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가족 식사자리. 사전 예고 없이 퇴사한 막내아들 등장. 강남 논현의 한 호텔 뷔페에서 모처럼 모인 가족들이 늦게 등장한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다.
"너 퇴사한 거 맞지? 지금 그래서 무슨 일을 한다고?"
"본업은 작가고 독서모임이랑 글쓰기 모임 운영 하면서 용돈 버는 거예요. 내 1인분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아요."
막내아들은 누가 봐도 허풍 어린 목소리로 아무런 문제없다고 답했다.
"어쩌다가 그런 걸 하게 된 거야? 아니 멀쩡한 직장을 왜 그만둬?"
"이거 하려고 그만둔 건 아니네요."
막내아들은 목소리가 커지는 걸 잠시 참고 다시 얘기했다.
"제가 원래 십 년 넘게 모임 한 거 아시죠. 독서모임이다 러닝크루다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 연장 선상으로 하는 거예요. 놀면서 돈도벌 수 있으니까 좋죠."
"그냥 놀면서 하는 거랑, 네가 사업을 하는 게 같냐."
"그야 그렇죠. 근데 커뮤니티 사업은 그렇게 큰 비용이 들지가 않아요. 막말로 책상 하나랑 의자 몇 개만 깔면 된다니까요."
막내아들은 누가 들어도 심하게 과장하고 있었다.
"확신도 없이 접을 사업을 왜 하려는 건데. 멀쩡한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막내아들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항변했다.
"아니 그게 독서모임하려고 직장을 때려치운 게 아니고요. 우연히 시점이 맞물린 거예요."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뭘 하려고."
"제 친구가 독서모임을 접어서 그냥 이어받았어요."
"망한 사업을 받았다고?"
막내아들은 어깨를 으쓱하고 눈웃음을 지으며 초조함과 조바심을 숨겼다. 그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네 방식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마. 내가 뭘 하든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과 삶의 방식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거다. 그래 설명하지 말자. 막내아들은 길어지는 말을 붙잡고 그냥 듣기로 했다. 다 들어봄직한 우려였다. 속이 복잡했다.
"고기 드세요. 다 드신 거죠? 저도 고기 좀 먹을게요. 저기 보니까 임연수어도 있더라. 임연수어 주는 호텔 보셨어요?"
커뮤니티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평생 사업과 무관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대학 때 동아리 활동도 안 하던 은둔형 고립자인 제가 사업이라니. 내가 생각하기에 사업가는 수완 좋고 돈 계산에 빠른 이미지다. 난 사람 대하는데 요령도 없고 계산이 느려서 사업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모임 사업에 뛰어든 건 우연이었다. 커뮤니티 사업을 하던 친구가 사업을 접었다. 한 친구는 내게 "너는 친구가 망해먹은 사업을 이어서 하는 거구나?" 물었다. 사실 그랬다. 몹시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비전이 없어서 접은 사람을 내가 받는다고? 노트를 펴고 따져봤다. 우선 큰돈이 들지 않았다. 물론 공간 임대에 목돈이 들었다. 근데 그건 없어지는 돈이 아니라 보증금이었다. 월세가 비싸긴 했지만 회원 10명만 모아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날 믿고 함께 모임 하는 분들이 꽤 있으니 그 정도는 감당할만했다. 본전 치기도 어려우면 조용한 카페에서 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커뮤니티는 대화와 시간을 파는 노동이라서 미리 재고를 쌓아둘 필요도 없었다. 독서모임은 사전에 돈을 받기에 재료비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문턱이 낮았다. 내가 매주 하는 게 모임이라서 배울 게 없었다. 어떻게 돌아가지는 뻔히 다 보였다. 물론 사업이라서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업자는 어떻게 내며, 세금 처리는 또 얼마나 복잡한지.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데 광고는 어떻게 하며, 홈페이지는 또 어떻게 만들지?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는 일이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독서모임에 만난 사람들을 신뢰했다. 지적 고양감과 양질의 대화를 원하는 분들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사업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점차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 책이 나왔다. <운동의 참맛> 원고가 내 손을 떠나면서 더는 할게 없어졌다. 다음 책을 써야 했다. 다시 새 책을 내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향후 몇 권의 계약이 밀려있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어디서든 원고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인기 작가와 달리 나는 글로 수익을 얻으려면 무기한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다시 커뮤니티 사업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대형출판사 직원들이 하는 얘기가 생각났다. 에세이 작가는 퍼스널 브랜드가 핵심인데, 브런치 수상작은 브런치라는 타이틀을 떼면 마케팅 포인트가 없다고 했다. 즉, 내 이름만으로는 책 내기가 어렵다는 소리였다. 퍼스널 브랜딩. 내 새 책이 잘 팔려서 내 이름값이 생기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다른 활로를 찾아야 앞으로 새 책을 내기가 수월할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이성적인 영역이다. 실리에 의한 계산이다. 하지만 내가 커뮤니티 사업을 시작한 데는 비이성적인 끌림이 있었다. 나는 내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커뮤니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공간사업이었다. 부동산 왕국인 한국에서 좋은 공간을 얻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조금 무리해서 갇기만 한다면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었다. 난 커피 향이 나는 채광 좋은 공간에서 일도 하고 사람들과 취향을 나누는 모습을 막연하게 그려봤다. 완전한 공간에 관한 로망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아주 오래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히 홀린 거다. 난 뭐에 매혹이 되었을까.
대학을 다니는 내내 도서관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 책과 가까워질 거란 기대가 있었다. 도도한 표정으로 반납 책을 엑셀에서 정리하는 사서의 모습에 매혹된 탓이다. 내 기대는 물리적으로는 이뤄졌지만, 심정적으로는 책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읽지도 않고 빌려 가서는 죄다 반납기에 쏟아 넣고 사라지는 무뢰한이 너무 많았다. 그 책 무더기를 정리하는 게 내 일이었는데, 무게도 무게지만 독한 먼지와 종이에 손을 베는 일이 반복되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성준 선배는 일을 오래 해서인지 익숙해 보였고, 아주 잠깐의 틈을 활용해서 신간을 살피며 대여할 책까지 챙겨 넣을 만큼 일을 즐겼다. 나도 그를 따라서 한 달을 버텨내면서 점차 책의 표지와 제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생각보다 문학을 읽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시 도서관 책 대여 순위를 관내 1층 게시판에 붙여놓곤 했는데, 보나 마나 오쿠다 히데오와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와 데일 카네기가 가장 위에 있었다. 지겨운 김진명과 댄 브라운은 물론 이름마저 닭살이 돋는 기욤 미소도 빠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 순위는 그야말로 누구나 다 읽는 책, 있어 보이는 책만 살아남는 리스트였다. 특징을 더 꼽자면, 오래된 고전과 자기 계발서를 위시한 실용서가 대체로 잘 나갔고 고전마저도 순수한 독서의 기쁨보다는 취업을 위한 교양을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난 세대와 시대를 개탄하면서 나만큼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겠다며 선배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선배 이번에 젊은 작가상 수상집 나온 거 봤어요. 그거 엄청 좋던데. 전 김중혁 작가 좋더라고요."
"김중혁 작가가 젊나? 김연수 작가랑 동갑 아닌가? 어디까지가 젊은 거야 대체."
그렇게 농담 따먹기가 피로를 덜어줄 무렵 형과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한 번쯤은 해야 하는 자리였다. 난 어색한 사이도 괜찮다고 느꼈지만, 자꾸 도서관 직원들이 너희 같이 밥은 먹었냐느니 왜 그렇게 어색하냐느니 핀잔을 주었다. 이러니 선배는 밥을 한 번쯤은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난 비가 그친 도서관을 쫄래쫄래 나서면서 당시 우리 지갑이 견뎌낼 수 있을법한 뒷고기 식당으로 향했다. 고기는 2인분만 시켜도 된장찌개와 공깃밥 두 개, 대형 계란찜에 쌈 채소로 배를 잔뜩 채우기에 좋은 곳이었다. 난 속으로 열심히 2만 원이 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상추를 세 개씩 씹어먹었다.
대학 2학년. 난 당시에 현실을 직시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상태를 맛보면서 몸에서 의식을 분리하는 놀이를 즐겼다. 마음만 먹으면 공상 속에서 살 수 있었다. 일상이 지루하니 어떻게든 딴청을 피워야 했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골치를 썩이는 산적한 문제를 다 모른 척하고 소설 속으로 도피했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기숙사로 가서 게임을 했다. 이러다 보면 삼시 세끼 다 먹여주는 군대가 날 불러주겠지. 마치 재수감을 기다리는 사회 부적응자처럼 실패의 냄새를 캠퍼스 곳곳에 묻히고 다녔다. 당시에도 난 쉴 새 없이 책을 읽으면서도 독서가 내게 뭔가를 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요즘도 내가 소설을 읽고 있으면 독서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고 물어보는 분이 계셨는데,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막무가내로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었지만,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 아는 눈치여서 말문이 막혔다. 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내게 소설은 그저 하나의 오락일 뿐이고, 어떤 영향이 깊숙이 자리할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물며 그마저도 금세 잊힌다고 말했다. 그걸 말로 하긴 어려운 노릇이니까. 무엇보다 독서를 과장하면 뻥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독서의 감상이라는 것은 내밀하고 사적이며 뭐로 보든 간에 입으로 말해지는 순간 시시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독서를 과장하면 거짓말이 된다. 난 뭉클하게 했던 느낌을 다시 되찾기 위해 다른 책을 골라서 즐길 뿐이다. 말하고 나니 독서는 참 별거 없는 오락거리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내 잠까지 방해하는 독후의 상념마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 없어질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다. 어디 술자리 가서 아는 척 떠들려고 해도 기억에서 다 사라질 테니까. 그저 내겐 아침에 늘어지게 자고 학식을 때린 후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도서관 원목 탁자에 책을 올려놓는 시간이 확실한 행복이라고 일러뒀다. 일을 다 끝내고 야밤에 기숙사에서 소설을 읽다가 잘 수 있다면 조금 고된 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책을 읽고 뭔가가 남는다면 아마도 세포 안에 빗살무늬라도 새겨지지 않았을까. 조금은 다정하고 섬세한 뭔가 말이다.
아마도 이런 개똥철학을 성준이 형한테 떠들었던 것 같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뭔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던 것 같다. 입대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이라서 그랬나. 형은 자꾸 군대만 가면 책을 잔뜩 읽을 수 있다고 속 모르는 소리를 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커녕 한 달 후에 있을 계절학기 시험도 내팽개치고 책만 보는 내게 퍽 괜찮은 위로였는지 난 형이 좋아졌다. 선배로 불렀던 자를 호형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이제 막역한 사이인 척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할 텐데, 난 도무지 그럴 맘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직행해야 하는데 선배가 나타나면 고개를 들고 억지웃음이라도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에 단짝 친구였던 여자애한테 차인 터라 난 아무하고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이라 뇌가 마비됐는지 오르지 못할 나무에 시냅스를 잔뜩 보내서 내 팔자를 꼬았다. 그래 한 달만 버티면 되니까.
방학이라 텅 빈 캠퍼스에서 난 도서관 일을 하면서 군대로 슝 사라지리라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근데 형을 만난 것이다. 내 얘기를 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자 내 얼굴은 한결 나아졌다. 형은 내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생각보다 자신과 비슷하다며 놀랍다고 말해줬다. 그건 아마도 그의 친화력일 텐데, 마치 난 오직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은 것 같은 착각에 감동하였다. 육군 병장 예비역에 전기공학도이면서도 연애 소설을 읽고 개봉 영화 프리뷰를 살피는 그는 아마도 내가 어여삐 여기는 인간상이었다. 나는 몇 년 후에 '스토너'라는 소설을 읽고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지금까지 그 좁아터진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형은 식사가 끝나고 조금이라도 더 배를 채우려고 후식까지 식당 자판기를 이용하려는 내게 차를 마시러 자기 자취방에 가자고 청했다. 어색한 손짓으로 그의 뒤편으로 펼쳐지는 어두컴컴한 길로 안내했다.
"별로 안 멀어. 금방이야."
난 기꺼이 응했다. 세븐일레븐에서 먹지도 못하는 술을 좀 샀다. 내겐 드문 일이었다.
나는 그의 뒤를 원룸이 즐비한 동네에 이르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빌라 4층에 이르니 아주 좁고 짧은 복도 복도가 나왔다. 철문을 열어 작디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집이었지만 세로로 긴 구조였다. 천장이 낮고 어둑한 그 방에는 소파와 겸용인 낮은 침대가 하나 있었다. 그 앞에는 두 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식탁 겸용 탁자가 있고,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폐기한 의자가 앞에 놓여있었다. 한쪽 벽에는 책이 바닥에 잔뜩 쌓여있었다. 침대 옆에도 책이 나뒹굴었다. 탁자 위에는 메모지가 흩어져 있었다.
“집이 좀 작지?”
형은 바닥에 놓여 있는 책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난 공간이 별 필요가 없거든. 거의 잠만 자다 보니까.”
그의 말과 달리 탁자 위에는 외출 전에 읽던 책과 낡은 노트북이 보였다. 냉장고 옆에는 뜬금없이 아령 두 개와 문틀 턱걸이 기구가 있었다. 나는 그의 방을 둘러보면서 성급하게도 완전한 뭔가를 떠올렸다. 늘 지속할 수 있는 세상. 세상과 분리된 작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같은 거. 내게 몇 년 후의 미래라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완전한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세상은 너무 멀게 보였지만, 그는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있는 세상도 있음을 보여줬다. 설핏 보면 누추한 곳이었지만, 내겐 거의 완전한 공간이었다. 난 무심한 듯 말했다.
“중요한 건 다 있네요.”
난 중요한 건 다 있으면서 문화와 예술은 너저분한 그런 공간을 원했다. 질펀하게 앉아서는 커피를 흡입하면서 글과 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속 편히 오직 나만 보살펴도 괜찮은 곳. 남들이 보기에는 소박하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이 보면 '와 저기 좋네'라고 말할만한 곳. 난 요즘 내가 연 공간에 들러서 내가 진열한 책들을 둘러보며 안심하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내가 바라왔던 완전한 공간이었다. 아주 오래되고 막연했던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남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글로는 꺼내볼 수 있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