 작가가 영화는 극장을 나와서 다시 시작된다고 했던가. 난 그렇게 많은 작품을 접하고서야 이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아 그게 그런 소리였어? 진작 얘기 좀 해주지.' 


 내가 아무리 읽고 생각해 봤자 배움이 무익하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책을 그렇게 읽어요? 아 독서모임이 직업이시지? ' '아 네, 맞아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최근까지 난 누가 왜 책을 가까이하고 사냐고 묻거든 오직 재미라고 답했다. 몽실몽실한 지적 허영도 감추지 않았다. 근데 요즘에는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에 젖어든다. 한 번은 운동을 마친 뒤 작업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겨울이었는데, 낮에 눈이 내려서 바깥 풍경이 하얗고 부드럽게 보였다. 작업실은 아침에 켜둔 보일러 덕에 뜨거웠다. 난 창을 열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갈증이 엄습했다. 작업실 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이쳤다. 난 심호흡을 하며 하얗게 변한 시가지를 눈으로 방황했다. '난 뭘 기대한 거지?' 모임이 코앞이었다. 어서 읽고 독서모임 발제문을 만들어야 했다. 도심에 자리한 공원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농구공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하긴 요즘 누가 농구를 하나. KBL도 관중이 텅텅 비었던데. NBA도 보는 사람만 보지.' 내가 어렸을 때는 NBA가 일요일 아침 공중파에서 방송했다. '나도 농구 참 많이 했지.'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외투를 챙겨서 극장에 나섰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본 슬램덩크 특별판 포스터가 생각났다. 극장 개봉을 기념해서 새로 만들어진 판형이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한산하던 극장가를 내 개인 홈씨어터인 마냥 즐기던 나는 모처럼 극장이 북적거리는 통에 살짝 놀랐다. 그러고 보면 매스컴에서도 난리였다. 갑자기 슬램덩크 열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슬램덩크 굿즈와 만화책도 새삼스럽게 잘 팔린다고. 그렇다 해도 난 슬램덩크를 다시 볼 마음은 없었다. '내가 애들이야? 그. 유치한 걸 다시 본다고? 장면 하나 에피소드 하나까지 다 아는 작품을 굳이?' 난 나의 우울과 축 처진 글귀를 슬램덩크 빨로, 유년의 왁자지껄한 여윤으로 드높이고 싶었다. 강백호와 서태웅의 텐션이 필요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만화책에서 보던 장면을 영상으로 재현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때 텔레비전에서도 방영했던 시리즈는 그걸 못했다. 내가 상상했던 만화책의 상황이 조악한 품질로 만들어졌다. 모욕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매끄러웠다. 내가 알던 북산고 친구들이 기술의 도움으로 매끄럽게 코트를 누볐다. 내용은 슬램덩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 우리들이 모르긴 몰라도 다 아는 작품의 절정, 산왕전을 비추고 있었다. 난 홀린 사람처럼 홀로그램처럼 되살아난 만화책 속 그들에게 빨려 들어갔다. 


 영화관에서 서태웅이 슛을 쏘고, 강백호가 소리를 지를 때 좌석이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들 자기 아파트 단지에 두고 온 영광의 시절에 이입하고 있었다. 영광의 시대가 언제냐고 물으면 절대 바로 지금이라고 얘기하지 못할 늙수그레한 청년들은 슬퍼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돌아오지 않는 시절이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스름한 저녁에 하던 농구 시합을 떠올렸다. 학원이 끝나고 주호와 나는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공원에서 1:1로 농구를 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드리블을 하면서도 농구대가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주호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옷에서 풍기는 지독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부드럽게 녀석을 제치고 레이업을 했다. 난 공중에서 무릎을 한 굽히고 발이 땅에 닿기 전에 공을 띄우는 페이크가 필살기였다. 주호가 뭐라고 소리쳤다. '야 진짜 얍삽하게 농구하네.' '이게 기술이야 병신아.' 그 목소리에 교실의 답답함과 허기에 대한 갈증이 함께 녹아내렸다. 밤공기가 우리 허파를 채워나가던 순간을 떠올렸다. 운동장 한편에서 우리를 멀뚱하게 쳐다보던 아이들도 눈에 훤했다. 시커먼 골대와 공이 튕기면서 내는 횅댕그렁한 굉음이 생생하게 귓가에 울렸다. 흰색 백보드는 누가 장난을 쳤는지 한 귀퉁이가 부서져 있었다. 옆 놀이터에는 짐짓 지루한 척하며 우리를 지켜보던 여자애들이 있었다. 난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처럼 울기 시작했다. 


 내가 매주 주호와 농구를 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경기가 끝난 뒤였다. 우린 편의점에서 게토레이를 1.5리터를 사서 나눠마셨다. 공원 바닥에 앉아서 실없는 농담을 했다. 나쁜 새끼, 그지 새끼 거리면서 서로를 비난했다. 우린 마주 앉아서 음료수 한 통을 다 비울 때까지 킬킬거렸다. 주호의 냄새나는 흰색 티셔츠는 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우린 탈진한 상태를 즐기면서, 서로의 몸이 완벽하게 호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벤치에는 퇴근하다 잠시 들러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는 샐러리맨들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지켜보면서 실실거렸다. 담배 연기가 매캐했다. 그들의 벤치 의자도 들썩거렸다. 그들은 우리의 절정을 멀찍이서 만끽했다. 살아 있는 육체와 죽어가는 육체가 엄연히 뒤섞이고 있었다. 


 나도 극장에 앉아서 촉촉해진 눈으로 강백호와 멀어진 나를 한탄했다. 나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던가. 나는 강백호가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슛을 날릴 때 눈을 꼭 감았다. 어릴 적 나는 꽤 괜찮은 슈터였다. 다른 것은 안 하고 오직 슈팅만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슈팅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옆 동네 규환이를 이기고 싶었고, 동네 형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주호가 스크린을 걸어주면 마음 놓고 슛을 날렸다.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저건 들어갔어!' 주호가 외쳐댔다. 나는 내 폼이 완벽하다는 걸 알았다. 쭉 뻗은 팔이 날 커 보이게 한다는 점에 만족스러웠다. 나는 순간 정대만이자 서태웅으로 빙의했다. 감독님께 다시 물어봤다. '감독님 영광의 시절은 언제인가요.' 안 선생님은 안경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다 지나갔어. 날 샜어.'


 난 나이를 먹으면서 마음과 몸이 별개라고 생각했다. 농구를 하던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하나였는데.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면서 두 가지가 분리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난 커가면서 별로 깊이 생각도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마치 문과 이과를 택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난 작가이자 탐독가로서 살며 운동을 나를 단련시키는 자기 계발의 영역으로 밀어뒀다. 그건 육체를 정신에 희생시킨 꼴이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해 줄 수 있다는 걸 잊고 살았다. '언제?' 농구를 그만두고 나서. 더는 주후와 땀을 흘리지 않으면서. 직장을 다니고 퇴근을 하고 내일 또 출근해야 한다는 굴레에 빠지면서. 그 좋아하던 강백호가 애들 놀음이 되면서부터. 극장에 찾은 무수한 관객은 나와 함께 그걸 깨달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슬퍼했다.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소리를 지를 순 없었다. 난 고작 헬스장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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