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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05. 2021

앤 라모트

삶도 글쓰기처럼 위트있게

 오늘 카페에 앉아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1권을 더디게 읽기 시작했다마의  페이지를 넘어서면서 이야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1968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가운데 미국 뉴저지를 배경으로 어느 안락한 중산층 가정이 산산이 부서지는 중이었다문장의 밀도 어찌나 촘촘한지 질식할  같았다어제오늘이 연휴가 아니었다면 초반에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그래도  끈덕지게 대가 '필립 로스' 어두컴컴한 세계를  버텨냈고이제  궤도에 올라타 속도를 붙이고 있었다쾌락 독서가 아닌 허영으로의  읽기가 통하는 순간이다여행으로 치면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게이트를 통과해 뉴욕행 항공기에 앉아  이륙하려는 참이었다 비싼 티켓아 아깝지 않은 참된 여행이기를.


 한창 재밌게 읽는데 내 앞자리에 앉은 청년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똥색 스웨이드 자켓을 입고 코코넛 과자를 집어 먹으면서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고 있었다. '어 나도 저 책 있는데.' 최근 시작한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읽어보려고 구매했지만, 결국엔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을 택해서 아직 못 본 책이었다. 청년 곁에는 손바닥만 한 수첩이 보였는데, 책을 읽다가 밑줄을 치고는 틈틈이 뭔가를 메모했다. 벌어진 수첩 틈새로 자그마한 글자들이 빼곡했다. 어떤 글을 쓰는 걸까. 어떤 말들을 하고 있을까. 난 청년의 문장들이 무척 궁금해졌다. 마거릿 'At Wood'라는 이름처럼 이 도시와는 멀찍이 떨어진 어떤 목가적인 자연주의 소설은 아닐까. 난 그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며 미루어 짐작했다. 잔소리하는 부모님을 배신하는 본능과 욕망을 따르는 이야기. 허물어져 가는, 낡고, 퇴폐하고, 어둡고, 쓸쓸한 도깨비 굴 같은 그런 광경들. 나도 16살 땐 그랬잖아. 다 박살 냈잖아. 적어도 <미국의 목가>를 쓴 필립 로스처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온 딸이 반전 구호를 외치다가 분을 못 이겨서 동네 우체국에 폭탄테러를 감행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겠지.


 최근에 읽은 <쓰기의 감각>의 원제는 'bird by bird'다. 이런 제목이 붙은 사연이 재밌다. 앤 라모트는 어릴 적에 오빠가 새에 관한 리포트를 쓰는 걸 구경했다. 근데 도무지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그때 신문을 읽던 아버지가 다가와서 말했다. 얘야 걱정할 거 없어, 한 마리씩 차근차근 잡으면 된단다. 아버지의 조언치곤 무책임하지만, 앤 라모트는 이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커서 글쓰기 코치가 된 라모트는 'bird by bird'라는 구호를 수업에 써먹기 시작한다. 글쓰기도 새를 잡는 포수처럼 한 마리 한 마리씩 죽이면 된다는 말로 학생들을 독려했다. 말 그대로 어려운 소설도 처음 백 페이지를 꾹 참아내면 이륙할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도 처음 소재를 발굴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쓸 수 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쓰기의 감각>을 읽고 사냥꾼이 된 마음으로 '빈 문서 1.hwp'를 열었지만 난 백지 위에 겨우 불평불만만 쏟아냈다. '오늘 스타벅스에서 내 옆에 앉은 거구는 혼자 테이블을 쓰려고 작정을 했는지 가져온 책으로 남한산성을 세워놨다. 나를 오랑캐라도 된다는 듯 필사적으로 방어막을 치고 십 분에 한 번씩 나를 흘겨본다. 적진에 선 나는 그를 혐오하며 버텨보다가 패잔병처럼 다른 테이블로 도망쳤다.'


 아무튼 앤 라모트는 <쓰기의 감각>을 통해 나처럼 글쓰기에 열의를 갖고 있지만, 막상 노트북만 켜면 어안이 벙벙해지는 풋내기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서두를 거 없다고, 다들 그렇게 노트북에 이마를 찧어가며 쓴다며, 몇 권의 책을 낸 자신도 여전히 녹록지 않다고 위로한다. 그렇다. 상대적인 위로다. 저 프로 작가도 애를 먹는데 내가 뭐라고 영감 운운하나. 그렇다고 <쓰기의 감각>이 무슨 자기계발서처럼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책은 아니다. <10년 안에 10억 벌기> 같은 뜬구름 잡는 실용서 흉내 내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헛된 희망을 경계하고 글쓰기엔 다른 방도가 없으니 엉덩이가 뜨거워질 때까지 써보라 조언한다. 일상다반사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인생을 다 털어먹더라도 내 얘기를 적어보라고 부추긴다. 오히려 글쓰기가 주는 최대의 보상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는 무책임한 결론까지 내린다. 열심히 써서 출판해도 누가 알아줄 확률은 더 희박하다고 쐐기를 박는다. (가슴이 아려오네) 난 이 대목에서 작가 필립 로스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앞으로 소설 읽기가 컬트적인 행위가 될 것이며 문학은 영화나 텔레비전, 컴퓨터 스크린과 경쟁하지 못할 거라고 잘라 말했다. 평생 소설을 쓰신 분이 소설의 죽음을 예고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앞으로 사라질 작품을 위해 평생을 써왔단 말인가. 난 책을 덮고 길게 한숨을 내쉰 후에 허공을 쳐다봤다. '그렇단 말이지.'


 사실 글쓰기 비법보다는 앤 라모트라는 작가의 유머러스함이 부러웠다. 딱딱한 글쓰기 책도 유머를 탑재하면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을 얹은 것처럼 중화된다.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유머가 중요한 세상을 살고 있다. 어릴 때야 종일 비관적인 소리만 늘어놓아도 제멋에 취해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보니 염세적인 비관론자는 술자리에서마저 환영받지 못한다. 이제 내 삶에 유머는 미덕이 아니라 삶의 핵심이자 불가결한 요소다. 아재 개그라고 비난받아도 열 개 치면 두 개는 통한다. 앤 라모트는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글에 활기를 불어넣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작가다. 내가 고작 2할 타자라면 그는 4할을 훌쩍 넘는 테드 윌리엄스급 교타자였다.

 이 책에 담긴 또 다른 배움이 있다면, 글쓰기엔 대충이 없다는 사실이다. 초고를 작성하고 얼렁뚱땅 브런치에 올리면 구독자가 떨어져 나간다. 내 초고는 너무 조잡하고, 인천에서 산 중고 침수차처럼 손봐야 할 곳투성이다. 어쩔 땐 다 때려치우고 유튜브를 틀고 싶지만 난 인정 투쟁의 장에서 물러설 마음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집 앞 카페에 앉아 새를 한 마리씩 사냥하고 있다. 백스페이스가 닳아 빠질 때까지 빵이야 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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