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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Dec 04. 2019

혼자가 된다는 건 거듭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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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도시엔 수많은 ‘혼자들’이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삶의 기반을 잡은 그 혼자들은 마치 환경에 맞춰 생물들이 진화하듯, 고독에 적응해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영화와 책 같은 문화를 친구 삼아서 취향을 바탕으로 느슨한 연대를 이룬다. 

에세이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을 통해 저자인 박민진은 도시에서 혼자 산다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제법 숨이 가쁜 일이다. 나만의 리듬을 지키기도 어렵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도 쉽지 않다. 1인분의 몫을 하고 1인분의 시간을 누리고 싶지만 이조차도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삶이 싫은가 자문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투스카니의 찬란한 태양 대신에 현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지만 익숙하고 편안하다. 조심스럽게 고백하건대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염려하는 만큼 불행하지도 않다. 저자는 그런 미묘한 ‘괜찮음’을 글에 녹여내어 공감을 끌어낸다.  


이 책은 카카오 브런치에서 작가님께서 연재하셨던 글들을 묶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출판하기로 결심하셨는지요? 

브런치는 제게 규칙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어요. 잠들기 전에 책상에 앉아 한 시간 정도 쓰곤 하는데 그걸 습관처럼 브런치에 올렸어요. 잡념을 해소하려는 마음으로 쓴 글에 구독자가 생겼고, 어느새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의식하며 글을 쓰게 됐어요. 매일 일기처럼 쓰는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게 처음엔 그렇게 신기하더라고요. 구독자를 의식하다 보면 대충 쓸 순 없게 되지요.. 형체 없이 그저 수치에 불과한 독자지만 엄연히 내 글을 지켜보는 대상이 생긴 거죠. 사실 출판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없었어요. 내 책을 누가 사서 읽겠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구독자가 4,000명이 넘어가고, 같이 활동하던 브런치 작가들이 책을 출간하는 걸 지켜보면서 욕심이 생겼어요. 때마침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수상을 했고, 출판사들로부터 제의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의 출간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서문에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독력’을 취득했다고 하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많이 편안해하는 것 같아요. 

97년에 개봉한 영화 <접속>을 보면 피카디리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 전도연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급히 극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나와요. 그만큼 과거엔 혼자라는 걸 유별나게 의식했어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서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죠. 우리 사회가 혼자라는 게 뭔가 사회성이 부족하고 결격한 것으로 몰아붙였어요. 하지만 최근엔 '문유석' 작가의 <개인주의자 선언>처럼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유럽식 개인주의가 한국의 도시화에 맞물리면서 빚어낸 양상이죠. 관계에 복닥거리며 사는 것보다 너른 거리감을 선호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졌어요. 가끔 술자리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혼자 사는 분들이 상당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들과 얘기해보면 각자 나름대로 혼자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결혼을 못 해서, 돈이 없어서라고 말하지 않아요. 스스럼없이 자신이 독신을 택했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밝힙니다. 평온이 스민 얼굴로 각자 나름대로 고독을 뽐내며 살죠. 전 그들과 강한 유대를 느껴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은 그들을 의식하며 쓴 글입니다.  

영화 이야기가 특히 많이 나옵니다. 영화에 대해서 평가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 많이 쓰신 것 같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글을 쓰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영화를 평가할 생각이 없어요. 그럴 능력도 안 되고 무엇보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요. 그저 영화를 보고 나와서 진짜 죽인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쓰레기다. 별로다. 기똥차다. 끝내준다.’처럼 극단적인 말이 싫어요. 전 영화를 통과할 때 느끼는 풍부한 감정을 폭력적으로 요약하는 말을 불신합니다. 그건 게으른 사고예요. 전 어떤 영화를 보던 감정의 부스러기를 그러모아 들여다보고 싶어요. 좋으면 좋은 대로 별로면 별로인 그 자체로 정확하게 적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비로소 저만의 고유한 감각이 문장에 드러나요. 그렇게 늘어놓은 문장엔 평소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저라는 사람이 있어요. 도시를 에워싼 무수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유려하게 들판을 거니는 오롯한 제가 있는 거죠. 모두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저만 가진 1인분을 글에 드러내고 싶어요. 그건 글쓰기에서 참 중요한 느낌 같아요.  


책을 읽다 보면 ‘취향’이라는 키워드에 도달하게 되는 듯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이 책의 첫 글로 영화 <소공녀>를 택했어요. 딱히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해서 넣은 건 아니에요. 제 책이 가진 분위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느껴서 꼽았어요. <소공녀>에서 '미소'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취향인 저녁에 마시는 위스키와 담배 한 모금을 위해 거주지를 포기해요. 비록 한 칸짜리 월세방이지만 한겨울에 방을 뺀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하지만 미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취향을 위해 남의 집을 전전합니다. 전 미소라는 캐릭터가 택한 극단적인 방식에 주목했어요. 바쁘고 먹고살기 어려워 내 취향을 포기한다면 나는 껍데기에 불과한 게 아닐까. 제게 취향은 곧 존엄이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나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유머러스하고 과장된 화법을 지니고 있지만 그걸 충분히 상쇄할 만한 고민을 제게 안겼습니다. 퇴근 후 세 시간, 일요일 오전부터 텅 빈 하루를 난 뭐로 채우고 있을까. 영리를 위한 일이 아닌 전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전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을 통해 취향이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을 적고 싶었어요. 낭만이 사라진 삭막한 도시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적었어요.  


작가님 본인의 취향을 만들어낸 결정적인 장면이 있을까요? 

저는 스무 살 초입부터 혼자 살았어요. 집에 세간은 없고 늘 텅 비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찾아다녔죠. 그러다 보니 영화관과 서점을 전전하게 됐어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글을 쓰고, 시끄러운 거리에서 이어폰을 꽂고 늦은 밤까지 걸어 다녔어요. 특히 24시간 카페에 가서 새벽까지 맥북을 붙잡고 수많은 짓을 했어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취객들 사이에서 굳이 혼자가 되려고 용을 썼죠. 귀를 틀어막으면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분주한 점원들도 시야에서 사라져요. 그리고 오직 노트북과 씨름하는 저만 남겨지죠. 전 거기 남아 뭘 하느냐. 잘 모르겠어요. 그냥 열심히 적고 읽고 구글링도 하고 심지어 쇼핑에 딴생각까지 일삼았죠. 사실 그렇게 홀로 침잠하는 시간을 꽤 좋아해요. 대도시의 북적거리는 삶에서 어떻게든 분리된 시간을 갖는 거죠. 집에 있으면 더 조용하고 더 사색하기 좋을 거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개인적으로 백색소음이 웽웽거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혼자가 된다는 건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수한 인파를 뚫고 나 자신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니까요. 그래서 제 취향은 늦은 밤 커피잔 앞에서 길러졌다고 생각해요. 시뻘건 눈으로 잡념을 풀기 바쁜 제가 머릿속에 그려져요.  


이 책에 나온 영화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보신 영화 중에서 추천하고 싶으신 작품이 있다면? 

저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 심취해 있어요. 그렇게 영화를 많이 봤다고 할 순 없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만큼은 다 봤어요. 어떤 오해나 편견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지도 않고 멀리하는 분이 계신다면 권해드립니다. 홍상수의 영화 속엔 통념에 쉽사리 흔들리는 인간과 이에 한 발자국 떨어진 인간이 공존합니다. 살아가며 솔직하지 못할 때 그의 영화를 보면서 해방감을 느껴요. 아 나도 저 뻔한 인간들 사이에 있구나. 새롭게 보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관성에 머물러 사는구나. 특히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낄 때면 넷플릭스로 홍상수 월드를 찾아갑니다. 떨치고 나아가고 싶어서, 거치적거리고 싶지 않아서 봐요. 그의 영화 중 겨울을 배경으로 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그 후>를 유독 자주 찾아요. 떨쳐내고 또박또박 걸어가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계속 돌려봐요.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제가 쓴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에 귀중한 돈과 시간을 내어주셔서 고마워요. 제 책을 가방에 넣고 출근하는 분을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건 참 진부한 말이지만 감동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은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일상을 붙잡는 문장이 빼곡합니다. 세상엔 온통 별거 아닌 것투성인데 이 책은 거기에 일일이 시비를 걸고 있어요. 모두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실컷 떠들다 보면 어느새 일상도 꽤 그럴싸해 보입니다. 거대한 담론과 사회생활에 지친 분이라면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을 읽으며 잠시나마 어깨에 힘을 빼고 딴청을 피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장담할 순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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