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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28. 2023

동호인의 마음을 잊어선 안돼

 나는 동호회 죽돌이다. 모든 취미활동을 동호회를 통해 하고 있다. 나는 독서랑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걸 모두 커뮤니티 모임 형태로 만들었다. 한 달에 열 번씩 모임에 나가다가 최근에는 아예 사업을 시작했다. 이런 취미뿐만이 아니다. 나는 러닝 동호회 활동도 오래 했는데, 요즘에는 내가 아예 러닝크루를 만들었다. 동호회를 만들어서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의 눈치도 보고 긴장도 타고 영향도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나는 어느 정도의 의무와 책임감으로 취미 활동을 하고 있다. 


 러닝크루를 별도로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러닝 크루에는 잘 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아무리 레벨을 나눠서 뛰어도 수준이 너무 높아서 초보들은 갈 데가 없다. 혼자서는 뛰기 힘들고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는 끼치기 싫은 분들은 운동을 계속 미룬다. 이런 격차는 운동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독서나 글쓰기라고 그러지 않겠나. 모든 분야에는 진입장벽이 있고, 이것은 초보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그래서 난 독서모임을 만들고 러닝크루와 헬스 동호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보들도 무조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고 싶었다. 일정 요금도 받았다. 어느 정도는 돈을 지불해야 의무감도 생기고 심정적으로 폐를 끼친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난 커뮤니티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몰취향의 시대의 동호인을 최대한 끌어모으기 위해서. 함께하면 어떻게든 하고 싶어 지는 게 사람 아닐까. 


 내가 동호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속도 때문이다. 삶은 속도전이다. 도대체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일과 내내 바쁘게 지내다가 동호회에 나가면 깊은숨을 내쉰다. 일상의 재생 속도가 0.8배속으로 느려지면서 몸이 나른해진다. 그렇게 속도를 늦추면 왜들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 왜 평소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조차 조급해질까. 동네 쌀국숫집에서 한 없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왜 초조할까. 전자레인지에서 돌아가는 햇반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을까. 이렇게 속도전에서 내려오지 못할 때 헬스장에 들르면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호인들과 기껏해야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몸을 움직일 때 소소한 시간들이 하나하나 다 느껴진다. 거시적인 삶에서 동호회는 우리에게 클로즈업의 효과를 주는 것이다. 돈 안 되는 거. 사실 힘만 드는 것임에도 우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 마치 동호회 활동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히다.


 잘 생각해 보면 잠에서 깨면 나머지는 다 효용을 위한 싸움이다. 일상은 이런저런 책무와 완수해야 할 일, 잊으면 안 될 약속의 연속이다. 그냥 정신이 없다. 내 메모장에는 뭘 해야 한다는 말로 가득 차 있다. 일에 치인다는 것이 곧 성공을 알리는 징표라도 된 듯, 분주히 일과를 소화한다. 내 삶은 용량을 초과해서, 남은 자리는 겨우 잠을 위한 것일 뿐, 무언가를 응시할 자리는 전혀 없다. 가까스로 일어나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을 때도 할 일 목록에 넣어둔 일들이 나 좀 보라며 아우성을 친다. 수입과 지출이라는 명확한 목표와 더불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사색을 가로막는다. 난 종이 냅킨과 포스트잇 심지어 읽던 책 귀퉁이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분주함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낭만 없는 삶 같으니. 저녁 무렵이면 휴지통으로 들어갈 다짐들만 수두룩하다. 


 나도 옛날에는 그날그날 경이로움을 글로 적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일기에 삶이 얼마나 기쁜지, 앞날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적었다. 다 과거형이다. 낭만은 안정적인 삶이라는 구호 아래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러닝크루에 나가서 헬스장 동호인과 어울리면서 내가 잊고 지냈던 삶의 잔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헬스장 기구를 타며 키득거리며, 근육통이 올라올 때 발을 구르면 다시 아이가 된 것 같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헬스장 존 레넌은 멋들어진 파마머리와 헐렁한 가죽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운동을 한다. 그는 저녁 8시 즈음 오는데 아마도 퇴근하고 헬스장에 들르는 모양이다. 근데 존 레넌은 패셔니스타답게 헬스장 옷으로 갈아입지 않는다. 그 차림 그대로 운동한다. 청바지에 재킷을 입은 채로 하는 운동이 제대로 될 리 없지만, 그는 헬스장이 놀이동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나게 기구를 타다가 사라진다. 그를 보고 있으면 헬스장만큼 재밌는 것도 없어 보인다. 나도 질 세라 더 오버하면서 벤치프레스를 들고 런지를 하면서 엉덩이가 카다시안만큼 커졌다고 설레발을 친다. 실실 주접을 떨며 난 다짐한다. 인생은 축제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복수는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들의 귀에 나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아무렴!


 도로를 달리고 나서 숨을 몰아쉴 때. 무릎에 손을 대고 차가운 공기를 흡입하는 기분이 날 웃게 만든다. 넥타이를 풀고 운동복을 입고 내 앞에 선 동호인들이 삶에서 중요한 건 목표와 성취가 아니라는 걸 상기시킨다. 가을빛을 받으며 산책하고 나서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꼴 때 벅찬 기분을 느낀다. 일직선의 삶도 다리 모양처럼 회오리를 친다. 헬스장에서 땀을 잔뜩 흘리고 샤워를 하고 문밖을 나설 때 난 순간에 몰두한다. 그 날씨 하며 저물어가는 태양과 거리에서 빛나는 네온사인마저 아름답다. 발바닥에 감기는 콘크리트마저도 안온하다. '아 좋다.' 일을 하는 거의 대부분 내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지만, 운동화를 신고 천변에 나가면 내가 다시 일상을 어여삐 돌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호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눈 뜨도록 해 준다. 이런 느낌이 좋아서 난 일요일에는 독서모임, 화요일에는 러닝크루, 금요일에는 글쓰기모임 그리고 거의 매일 헬스 동호인들과 어울린다. 


 운동을 하면 삶이 단순해진다. 단순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것들과 거리를 둬도 살만하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의 표정을 보라. 그들은 삶이 긍지로 가득 차 있다. 운동을 하면 건물에 드리운 햇살이나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몸에 미세한 통증과 숨 가쁨이 시작되면서 숨을 고르다 보면 감각이 곤두서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날고 기는 운동유튜버 김재훈, 말왕, 윤성빈의 운동능력은 경이롭다. 마치 미켈란젤로의 작품처럼 영웅적인 아티스트와 같다. 그들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잠시 멀어지게 하고 크고 탐스러운 근육을 동경하게끔 날 이끈다. 감정을 격앙시켜서 더 무겁고 가혹한 운동 수준으로 날 들어 올린다. 그럴 때면 운동이라는 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없구나.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자들의 경연장이구나 한다. 하지만 실상 운동을 가볍게 즐기면서 에두르는 동호인들이야말로 속도를 늦추고 기록이 아닌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한 박자 늦추고 마음을 가라앉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보게 해 준다. 기록은 주전 부리고 메인디쉬는 몸을 움직이는 과정의 즐거움이다. 난 동호인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어떤 것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 나는 독서 동호인이다. 글쓰기가 취미고, 영화에 관해 떠들면서 사니까, 자칭 영화 평론 동호인이라고 우겨본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우린 작은 것들의 신이 되기 위해 오늘도 순간순간에 애쓴다. 느슨한 취향의 공동체, 우린 동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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