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유산소 운동이 필요할 때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는 관절에 부담이 적고 회전 운동이라 몸에 충격이 덜한 유산소 운동이다. 게다가 러닝보다 열량 소모가 높고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을 만들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질주의 쾌감이 짜릿하다.
최근에는 자전거를 빌려서 탄다. 내 비좁은 자취방에 자전거는 언감생심이고, 일 년 내내 타는 것도 아니라서 대여점을 애용한다. 자전거 대여 앱으로 미리 이용권을 결재해 놓으면 언제든지 자전거를 픽업할 수 있다. 자전거 종류도 다양해서 여행할 때 렌터카 빌리듯 기종별로 한 번씩 타보는 재미가 있다. 출퇴근용으로 잠깐 자전거가 필요할 때는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나 카카오 T바이크를 타기도 한다. 공유자전거는 막차 시간을 놓쳤을 때나 전쟁 같은 러시아워를 피할 때도 딱이다. 공유자전거는 길 가다 눈에 보이면 주워 타고, 부담 없이 언제든 그만 탈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그래서 난 요즘같이 감미로운 바람이 부는 날씨에는 자전거를 거의 매일 타다시피 한다.
일요일 정오 무렵 나는 늦잠을 자다가 한창 볕이 내리쬘 때 일어났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 물 한 잔을 들이켠 다음 밖을 나섰다. 자전거 가게에서 가장 저렴한 미니벨로(바퀴가 작고 가벼운 접이식 자전거)를 빌려서 그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골목길을 죄 누볐다. 나른함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석양에 채색된 구름을 구경하며 자전거를 몰았다. 개천가에 다다라 자전거 전용 도로로 진입하면서 페달을 힘껏 밟아 속도를 냈다. 실바람이 코에 감기면서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파리까지 다 보였다. 흰 티셔츠가 바람에 나풀거리니 포카리스웨트 광고라도 찍는 기분이었다.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정도 밟았더니 금세 허벅지가 뜨거워지고 엉덩이도 뻐근해졌다. “아 포춘쿠키(전립선 보호대)라도 차고 나올걸. 전립선은 하나뿐인데.” 그때 나는 혐오스러운 김 부장의 포춘쿠키가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된 건 김 부장 때문이다. 몇 해 전 내가 모시던 김 부장은 50살 먹은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그는 평소에 업무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하고, 자나 깨나 축구 생각만 하는 사내 조기축구회 회장이었다. 김 부장은 내가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오른팔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해서 사무실 문을 열었더니 흉측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형광 사이클 바지를 입고 사타구니에 포춘쿠키를 매단 김 부장이파전처럼 흘러내리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커피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용케 사모님의 결재를 받아내 신난 눈치였다. 김 부장은 티타늄 소재의 900만 원짜리 자전거를 바라보며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어댔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김 부장은 그날부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김 부장은 누가 훔쳐 갈까 봐 노심초사하며 자전거를 24시간 CCTV가 돌아가는 회의실에 보관했다. 아침 회의 때만 되면 김 부장이 자전거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통에 회의만 길어졌다. 그렇게 자전거 썰에 익숙해질 무렵 가을 야유회 철이 왔다. 김 부장은 팀워크를 강조하며 동해안 라이딩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건 제안을 가장한 지시였다. 조직 특성상 일 년에 한 번뿐인 야유회는 불참이 어려웠고, 그래서 우리는 모두 무조건 자전거를 타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때 당시 우리 사무실에서 자전거가 없고 심지어 탈 줄도 모른다는 말은 ‘난 무능력해서 자전거를 빌리지도 못하고 배울 생각도 없다’는 말과 같았다. 당시 부장의 오른팔이자 건강 멘토로 총애받던 난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덜컥 50만 원짜리 자전거를 질러버렸다. 덕분에 내 좁디좁은 자취방은 회사 회의실처럼 자전거 전시장이 되어버렸다.
당시 야유회는 42인승 전세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속초로 떠나는 1박 2일 일정이었다. 날림으로 써낸 계획서에는 ‘동해바다를 보며 올해 업무를 잘 마무리하자’는 김 부장의 포부가 담겼지만, 한 마디로 ‘반나절 자전거 타다가 소주에 회 한 접시 먹고 자자’는 말이었다.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김 부장의 지시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자전거 대열을 갖췄다. 난 의기양양하게 선두에 서서 새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동해안 자전거 도로는 경치만 좋았지, 노면은 상당히 거칠었다. 무식하게 힘만 좋고 요령이 없던 나는 속출하는 장애물을 피하지 못했고, 내 자전거는 출발한 지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퍽 소리와 함께 바퀴가 찢어졌다. 그렇게 나의 첫 라이딩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내 꼴 나지 않으려면 입문용 자전거는 용도에 맞게 골라야 한다. 야유회 당시 내가 구입했던 자전거는 로드바이크였다. 로드바이크는 잘 포장된 도로에서 빛을 발하는 레이싱 자전거다. 인도와 차도를 오르내리고, 덜컹거리는 일이 많은 도로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시내 출퇴근용으로는 비추다. 로드바이크는 타는 자세도 허리를 많이 숙여야 해서 불편하고, 바퀴가 얇고 몸체가 가벼워서 승차감도 별로다. 허리를 펴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고 싶다면 MTB(Mountain Bike, 산악자전거)를 사야 한다. MTB는 이름처럼 산에서 타는 자전거지만 그만큼 튼튼한 데다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무거워서 금방 지치고 속도감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난 처음 자전거를 접하는 분에게는 우선 직접 한 번 타볼 수 있는 자전거 대여점부터 찾기를 권한다.
그렇게 고대하던 야유회를 망치고 내 자전거는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절친 주호의 제안으로 경기도 여주까지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됐다. 그때 비로소 나는 로드 자전거의 참맛을 알 수 있었다. 주호와 함께 라이딩을 다니면서 몸과 자전거가 하나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주호와 야간 라이딩을 하며 전국을 일주하던 때가 내 전성기였지 싶다. 날렵한 내 몸을 믿었고, 내 체력은 날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었다. 대지가 굴러가듯 내 몸도 유연하게 굴러갔달까. 한강부터 양평, 여주, 문경, 동해안 그리고 도림천에서 북악스카이웨이까지 내 젊음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주호와 난 그토록 혐오하던 김 부장의 형광 사이클 바지에 포춘쿠키까지 달고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자전거를 싣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민망한 상황이 펼쳐졌다. 지하철이나 기차와 버스를 탔을 때 승객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혐오 그 자체였다. 아무리 몸매가 빼어나다 해도 아직 쫄쫄이는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할 수 있는 무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자전거를 탄다고 모두 포춘쿠키가 될 필요는 없더라. 세상은 빠르게 변해서 스타일리시한 사이클복을 탄생시켰다. 시티 라이딩에 걸맞은 일상복으로도 손색없는 디자인에다, 청바지처럼 나오는 사이클 바지가 있을 정도다.
그렇게 동고동락하던 주호가 지방으로 이직하면서 나는 영혼의 라이딩 메이트를 잃었다. 그 후 나는 고독한 라이딩에 지쳐 베갯잇을 적시다가, 섬광처럼 떠오른 자전거 동호회 회원모집 광고에 눈이 돌아갔다. 이 광고 저 광고 클릭해서 보다가 본격적으로 네이버에 ‘자전거 동호회’라고, 검색해 보니 정말 수백 개의 자전거 동호회가 쏟아졌다. 나는 별 고민 없이 가장 상단에 뜬 메이저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다. 하지만 첫 모임에 나가보니 너무 사람이 많고 어색해서 적응할 수 없었다. 다들 서로 이미 막역해 보여서 내가 감히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돌고 돌다 소규모지만 내실 있는 동네 자전거 동호회를 찾아 가입했다. 헬스장도 러닝 크루도 마찬가지지만 동호회는 작은 곳부터 시작하는 게 적응에 유리하다. 다수보다는 소수일 때 얼굴 익히기도 쉽고 자연스럽게 친해지기도 좋다. 모임 장소가 집에서 가까워야 이동 시간도 짧고 참석률도 높아진다.
동호회에 잘 적응한 덕에 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자전거를 탄다. 오늘처럼 답답한 날이면 따릉이를 타고 도심을 달린다. 상쾌한 바람이 코를 적시면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가 씻은 듯이 날아간다. 페달을 밟을수록 살아있다는 감각이 허벅지에서부터 차오른다. 오늘도 후끈한 대퇴부와 함께 일주일의 마지막 시간이 무르익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