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

#9 클로저를 보면 오해의 매커니즘이 보인다

by 박민진

<클로저>는 언제부턴가 만인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잊을만하면 술자리에 올라 너 나 할 것 없이 이 영화에 관해 한 마디씩 거든다. 어디서든 얘기를 나누다 보면 클로저를 각별히 여기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여성들과 대화할 땐 <이터널 선샤인>이나 <500일의 썸머>, <어바웃 타임>, <노트북> 못지않게 <클로저> 필히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불과 지난달 한 술자리에서, 한껏 취기가 오른 녀석이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꺼내 들었다. 속으론 지랄하네 네가 주드 로냐, 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나 힘들 땐 그런 병에 걸리기도 하니까 그러려니. 녀석이 내가 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를 사랑했다는 건 명백한 진실이었다. 난 맥주를 홀짝이며 그의 슬픔을 어렴풋이 짐작했고, 아주 약간은 공감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느낀 건 아니었다. 그냥 화가 나고 아련하지만, 이상하게 희망에 찬 그 느낌을 더듬을 수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남이 헤어진 얘기만큼 재밌는 게 있을까 싶다. 녀석에게 위로한답시고 평소 외우고 다니는 얘기를 들려줬다. 영화배우 존 웨인은 키는 193에 세 명의 아내가 있었고, 다섯 자식에 손자도 셋이나 두었다. 53세였고, 그는 위스키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런 양반도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세상에 그게 가능한 남자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우린 멀었어. 난 내가 경험한 수많은 실패에 주석을 다는 기분이 들어 짐짓 부끄러워졌다.


그날 집에 들어와서 <클로저>를 켰다. 영화의 배경은 복닥거리는 런던이다. 부고 기자 댄을 중심으로 느닷없이 교통사고를 당한 스트리퍼 앨리스, 댄의 첫 책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작가 안나, 댄의 꼬임에 빠져 음란한 여자를 만나러 수족관에 나타난 의사 래리가 등장인물이다. <클로저>를 사랑하는 대다수가 그렇듯, 나 역시 첫 장면을 기억한다. "앤 소 잇 이즈"로 시작하는 ‘The Blower's Daughter’의 구슬픈 멜로디가 화면을 마치 진공상태로 만들고, 여백을 걷는 두 남녀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극을 흡수한다. 난 꽤 오래전에 이 영화를 봤다. 극장은 아니었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본 기억이 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씨라 기분이 한껏 처진 상태였다. 뒤통수가 한없이 긴 CRT 모니터에 인파가 그득한 런던 센트럴 EC1 거리가 보인다. 당시 난 눈에 밟히는 동갑내기 여학생과 모호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며칠 전 그가 다른 남자 놈과 공원 벤치에 앉아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제보를 들은 참이었다. 영화 속 애나가 그녀와 닮아 보여(그녀는 쥴리아 로버츠만큼 입이 컸다) 과몰입했다. 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결국 이 작품은 앨리스의 몫이라는 걸 깨달았다. 침대에 내쳐져선 무구한 얼굴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울부짖는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툭 건드리면 금세 어긋나 버리는 네 남녀의 사랑은 참을 수 없이 번잡하다. 처음 본 여자가 제일 예쁘다는 진화심리학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영화 속 연인들은 참 쉽게 반하고 어이없이 헤어진다. 오스카 와일드에 따르면, 삶에서 비극적인 순간은 사랑을 잃는 일뿐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기를 쓰던 순간은 금세 잊히고, 지독한 권태가 목덜미를 움켜쥔다. 이별하지 못해 질질 끄는 너저분한 이들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제 앞에 나타난 가냘픈 어깨에 못 할 말을 얹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늦은 밤 외로움에 시달리다 보면 낯선 유혹에 빠져든다. 주위 수많은 이별의 잔해를 목도하면서도, 또다시 모르는 사람 앞에 서기를 주저앉는다.

첫눈에 반하는 성적인 끌림은 사랑일까. 누가 보기에도 고통스러워 보이는 연애를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겉보기엔 다 비슷해 보여도, 관계는 다 제각각이다.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면 용납할 수 없는 사랑이란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사실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 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에 머문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도 스쳐간 그들에게 낯 부끄러운 문란하고 기괴한 짓을 일삼았다. 한땐 나 빼고 다 지질해 보였는데 거울 앞에 서니 나도 그다지 늠름하지 못하다. 몇 해 전 필립 로스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쓴 문장을 떠올렸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난 이 문장을 읽고 아주 조금이나마 생을 이해하게 됐다. 거장의 말이니 우선 믿고 본다. 우린 서로에 닿지 못할 것이고, 그 닿지 못함이 자아내는 간절함과 불안이 모든 관계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승우 작가는 첫 연애소설인 사랑의 생애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 끌린다. 아는 사람은 편하지만 매혹의 대상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편하지 않지만, 때때로 매혹의 대상이 된다. 아는 사람이 매혹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으로서의 변신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매혹당하기 위해서는 전에 알던 사람을 모르는 사람으로 바꾸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필요한 첫 번째 요소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이미 아는 상대를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연인은 내가 의식적으로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끝내 깨우치지 못한 채 사랑의 생애를 마감한다. <클로저>에서 사진작가 안나는 말한다. "모두가 거짓말이에요. 사진은 슬픈 순간을 너무 아름답게 찍죠. 그 안의 사람들은 너무 슬프고 괴로운데도. 그리고 예술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겠죠."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사람과 사귄 적이 있다. 더 깊이 분석해볼 가치가 있는 복잡한 성격에 외모가 아름다웠다는 건 분명하지만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앞에선 늘 피로했으며 자꾸만 눈치를 봐야 했다. 항상 내 옆에 있었지만, 점점 더 눈을 마주치기가 버거웠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싸움을 지속했다. 자주 지쳤고 가끔 청소나 설거지를 하다가도 멈춰 서야 했다.

<클로저>에서 인상적인 건 사랑에 빠진 연인이 여전히 개인적인 영역에 머문다는 점이다. 그를 집에서 쫓아내고 어두운 방과 작업실, 스탠드 하나 켜진 책상에 앉아 골몰한다.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자신을 침범하는 것 같아 밀쳐내고, 적정한 거리를 지키지 못하면 어김없이 달아난다. 우린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낯선 사람은 아닐까. 이제 다 안다고 익숙해졌다고 착각하지만, 개인의 내밀한 속내엔 항상 빗금이 처져있다. 자기 전 노트에 적은 문장엔 입자가 성긴 어둠이 빽빽하다. <클로저>는 러닝타임 내내 등장인물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고립시킨다. 들끓는 욕망이 폐쇄된 공간에 사그라지고, 울분에 찬 말도 어느새 힘을 잃고 고꾸라진다. 이제 다시 나를 모르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