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운동의 참맛>을 썼으니 이제 평생 몸 좋아야겠다. 어떡하냐?'
'뭘 어떡해. 난 계속 좋을 거야. 배 나오면 할복할 거야. 걱정 마라.'
난 대충 웃어넘겼지만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 짐짓 심각해졌다. 몸 관리는 자신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처럼 괜찮은 몸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건강한 몸과 남들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몸은 엄연히 다르니까. 누가 봐도 몸짱이라고 생각하는 몸은 큰 피로와 절제를 요했다. 지금처럼 닭가슴살 식단과 운동 강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실 요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운동량이 줄고 체중 조절이 안 되는 걸 느끼는데 말이다.
난 이런 생각을 하며 버스 안에서 어제와 오늘 나 배때기를 채운 정크푸드를 생각했다. <운동의 참맛>에 식단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해 놓고 또 피자라니. 주말에도 강연이 있는데 내 몸은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날 위한 시간이라는 보상심리로 식단을 게을리한 탓이다. 이럴 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몸에 지방이 쌓이더라도 몸 좋아 보이는 근육은 따로 있으니까. 이른바 관상용 근육으로 몸 좋은 티를 낼 수 있다. 몸의 근육량과 무관하게 타인에게 몸이 좋아 보이고 싶다면 관상용 근육이 좋아야 한다. 옷을 입어도 도드라져 보이는 부위가 발달해야 몸이 좋아 보인다.
1. 광배근
내가 관상용으로 가장 중요하시하는 근육은 광배근이다. 광배는 등근육이고 위치는 어깨 아래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져있다. 팔을 들면 늘어나고 내리면 쪼그라드는 근육이다. 얼핏 보면 광배가 발달한 사람은 날개를 달고 다닌다. 남자들은 보통 어깨가 넓은 몸매를 선호하지만, 실은 등이 넓은 사람이 어깨도 넓어 보인다. 어깨근육은 사실 굉장히 작은 근육이다. 아무리 커도 타조알 정도다. 타조알을 키워봤자 큰 타조알일 뿐이다. 반면 등은 근육은 넓고 두꺼워서 키우면 키울수록 몸 프레임 자체가 커진다.
사실 운동 같은 거 안 해도 기본적으로 골격 자체가 큰 사람이 있다. 타고나기를 어깨가 넓고 머리가 작으면 몸 좋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비율 좋은 몸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아도 옷태가 난다. 내가 언젠가 어느 모임 자리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 한 친구가 평소 거의 운동을 하지 않던 옆자리 수영이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어머, 수영님 어깨가 넓으니 스웨터가 찰떡이네요. 완전 설렌다.'
'아니에요. 옆에 민진 님 계신데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수영이는 괜히 날 걸고넘어졌다. 내가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는 걸 알고 의식하듯 얘기했다. 난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잠자코 있었다. 수영이는 내 화를 부채질하듯 슬며시 얘기했다.
'저는 민진 님에 비하면 왜소하죠. 그냥 어깨만 넓어요.'
수영이의 태평양 같은 어깨를 칭찬하던 친구는 나를 힐끗 보고는 '아아'하고는 어색한 듯 미소 지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듯했던 수영이는 이로써 나를 두 번 죽였다. 나는 슬며시 애써 키운 내 등근육을 쫙 펼쳐 보였지만 소용없었다. 확실히 타고난 등판은 당해낼 수가 없다.
난 수영이가 미웠다. 유전자 잘 만나서 저토록 큰 뼈대를 갖게 된 걸 가지고 겸양을 떠는 꼴이라니. 그 이후로 난 일주일에 세 번은 등 운동을 했다. 광배가 커야 덩치가 커 보이니까. 상대적으로 큰 내 머리를 작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도 솥뚜껑만 한 등근육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허리가 통자인 나는 S라인을 위해서라도 등을 넓힐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나도 자수성가해서 등수저 못지않은 넓은 등을 갖게 되었다.
넓은 등을 향한 집착은 S라인을 향한 욕구와 관련이 있다. 1915년에 디자인한 코카콜라 병의 정식 명칭은 ‘컨투어 보틀 contour bottle’이다. 하지만 더 유명한 명칭은 당시 인기 있었던 글래머 여배우의 이름을 따와 ‘메이 웨스트 Mae West 보틀’이라 불리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마돈나 보틀’이라 불리는 식이다. 예나 지금이나 병을 여성의 몸매에 연관 지을 정도로 S라인을 선호했다. 남자들이 역삼각형 몸을 선호하듯 여성들도 잘록한 허리와 넓고 큰 상체와 골반을 선호해 온 것이다.
내가 광배를 키우기 위해서 가장 주로 하는 운동은 랫풀다운이다. 턱걸이로 불리는 풀업도 하지만 금방 지치니, 적어도 앉아서 할 수 있는 랫 풀 다운이 더 쉽다. 손을 위로 쭉 뻗어서 광배근을 이용해서 힘껏 당긴다. 머릿속으로 라코스테 피케를 입었을 때 쩍 벌어진 등 근육을 상상한다. 공작새의 날개처럼 커진 내 등판을 염원한다. '넓어진다 넓어져! 등수저야 내 날개를 봐라!' 등이 단련으로 뻐근해지면 광배근에 복리 이자처럼 근육알갱이가 속속 달라붙는 게 느껴진다. 난 팔꿈치 옆에 튜브라도 달린 것처럼 팔꿈치가 광배에 걸리는 느낌에 미소 짓는다. 등 근육이 커지면 그때부터는 손짓, 발짓, 얼굴 표정처럼 등으로도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 뭔가 주눅 드는 상황이면 나는 광배를 한껏 웅크리고, 신나는 일이 생기면 다시 광배를 활짝 열어젖힌다.
2. 둔근
내가 광배만큼 중요시하는 관상용 근육은 엉덩이 둔근이다. S라인의 하단을 장식하는 운동이다. 둔근은 우리가 의자가 앉을 때 닿는 면적을 포괄한다. 중력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게 지방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얘기했다. '흔들리나요? 그건 다 살입니다.' 그렇다. 엉덩이는 중력의 영향으로 한 해가 다르게 처질 수밖에 없다. 나같이 가뜩이나 사무직 직원에 퇴근하고도 글을 쓰는 사람은 더더욱 엉덩이가 혹사를 당할 수밖에 없다. 종일 의자에서 분투하다 퇴근하면 내 엉덩이가 먹다 남은 파전이 된다. 너덜너덜. 엉덩이가 먹다 남은 파전이 되면 청바지 핏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엉덩이가 텅 비면 삶이 공허해진다.
난 다 죽어가는 엉덩이를 되살리기 위해 헬스장에서 보약을 먹인다. '오늘 고생했어. 종일 의자에 널 짓눌러서 미안해. 어서 단백질 좀 채워 넣자! 내 경험상 최고의 엉덩이 운동은 스플릿 스쿼트다. 한 발씩 자극하는 편측운동은 엉덩이를 자극하는데 효과적이다. 난 열심히 한쪽 다리에 중량을 싣고 열심히 오르내린다. 땅바닥은 날 끌어당기고, 종일 짓눌렸던 엉덩이는 비명을 지른다. '이게 하루 종일 고생한 대가야?' 엉덩이 근육은 애플힙이라고 하는 탄탄한 엉덩이의 굴곡을 만들어주고, 둔근을 키워놓으면 아무래도 배가 좀 들어가 보이는 효과가 있다. 오리궁둥이처럼 툭 튀어나온 엉덩이는 과거에는 놀림감이었지만, 지금은 세월에 굴하지 않고 저항해 온 증거로 여겨진다.
난 스플릿스쿼트를 한 세트당 15번 한다. 한 발로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작에서 강렬한 통증이 일어난다.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면서 버틴다. 난 프랑스 남부 칸에서 길을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유유히 해변을 산책을 하는 내 모습은 봐줄 만하다. 난 길을 걷다가 운치 있는 카페 앞에 멈춰 선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해야지. 칸 에스프레소 맛은 어떨까. 기립 박수가 나오려나.' 카페 차창으로 내 모습이 비친다. 여유 있는 여행자의 모습이다. 오래 입은 청바지도 멋스럽다. 근데 거울 속에 내 엉덩이가 사라져 있다. '어디 간 거지? 내 엉덩이를 어디다 흘린 거지?' 창을 자세히 보니 내 엉덩이는 식은 파전처럼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생에 아무리 멋진 순간이 와도 엉덩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난 생에 가장 멋진 순간에 빛을 발할 내 엉덩이를 위해 스플릿을 완수한다. 숨을 몰아쉬고 고통에 얼굴이 짓이겨져도 거울 속에서 엉덩이와 교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밤마다 통증을 감내한다.
3. 팔뚝
확실히 팔뚝은 가장 잘 보이는 근육이다. 티셔츠에 팔뚝이 가득 차 있으면 몸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마동석이 그 큰 팔뚝으로 티셔츠를 찡기게 입고 악당들을 해치우는 모습은 남자들의 로망이다. 우선 팔뚝이 커 보이려면 두꺼워져야 한다. 두꺼워지려면 우선 무게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팔뚝에 효과를 본 운동은 내로우 벤치프레스다. 가슴 운동인 일반 벤치프레스 그립보다 좁게 잡고 하면 된다. 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스미스머신에 들어가서 팔뚝을 키우기 위해 내로우그립으로 잡고 벤치프레스를 한다. 60kg의 무게를 달고 팔뚝에 자극을 가하면 팔뚝에 파상풍 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통증이 올라온다. 저릿하면서 쪼개질 것 같은 통증이 신음으로 터져 나온다. 마동석이 내 팔뚝을 으스러트리는 기분이다.
난 팔뚝 운동을 할 때 육감적이고 따듯하며 어딘가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지는 느낌에 빠져든다. 리드미컬하게 오르내리는 근육은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진국 같은 땀을 토해낸다. 마치 해장국을 먹고 캬하고 속을 풀 때처럼 개운함을 발산했다. 이처럼 기분 좋은 파열음과 함께 공허한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몸 전체로 확산되다가 종국에는 몸속 더 깊은 곳에서 신음이 올라온다. '흐어짜.' 어떻게 근육의 움직임만으로 온몸이 뜨거워지고 기운이 팽창할 수 있는 것일까. 하나의 점과 같은 고통의 감각은 쇠를 들고 내리는 리듬에 맞춰 고른 박자로 피부 표면을 가로질러 코어 근육을 지나 진동하며 저 깊숙한 곳 어딘가로 번져갔다. 몸에 피가 오르내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더할 나위가 없었다.
이렇게 다 쓰고 보니 몸을 키우고 몸이 좋아 보이려면 통증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운동이라고는 걷는 것밖에 없을 때는 푸근한 수프 같은 따듯한 몸 상태를 좋아했다. 그게 최고의 쾌감이었다. 가령 푹 자고 일어난 후의 감각, 햇살을 받으며 산책을 하는 정도의 몸의 열기. 두터운 겨울담요를 덮고 있는 상냥한 몸의 온기. 그 정도면 살만했다. 하지만 헬스를 시작하면서 내 몸은 현기증처럼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신체적인 감각을 요했다. 명확하지만 낯선, 내 것임이 분명한 욕망이었다. 마치 마라탕을 먹고 나면 신라면이 싱거워지는 효과였다. 난 더 강렬한 육체적인 자극을 원했고, 나중에는 통증을 느끼면서 웃음일 터져 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이제 몸이 변할 거야. 이제 내 팔뚝이 터져나갈 거야 주문을 외면서 마조히스트의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중에 보니 몸 좋은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변태들이었다. 통증을 원하고 통증을 갈구하고 통증에 살아나가는 그런 사람들. 내가 통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