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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y 04. 2019

알랭 드 보통

사랑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내는 로맨티스트

 날씨 때문인지 게으름인지 요즘 무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루에 한 번 가는 체육관에선 몸이 천근만근이다. 왠지 모르게 어제보다 더 힘든, 같은 무게인데도 몸이 더 뻐근하다. 얼굴을 찡그리며 허리를 짚고 날 놀리는 이어폰을 떼어낸다. 샤워하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전화를 받았다. 넌 요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치 잡념의 숙주가 된 것 같다고 도통 떨쳐내지 못한 생각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그렇게 내 얘기만 하다가 끊어버렸다. 미안하다 미안해. 너도 이해할 수 있는지 누구나 하루에 한 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이 코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켜켜이 쌓인 일과가 날 놀려댄다고.


 사랑의 실체를 잡아내려는 무수한 책을 읽었다. 어떤 건 좋았고 간혹 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대체로 세상 연애담은 다 고만고만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 나온 연인의 밀담이란 동어 반복에 불과한게 아닌가 생각도 한다. 늘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얼토당토않은 문제로 이별한다. 사랑에 배신당한 개츠비라면 책을 읽으며 감화할지 모르나, 나같이 매사 냉소적인 사람은 하품을 참기 어렵다. 내 생각에 사랑이란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자취를 감추는 속성을 가진다. 오히려 사랑 주변부, 마치 도넛처럼 애정이라는 공동을 응시할 때 비로써 슬쩍 보이는 정도다.


알랭 드 보통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표지만 보면 통속극이지만, 정작 속지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깨닫는다. 스물아홉 알랭 드 보통은 세상 남녀가 가진 통념에 각을 세운다. 인류가 쌓아 올린 지성을 발판 삼아 그들을 조롱한다. 우리 각자는 고유한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작가 눈에는 그 모든 행태가 구태하다. 고전 소설부터 흔하디 흔한 철학 이론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태도다. 내 고유한 사랑이 타인의 눈에는 그저 개체의 특성일 뿐이라니. 난 무수한 독자가 왜 알랭 드 보통을 읽는지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근데 나도 읽고 있다)


 내 생각에 알랭 드 보통이 읽히는 이유는 정답을 쥐어주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정체불명에다가 성질까지 고약한 녀석을 해독해준다. 포디즘 공산품처럼 천편일률인 남녀의 사정은 따분하지만 그 사랑이 어떤 화학작용을 거치는가는 들어봄직하다. 내 실패한 사랑에도 이유가 있을 거라는 낙관이랄까. 마치 모든 이별은 사랑 그 자체에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해준다.

연애의 환승 통로엔 무수한 인파가 오가지만 정작 내 인연은 야생동물처럼 희귀하다. 길을 가다가 옷깃 스친 이와 사랑에 빠질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로또 당첨 확률보다는 높겠지. 그래서 난 인연을 기대하는 마음을 일상에 적는다. 혼자가 편하다고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일말의 기대를 로또복권처럼 지갑 안에 넣어둔다. 하지만 목 빠지게 기대하는 낭만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TV 드라마의 사랑은 특유의 허황함에 구역질이 난다. 작위를 덕지덕지 붙이곤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는 수많은 우연을 받아들인다. 반면 문학은 어떤가. 고독한 이는 문학을 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문학에 사랑은 필연이지만 작가는 우연을 멸시한다. 인연이라는 당의정 없이 사랑이 달콤할 수 있을까. 남이 보기엔 우연이라도 내겐 하나뿐인 운명 아니던가. 애초에 현실적인 연애란 없다. 핍진성을 강조하는 문학은 때론 고독을 통해 인연을 멸시한다. 이 작가는 연애 안 해봤구나, 라는 핀잔을 감수하고서라도 홀로 사색을 택한다. 네가 '쿤데라'냐며 힐난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랑의 환희보다는 생의 뼈아픔에 관심을 쏟는 문학사의 걸작은 대체로 인정머리가 없는 작가에게서 탄생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영리한 이유는 흔해빠진 연애담을 비트는 솜씨에 있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선 노스탤지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한 남자가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는 후회를 말한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지질한 남자만이 후회하고 복기한다. 만약 내가 이랬다면 헤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가정이다. 난 이런 회한이 보통의 소설을 순수문학과 연애소설의 점이지대에 안착시킨다고 생각한다. 책 후반부 이별을 복기하는 화자는 레이철이라는 연인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한다.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던 남자라는 개체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한다. 이별엔 이유가 없지만 알랭 드 보통에겐 이유가 있다. 과거를 끄집어내서 철학적 이론으로 명명하고 나면 내 이별도 전과 다르게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오늘도 교보문고 스테디셀러 서가에는 사랑을 잃은 무수한 이들이 알랭 드 보통을 읽으며 스스로 ‘보통’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이해받고 싶은 맘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가지는 재미 중 하나는 작가 개인에 있다. 까칠하고 가끔은 오만하며 이해할 수 없는 변덕을 반복하는 우둔한 남자. 미숙한 작가의 됨됨이가 캐릭터 안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도 나와 같은 어리석은 남자라는 위안이랄까. 그걸 숨기지도 않고 애써 과장하지도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의 또 다른 매력은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준다는 점이다. 플라톤, 니체, 마르크스, 융, 벤담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등장해서 뻔한 이야기에 고명을 뿌린다. 마치 사랑의 씨실과 날실을 한데 엮어 근사한 기성품을 만들어내는 방직공처럼 능숙하다. 소설 후반부 자기 감상에 빠져 접영을 하는 실연남은 읊조린다. 자기 위악과 절절한 호소가 낯설지 않다. 마치 연애소설을 수업 시간에 몰래 읽는 소년처럼 미숙한 감정이다. 온갖 현학적 어휘로 과거를 후회한다. 이 풋풋한 철학자는 삶에 대해선 뭘 좀 아는지 몰라도 연애엔 숙맥이다. 스스로 초래한 혼란에 이유를 갖다 붙이곤 중언부언한다. 마치 뼈대만 앙상한 이론으로 무장한 북유럽 복지정책처럼 때깔만 번지르르하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볼 수 있는 화자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좋아한다. 뉴욕과 런던의 핫한 술집엔 평소 독서력을 추측할 수 있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그의 책이 시간이 지난 지금도 20대에게 읽히는 이유다. 근사한 런던의 카페와 미술관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작법은 요즘 같은 인스타그램 세대에겐 익숙한 일이니까. 안경을 고쳐 쓰고 인류 지성의 틈바구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며 유식한 척을 하기에 카페와 술집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그 테이블 위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놓여있다.


 알랭 드 보통과 비견되는 작가라면 ‘롤랑 바르트’를 들 수 있다. 과거 <사랑의 단상>을 읽다가 욕지거리를 하고 던져버린 기억이 있다. 이 책은 1977년 출간된 뒤 무려 20만 부나 팔렸다던데, 나는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두 작가는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주제를 다루고, 형식적으로 말꼬리를 잡아 늘어뜨려 질리게 만드는 게 비슷하다. 두 작가의 결정적인 차이는 지성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바르트가 말하는 사랑은 현학적이다 못해 난처하다. 마치 사랑의 속성 자체가 불가지론에 가닿아 있다는 경고처럼 읽힌다. 그러므로 사랑은 기승전결이 없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혼돈에 빠진다. 이에 반해 보통의 사랑은 기술적인 교훈을 동반한다. 그는 사랑의 과정에서 배움이 있고 그로 말미암아 좀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종의 ‘멘토’처럼 사랑을 일종의 배움이라 말한다.


 보통은 현재 사회 전방위로 관심사를 옮기고 있다. 건축, 문학, 사회학, 교육 등 관심사는 끝이 없다. 하나의 지식인으로서 그의 야심은 공리주의자처럼 보인다. 최근 ‘인생 학교’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삶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다소 계몽적인 사업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염세주의자인 척하는 낙천주의자로서 지성이 삶에 끼치는 영향을 시험한다. 가닿을 수 없는 사랑과 기대 같지 않은 연애, 직업의 불안과 현대 예술의 난해함. 인생은 다방면에서 의심 투성이다. 하지만 보통은 배움이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는다. 지나치게 순수한 선의랄까. 난 알랭 드 보통 넓이를 사랑하지만, 그의 깊이엔 여전히 팔짱을 낀다. 초창기 더벅머리 시절 그의 연애 소설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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