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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23. 2023

낯선 도시에 정착하는 방법

 최근에 여자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십 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으니까. 낯선 도시 정착 노하우 같은 걸 써보는 게 어때?"

 그런 경험이 희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글로 쓰면 관심을 받을만하다는 말이었다. 그런가? 다들 옮겨 다니며 살지 않나. 최근 EBS 다큐멘터리를 하도 봐서 그런지 국민 대다수가 이 동네 저 동네 옮겨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부동산난, 전세사기, 아파트값 상승, 대출 금리 상승과 같은 우울한 기사들만 보다 보니까 옮겨 산다는 말이 무척 가벼워졌다. "이래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무서운 거야." 내 친구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서울토박이인 나와 달리 친구는 서울의 시작을 관악구 봉천동에서 했다. 사 층짜리 연립주택 반지하방이었다. 그러다가 노원구에 이직해서 전세 원룸으로 들어갔고, 승진과 함께 연봉이 좀 오르면서 서초구에 있는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난 녀석과 달리 거리를 더 넓혀서 서울에서부터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오갔을 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수로 프랑스 툴루즈에서도 살았고, 잠시간은 이스라엘에도 다녀왔다. 그런 이주 경험은 좋게 말해서 날 단출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 어디론가 옮길 수 있다는 생각에 짐이 조촐해졌고, 인간관계도 졸아들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이방인의 정서라는 게 생겼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이방인이라니. 낯간지러운 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상실감을 가진 경험도 있었다. 고작 KTX로 한 시간 거리인데 모든 게 사라지는 느낌이라니. 소중한 관계가 있고 공을 잔뜩 들인 내 후드가 만들어졌는데 어느 날인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툭 떨어지는 통에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난 그렇게 내가 거쳐간 방을 정리하고 나설 때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 동네가 좋았던 만큼 내가 머물던 공간에 대한 애착은 더 커졌다. 짐을 다 털어내고 문을 닫기 전에 잠시간 멈춰 서서 쭉 둘러봤다. 그곳을 채웠던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다시는 여기서를 오지 못할 것이고, 이 도시에서 겪은 추억도 기억으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에 비통했다. '유난을 떠네. 이게 몇 번째인데.' 그렇다고 막 울거나 그런 건 아니고 한참 동안 서서 회한에 젖어들 뿐이었다. 아마 대도시의 무수한 직장인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활여건 때문에 동네를 오가면서 나와 비슷한 회한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내 여자친구의 제안에 자신이 없어졌다. 내 경험은 특별하지 않지만 이런 상실의 경험은 보편적일 테니까.

 몇 년 전 대구로 내려오기 전 이년 간이 내 인생의 절정기였다. 모든 게 내 마음대로 흘러갔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아도 세상이 내 위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10년이 넘은 일은 숙련이 다 돼서 인정을 받았고, 크게 힘을 기울이지 않아도 베테랑이 된 느낌이 들었다. 첫 책은 잘 팔리진 않았지만 내게 다음 책을 낼 명분을 주었고, 전과 달리 꽤 많은 사람들과 친목을 다졌다. 사실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음에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주말마다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소란이었지만 그게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다. 나도 이만하면 남들이 꽤 좋아할 만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흡족했다.


 그러다가 대구 지사로 발령이 났다. 불과 일주일 전에 받은 통보였다. 내게 발령을 통보한 인사 담당자는 미안했는지 이런 말을 했다. '민진아 너무 급하긴 하다. 내가 상부에 일주일 정도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해줄게. 일 너무 급하기 정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 난 전화를 끊고 프라이팬이 달궈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창밖을 응시했다. 잔인할 정도로 화창한 날씨였다. '아 씨발 진짜.' 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회사 건물 밖을 나서서 무작정 걸었다. 여러 번 겪은 일임에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카카오맵으로 대구를 쳐봤다. 용산에서 대구시청까지 차로 딱 4시간 30분이 걸렸다.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이거지. 여름의 잔영이 서서히 물러나는 기척이 눈에 다 보일 정도였다. 난 땀이 날락 말락 한 이마를 괜히 문지르면서 죄 없는 인사담당자를 꾸짖었다. '너 때문이야!'


 그날 저녁 내가 매일 걷던 동네 풍경을 다시 눈에 담았다. '여기도 이제 끝이라 이거지.' 효창공원과 맞닿은 가로수길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많이 있었다. 벤치에서는 빵을 먹는 샐러리맨의 모습이 보였다. '저들은 왜 저기서 빵을 먹는가. 나처럼 이 도시에서 추방됐나.' 내가 놓고 가야 하는 풍경을 애틋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친구와 한 번 갔던 카페며 술자리에서 늦게 나와 차가 끊겨서 따릉이를 끌고 지나갔던 골목길이 눈에 아른거렸다. 벌써 이 동네의 이방인이 돼 있었다. 거주민도 외지인도 아닌 애매한 인간 신세였다.


 내가 대구에서 받은 사택은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고 쾌적했다. 창문으로 수성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 시가지와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런 곳에서 혼자 산다는 것이 헛헛해졌다. 경치가 아무리 좋으면 뭘 하나 싶었다. 좋은 건 함께해야 하는데 혼자 즐기고 있으려니 오히려 더 신세가 처량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인스타그램 안 하기가 어렵지 않나. 자랑을 해야 하는데, 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데 듣는 이가 없었다. 내가 대구에 관해 아는 거라곤 삼성 라이온즈와 박근혜 전 대통령뿐이었다. 다시 이곳에서 2년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일주일의 휴가 덕에 처음 이틀간은 침대에서 뒹굴었다. 근처에서 당근으로 산 침대 매트리스는 딱딱했다. 뭐든 이년 쓰고 버린다는 생각이라서 다 중고로 구매했다. 내가 떠났음에도 아이폰은 조용했다. 아이폰은 마치 대구에서 개통이라도 된 것처럼 서울일과는 무관해 보였다. 단톡방은 시끄러웠지만 날 찾는 톡은 전혀 없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내려왔는데 아무도 내가 없어진 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톡방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는데 이상하게 야속했다. '그래 니들끼리 잘들 살아라.'


 침대에 벌렁 누웠다. 예전에 땀에 젖은 상태로 숨을 몰아쉬면서 바라봤던 천장 벽지들이 떠올랐다. 격한 두근거림과 기분 좋은 심호흡은 사라지고 이제 고요한 숨소리만 가득했다. 가슴속에 외설스러운 것이 펄럭거렸다. 아무도 없다는 실감과 대구 여름이 가져온 후끈거림이 몸을 달궜다. 지나치게 조용한 동네에서 난 이제 뭘 하며 살 것인가. 두서없는 망상과 한숨을 털어내고 근처 연탄구이 집에 가서 고기 2인분을 시키고 된장찌개에 밥을 먹었다. 고기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그래, 이게 관능이지.' 확실히 대구는 서울보다 고깃값이 쌌다. 내친김에 카카오바이크로 시내에 나갔다. 그 유명한 동성로를 걸으면서 대구 분위기를 익힐 심산이었다.  


 밤에는 좀 쌀쌀했지만 초가을답게 바람은 폭신한 편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으니 요즘 핫하다는 교동이 나타났다. 타지에 정착하는 게 낯선 일은 아니었지만 유달리 나는 어느 누구도 아니다,라는 감각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이 동네는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 불과 지난 주말에 연남동에서 세상 힙한 커피잔을 들고 책을 읽던 나는 어디에 있을까.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 이름이 뭐더라. 벌써 한참 지난 일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난 전혀 낯선 타인이었다. 문득 고립감과 함께 해방감이 들었다. 아무도 없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쁨을 억지로 자아냈다.


 간판에는 '커피 오마카세'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에는 개나 소나 다 오마카세구나. 가격은 또 얼마나 받으려고.' 신기해서 들어갔으면서도 습관적인 불평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어차피 핸드드립은 직접 손으로 내려주는 건데 오마카세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야.' 원두별로 쪼금씩 주면서 주방장 특선 커피라고 하려나. 내 예측이 적중했다. 커피와 디저트가 종류별로 나왔다. 잔 옆에는 원두에 관한 설명과 로스팅 기법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다. 카페 안에는 <포트레이트 인 재즈>가 흘러나왔다. 문득 나도 이런 가게 하나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게를 열고 이곳에 정착하면 이런 식으로 외떨어지지 않을 텐데.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기 전 젊은 날에 피터캣이라는 재즈바를 운영한 것처럼, 나도 좋아하는 재즈 음악이나 틀어놓고 유유자적 카페를 하다가 새벽에는 글을 쓰면 어떨까. 난 단 한 번도 떠돌아다니는 내 삶을 비관한 적이 없었는데, 빌 에번스의 앨범이 흘러나오는 카페에 들어서니 나도 이들의 일원이고 싶어졌다. 이곳도 언젠가는 떠날 동네라고 생각하니 우울감이 밀려왔다. 난 전성기를 서울에 놓고 왔고 여기서는 다시 불확실한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네가 무슨 카페냐. 롯데리아 커피랑 스타벅스 커피도 구분 못하면서.'


 커피를 열심히 내리던 바리스타는 행주 같은 걸로 테이블을 부드럽게 문지르더니 말을 건네왔다.

 "이쪽 분 아니시죠?"

 "예? 그게 티가 나요?"

 "당연히 티가 나죠. 서울에서 오셨어요?"

 난 고개를 끄덕인 뒤 잔을 비우고 잠시 그 밑바닥에 고인 커피 얼룩을 들여다보았다. 커피점을 보는 것처럼 자국을 유심히 관찰했다.

 "서울에서 오긴 왔는데, 고향이 대구예요. 부모님이 안지랑에서 막창집을 하시는데 대학 때 서울에 가서는 최근에야 퇴직하고 내려왔어요."

 "오, 그래요? '안지랑'이 엄청 유명한 막창 골목이죠?"

 "사장님은 여기분 아니세요?"

 "네 저도 카페 열려고 내려왔거든요. 서울은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무작정 내려왔어요."

 난 그의 말에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같은 처지라고 느꼈다. 거짓말을 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가 내 치졸함을 눈치채지 못했으면 싶었다.

 "저도 이틀 전에 서울에서 왔어요. 근데 가족이랑 안 살고 따로 살아요. 서울 가서 연락을 끊었거든요. 저도 대구에 가게를 차려볼까 하고 내려왔어요."

 난 대책 없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바리스타는 내가 갑작스럽게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자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리스타는 잔을 닦으면서 다정한 공감이 담긴 눈빛으로 내 얘기를 받아주었다. 난 방언이 터진 사람처럼 내 거짓 사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는 독서모임 플랫폼을 만들려고 해요. 공간을 하나 임대해서 거기에서 제 취향이 담긴 모임을 열 생각이에요."

 "와 독서모임이요? 저도 그런 거 하고 싶었는데. 근데 대구에는 독서모임이 별로 없어요. 작게 소모임은 많은데 서울에 있는 트레바리 같은 플랫폼은 없더라고요."

 난 그간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사업 구상을 집안 가업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장하게 털어놓았다. 작은 거짓말이 만든 연쇄 허풍이었다. 난 나를 제어하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대구가 임대료가 싸서 다시 내려왔어요. 그래도 전혀 모르는 곳보다는 고향이 나으니까. 아마도 동성로 근처에서 모임을 열 생각이에요."

 "동성로 근처면 저희 가게랑도 가깝겠네요. 저도 시간 되면 놀러 갈게요."

 "그러지 말고 나중에 제가 커뮤니티 열면 커피 수업을 열어주세요. 이벤트로 괜찮지 않을까요."

 바리스타는 미심쩍어하는 눈치 없이 내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와 난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뭔가 특별한 관계가 싹트는 것을 느꼈다. 난 벌써 이 도시에서 완전히 낯선 사람은 아니게 된 것이다. 왠지 벌써 내가 커뮤니티 대표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언젠가 길거리를 걷다가 이 바리스타와 마주칠 수 있고, 그렇게 서로 간에 안부를 묻게 될 터다. 그때 난 이 거짓말을 잘 소화낼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정말로 커뮤니티를 열면 좋겠다는 강렬한 소망이 일었다. 더는 이방인이 아니라 직장을 그만두고 독서모임 대표로 탈바꿈해서 임대료를 내면서 유유자적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 마지막 잔을 비우면서 가족과의 관계가 영원히 회복 불가능해졌다고, 이제 믿을 건 사업을 잘 일으키는 것밖에 없다며 안타까운 웃음을 섞어가며 말했다. 나중에는 거짓말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아니 오히려 곧 펼쳐질 내 삶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다. 거짓말 속 허구의 내가 나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을 느꼈다. 귀를 기울여주던 바리스타는 "불안하기도 할 텐데 그래도 잘 웃으시네요. 뭔가 예감이 좋은데요"라고 그리 과장스럽지 않게, 하지만 친근한 투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난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그의 가게를 떠났다. 가게를 나와 동성로 거리를 걷다가 문득 내가 여기에서 오래 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대구에서 꽤 괜찮은 일상을 보냈다. 일이 잘 풀리면서 대구라는 도시에 잘 적응했다. 단골 카페가 생겼고, 독서모임도 열었다. 서울보다는 밀도가 적고 카페는 이상하게 많은 골목에 애정을 가졌다. 날이 갈수록 긴장되고 흥분되고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난 아무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우연히 동성로 한복판에서 열리는 커뮤니티 운영 제안을 받았다. 독서모임 '나를위함'은 그렇게 내 거짓말과 함께 시작된 셈이었다. 최근 고전 문학 독서모임을 준비하면서 난 대구에 처음 떨어진 날을 떠올렸다. 그 처음의 밤. 번화가에 놔두고 와버린 내 허풍이 거짓말처럼 귓가에 되살아났다. 대구토박이 행세를 한 삶의 속편을, 삶을 바꿔낼 수 있다는 것에 흥미진진한 기대를 품었던 들뜬 밤거리를 떠올렸다. 난 이번 달 기어코 그 바리스타가 진행하는 커피 모임을 열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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