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Jul 12. 2019

세스 로건이라는 안티히어로

롱샷, Long Shot, 2019

세스 로건 기억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원제는 Take This Waltz다. 곡이 시작되고 머뭇거리던 두 사람은 왈츠에 올라탄다. 눈을 꼭 감고 못 이긴 척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남 부러울 게 없는 결혼생활을 하던 마고는 자꾸 옆집 남자가 신경 쓰인다. 가난하고 행색도 볼품없는데 눈빛이 아른거려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사랑의 신호는 마고를 잠식한다. 착하고 순한 남편 루를 떠올리며 자책하는 마음도 잠시, 마고는 다 버리고 떠난다. 흔히 보아온 것처럼 수순대로 흘러간다.

 난 이 영화를 보며 운 기억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질한 배역에 익숙한 코미디 배우 세스 로건이 연기한 남편 루에 몰입하며 질질 짰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고, 그로 인해 철석같던 마음이 어그러진 상태였다. 새벽녘 뒤척이다 이 영화를 보던 휑뎅그렁한 당시 내 방이 떠오른다. 온전히 혼자 짊어진 짐짝처럼 보이던 내 남루한 세간이 눈에 들어온다. 루는 이후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난 방 한구석에 쪼그려 앉은 그를 떠올렸다. 왠지 버려진 개처럼 보였고, 그게 나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싸구려 감상에 빠져 접영을 쳤다. 메인 스토리에서 배제된 조연의 기분, 역사의 뒤안길에 잊힌 무수한 별거 아닌 놈들의 처지. 시작의 설렘은 익숙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섬세함을 잃는다. 사려 하며 살피던 기분을 잊고 작은 동공을 응시한다. 평소엔 잠잠하다가 한 치라도 틈이 보이면 음습한 현실이 틈입한다. 늘 사랑에 거하길 바라면서도 언제든 왈츠에 올라탈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롱샷, Long Shot, 2019


 <우리도 사랑일까>를 본 이후로 남편 루 역할을 맡았던 세스 로건이 달리 보였다. 전처럼 맘 놓고 웃지 못하고 자꾸 표정을 살피는 식이다. 세스 로건은 할리우드가 공인한 루저 코미디 일인자다. 여전히 더럽게 웃기지만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서걱서걱하다.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방 한구석에서 웅크리던 그를 떠올리는 식이다. 어제 세스 로건이 주연을 맡은 <롱샷>의 시사회를 다녀왔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열혈 기자 프레드를 연기한 세스 로건은 늘 하던 것처럼 능숙한 코미디를 선보인다. 파스텔톤 바람막이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쏘다닌다. 자신이 다니던 신문사가 거대 언론 재벌에 인수됐다는 사실에 분노해 사표를 쓰고 영웅적인 백수를 선언한다. 그는 얼토당토않게도 대통령에 도전하는 여성 샬럿과 사랑에 빠진다. 유능한 정치인이지만 유독 유머가 형편없는 샬롯에게 위트 넘치는 연설문을 써주다 사랑의 왈츠에 올라탄다. 세스 로건은 더는 배제되지 않고 무대에 서서 역사상 가장 볼품없는 신데렐라가 된다. 90년대 전설적인 R&B 가수 보이즈 투 맨의 주옥같은 곡을 배경으로 백악관에서 승자의 미소를 날린다. 난 이 영화를 일종의 버려진 세스 로건의 회복기로 보았다. 어느 영화에서나 주인공의 괴짜 친구 혹은 스쳐 지나가는 조력자에 불과했던 세스 로건의 처지도 그때완 달라졌다. 내 처지가 더 나아진 것처럼, 기획자로서 감독으로서 시나리오 작가로서 세스 로건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단연 도드라진다. 참신한 기획에 무수한 배우들이 그의 상대역이 되기 위해 줄을 선다.  

 ‘롱샷’이란 제목은 가당치 않은 도전이라는 의미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을 언감생심 넘보는 캐릭터에 걸맞은 제목이다. 절친한 친구가 공화당 지지자에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그 사실을 평생 몰랐다는 사실에 재차 절망하는 세스 로건의 연기가 일품이다. 정치적인 올바름을 자각하는 캐릭터와 미 사회에 가진 우려를 티 나지 않게 곁드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흠이라면 사랑에 빠지는 실마리가 없다는 점이다. 영화의 큰 얼개는 예측을 일절 벗어나지 않고, 루저에 가까운 남자가 샤를리즈 테런 같은 여신과 사랑에 빠질만한 사건이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로코는 논리나 개연성을 따져선 안 되나 보다. 남자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점에서 노팅힐이 생각나기도 하고, 최근 젠더 이슈의 결을 짚어내는 발언도 웃음기를 머금은 와중에 비어져 나온다. 존경할만한 여성을 내세우고 그것을 대상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을 달리한다. 대체로 진보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그런데도 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코미디라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인 작품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폴리, 나의 눈부신 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