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랑은 그윽한 향기만 남기고
오늘은 기분이 별로였다. 뭔가 특별하고 신나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를 한 게 문제였다. 그래도 주말이니 뭔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빈 병이었다. 미간에 주름이 지지 않게 기분을 가장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니 가면을 쓰고 무도회에 참석한 배우처럼 눈을 빛내 보였다. 여느 때라면 근교 여행이라도 다녀왔을 텐데, 요즘은 일요일 밤만 되면 무도회가 끝날까 봐 초조해한다. 집 안을 서성이며 광대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활력을 꾸며냈다. 청소, 빨래, 샤워, 비명을 지르면서 하는 고중량 스쿼트로 숨 가쁜 현대인을 흉내 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글을 써야 하는데.'
한 직장에 오래 다녔는데, 십 년이 넘어서도 열 받는 일 천지다. 별의별 놈이 다 있으니 지뢰밭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가 퇴근하면 글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그래도 그간 잘해올 수 있었던 건 작가로 등단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런 희망 하나쯤 품고 살아야 이놈 저놈과도 호기롭게 싸울 수 있었다. 요즘엔 그런 약발도 통하지 않으니 내상을 입은 채로 퇴근한다.
그렇게 무참한 얼굴로 회사 밖을 나오면 내 마음을 가라앉혀줄 분위기 좋은 카페에 눌러앉는다. 채광 좋은 자리에서 에어컨을 쬐며 그놈의 평정심을 가장한다. 이거야말로 내가 고작 택할 수 있는 여행이라며 옥수수 스콘이라도 시켜놓고 기분을 낸다. 호흡을 가다듬고 45도 위를 바라보며 공자님 말씀을 외워본다. "지식을 얻어도 덕이 없다면 반드시 다 잃고 마리라."
어디 가서도 내 책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그냥 더 잘 써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건 좀 점잖은 표현이고 실상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죽이는 원고를 가져오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내 원고가 한없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땐 야심에 찬 젊은 베르테르용 가면을 쓰고 주문을 왼다. ‘나는 일류 작가다. 내 원고는 헤밍웨이가 읽고도 상욕을 삼킬 만큼 괜찮다. 레드선.’ 카페에서도 내 나름의 가장무도회를 여는 셈이다. 차가운 도시에서 펜을 든 작가는 필연적으로 고독하다.
그간 원고에 들인 시간이 상당하다. 이 원고가 별로면 모든 게 다 무위로 돌아갈 것만 같아 불안하다. 재작년에 출간한 첫 책은 금세 묻혀버려서 누가 나한테 작가라고 그러면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다. 늘 쓰지만 쓴다고 다 작가는 아니라는 말이 내 전두엽을 스친다. 그래서 노트북을 펼 때마다 곁길 가는 나그네 신세다. 며칠 전에는 책상 서랍을 열었는데 언젠가 다 쓰고 잊어버린 기가 막힌 원고 한 묶음이 나오는 꿈을 꿨다. 얼마나 좋았는지 잠에서 깨자마자 이불을 만져봤다. '원고가 어딨지.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요즘 내가 쓰는 이야기는 실연당한 남자의 모험이다. 애인이 떠난 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A는 불안함과 조바심을 견디지 못하고 멀고 먼 여정을 떠난다. 팀 버튼의 <빅 피쉬>처럼 상상의 나래가 천장을 뚫고 성층권까지 올라서는 얘기다. 그러다가도 혼자가 되면 방바닥에 푹 꺼져서 술병이 나뒹구는 슬픈 구성이다. 한 마디로 조울증의 원인과 근간을 따져보기 좋은 임상 시험이다. 한창 쓰다가 이야기가 감당되지 않을 정도로 스케일이 커져서 최근에는 잠시 멈춰있다. 의도치 않게 A가 파괴적으로 곪아가는 통에 어쩌지 못하고 덮어놨다. 괴물이 되어가는 그가 내 속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하다. 왜 이렇게 소설이 어두워졌나 했더니 한 병 두 병 사놨던 와인이 문제였다. 글을 쓰며 마셔댄 탓에 문장이 비틀거렸다. 주인공도 나처럼 잔뜩 취해있었다. 그의 대사는 새벽 두 시 포장마차에서 들리는 술주정처럼 흐릿했고, 하는 짓마다 진상과 다를 게 없었다. 제목을 취중 진담으로 정해야 하나 싶다.
요즘 난 이상하게 마트만 가면 와인을 잔뜩 들고 나온다. 이마트 와인은 매번 할인 행사 중이고, 점원은 내가 가져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군다. 난 관심이 없는 척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다가도 단돈 오천 원에 프랑스 와인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을 흘려듣지 못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옅은 백열전구에 기대 원고를 고치면서 홀짝홀짝 마신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손가락이 술술 풀린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 읽어보면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쓴 글이라 처박아둘지언정 휴지통에 넣지는 않는다. 혹시 아나, 어느 순간 이 소설이 날 구원해줄지. 그윽하게 숙성되어 깊은 맛이 우러날지.
오늘도 칠레 와인을 마시며 글을 쓰다가 누웠다. 남자 둘이 와이너리 투어를 가서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는 영화 <사이드웨이>를 켰다. 대자로 뻗어서 바디감 좋은 와인과 캘리포니아 양조장의 찬란한 태양을 망막에 담아내니 나도 모르게 농장에 온 것만 같았다. 마치 VR기기라도 쓴 것처럼 모든 풍광이 관능적이었다. 영화는 보고 있으니 절로 와인이 당기는 통에 계속 취한 느낌으로 봤다. 심지어 영화 주인공이 원고를 갖고 끙끙대는 무명작가였다. 루저에 숙맥이라 대책 없이 외로워 뵌다. 그는 코끝에 살짝 머무는 향을 느끼면서 세상 근심을 잊어버린다. 한때 프랑스에서 잠깐 살았을 때도 이 영화를 봤다. 까르푸에서 보르도 와인을 몇 병 사 와서 밤새도록 지인과 수다를 떨었더랬지. 그때 내가 쓴 가면은 문학을 좋아하는 가난한 프랑스 유학생이었다. 가면이 헐거웠는지 계속 옛날 얘기만 했던 탓에 분위기는 엉망이었지만, 뭐 나름대로 귀여운 순간이었다.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내내 해피했던 포도주의 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허벅지에 앉았던 그는 프랑스 땅 어디에서 어떤 와인을 마시며 살고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이불을 빨고, 피아노로 히사이시 조의 연주를 즐겼던 그때 그 사람.
예전에 와인바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그와는 처음부터 와인과 인연이 깊었다. 사실 그를 발견한 것도 인스타그램에서 와인잔을 든 모습이었으니까. 그와 우연히 마주칠 때도 앞에 와인병이 놓여있었다.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대화에 백포도주는 잘 어울렸다. 우린 기형도의 빈집 얘기를 했고, 황인찬의 구관조도 씻겨줬던 것 같다. 와인만 마시면 난 이상하게 책 얘기가 당긴다. 좋아하는 작가에 관해 실컷 떠들며 아는 척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난 그와 잘해보고 싶어서, 구글에서 와인에 관한 상식을 이것저것 베껴 날랐다. 와인은 내 얼굴에 허영이라는 가면을 씌웠고, 자꾸 재수 없는 소리만 뱉게 만들었다. “카베르네는 매력이 없고, 메를로는 개성 없는 와인을 분류할 때 빠지지 않는 전형적인 와인이지. 샤르도네? 가장 순수성을 잃은 와인이야. 이건 꽤 헤비한 맛인데 피니시가 가볍네.” 이마트 특판 코너에서 추천해주는 것만 먹는 주제에 예나 지금이나 말은 청산유수다.
나이가 들수록 소비가 커진다.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카드를 긁는 기쁨을 떨쳐내기 어렵다. 사회적 지위와 수준이라는 가면을 쓰니 격을 따지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니 취향에는 더 쉽게 지갑이 열린다. 대도시에서 교양인 노릇을 하려면 제대로 값을 치러야 했고, 사사건건 동하는 장비병은 불치였다.
난 밥그릇은 없어도 커피 도구만큼은 제대로 샀고, 늘 값비싼 로스팅 원두를 주문해서 먹었다. 칼리타 드리퍼와 그라인더, 비알레띠 모카포트에 바덤 프렌치프레스까지 구비했다. 설거지하다 깨 먹어도 또 샀다. 지방에서 살 땐 합정동 엔트러사이트 커피를 굳이 택배로 공수해서 먹었다. 동네에 부지기수인 수많은 로스팅 커피집을 제쳐두고 홀빈을 쟁여뒀다. 내가 즐겨 먹던 원두 이름은 나쓰메 소세키였는데, 원두 봉투에 소세키가 어깨 결리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커피는 물론 책도 매주 몇 권씩 사들였다. 엄마는 내게 미쳤다고 욕했지만 나는 나름 문학인이라는 자부심에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도시의 지성인이라면 장서가의 가면이 필요했다. 난 요즘도 침대 옆에 쌓아둔 책 냄새를 맡으면서 작가의 가면을 쓴다. 알록달록한 표지만 봐도 어깨 결림이 싹 가신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페스코 베지테리언 어쩌고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연어랑 광어가 싱싱하다고 하면 어느 초밥집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본다. 요즘 트렌드가 비건이라 팔자에 없는 두부랑 버섯을 구워 먹는다. 취향을 갖고 산다는 건 돈과 시간의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분야든 취향을 가지면 감식안이 생기고, 각기 다른 개별성에 눈을 뜨게 마련이다. 내게 만약 취향이라고 내세울 게 없었다면 무색무취한 맹물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내 취향은 글쓰기다. 오늘은 청탁받은 글의 진도를 꽤 뺐다. 원고를 손보는 일은 지치지만, 그래도 계속 뭔가를 쓰고 있으면 작가가 된 기분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생전에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냐는 칭찬을 받으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위스키죠. 담배 몇 개비랑 위스키만 많이 있으면 됩니다.” 캬. 역시 뭘 좀 아는 작가답다. 그는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 시가와 술 한잔이면 족하다는 걸 아는 작가였다. 문학을 과장하지 않고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쿨함이 대가다웠다. 난 이런 영향을 받아 내 소설에도 주인공에 독특한 취향을 쥐여줬다. 한순간의 방종으로 모든 걸 망쳤지만, 그래도 끝내 혼자만의 시간을 극복하는 고독한 기질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얼간이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주정뱅이였다. 무엇보다 작은 접시에 담긴 치즈와 탁자 위에 놓인 포도주 한 병으로 깊은 만족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족하지. 가면무도회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