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에 세 들어 산다

#1 소년성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

by 박민진

평소 날 아저씨로 느끼진 않는다. 식당에서 사장님이 날 아저씨라 불러도 대꾸도 안 한다. 흥분하면 인정하는 꼴이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냥 넘긴다. 그래서 마라샹궈가 얼마라고요? 세상이 날 아저씨로 규정해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이 도시에서 소년으로 살아가려면 단호한 결의가 필요하다. 안 들리기 신공 정도? 그래도 또래에 비해선 어린애처럼 살려고 노력해왔다. 아직 내 안에 수줍은 소년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고 믿는다. 좀 억지스럽지만 피터팬 콤플렉스를 자처하면 굳이 짊어질 필요 없는 짐은 내려놓을 수 있다. 나잇값에 줄줄이 딸려오는 명세서를 쭉쭉 찢고 내 식대로 휙휙 다시 쓰는 중이다. 이른바 쓸데없으며 어수선한 것의 총합이다. 이 도시에서 키덜트가 살 수 있는 곳은 롯데랜드도 에버랜드도 아닌 네버랜드뿐이니까.

네버랜드를 찾아서

요즘 내 친구들은 다 배 나온 아저씨가 됐다. 연초에 막걸릿집에서 모임을 했더니 이젠 같이 못 놀겠다 싶을 정도였다. 길에서 보면 피하게 생긴 놈들끼리 테이블 가득 앉아서 열심히 고기와 술을 먹었다. 머리는 벗어지기 시작했고 몸은 옆으로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유들거리는 얼굴로 처음부터 끝까지 속된 얘기만 늘어놨다. 어찌나 목에 힘이 들어갔는지 이젠 낯설 정도였다. 나만 혼자 네버랜드에 세 들어 살지 녀석들은 세속 도시에서 벼슬 한자리를 차지하고선 떵떵거렸다. 소득과 지출이 명확한 녀석들의 셈법은 자꾸만 날 소외시킨다. 친구들은 주저 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던 하룻강아지였는데 이젠 집도 사고 차도 바꾼 탓인지 볼이 늘어진 잉글리시 불도그처럼 보였다. 그놈에 아파트랑 차랑 주식이 뭔지. 굳이 우리끼리 만나서 땅 보러 다니는 얘기를 해야겠냐. 지긋지긋하다 정말. 뭘 또 한 병 더 시켜, 지하철 끊기겠다. 마저 먹고 일어나자. 진짜 길 가다가 마주치면 모른척해야지 싶었다. 난 등을 살짝 뒤로 빼고 친구들을 쭉 둘러봤다. 나 너희와 달라. 난 아저씨가 아니야.


아저씨라는 탈을 쓰면 편안해지는 게 있다. 내 아재 개그도 아재들 앞에서 하니까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진다. 녀석들은 킬킬 웃으면서 노골적인 비난조로 욕했지만 싫지 않은 눈치였다. 말장난으로 시작해서 야한 얘기로 흘러가는 익숙한 흐름에 나도 허리띠를 풀고 웃어 젖혔다. 이 저속한 소리를 즐기는 내가 싫었지만 역시 음담패설이 제일 재밌긴 했다. 영원한 소년으로 남아야 하는데 저질 농담에 넘어가다니. 막차 시간을 살피며 그래도 놈들보단 동안이라고 자위했다. 이제 네버랜드로 돌아갈 시간이야. 자주 연락하자는 뻔한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밤새워 놀 것처럼 요란을 떨더니 결국 막차 끊기기 전에 귀신같이 일어나는 겁쟁이들. 사실 난 계속 놀고 싶었는데 전화 한 통에 이렇게 흩어지다니. 이런 모래알 같은 사이 같으니. 우린 축 처진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지하철로 내려갔다. 곧 새벽인데 시끄러운 인파가 꾸역꾸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며 녀석들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녀석들은 대뜸 뒤를 돌아보고 내게 멱따는 소리로 외쳤다. 전화해 새끼야! 놀러 와 우리 동네로! 난 네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뭘 놀러 오라고 난리야. 그래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어디냐. 이게 현실적이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난 지하철에 오르면서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갈 마음의 채비를 했다. 우선 아재 개그부터 줄여야지.

양치기들

이제 녀석들과는 모임 아니면 만날 일이 없다. 다 결혼을 해버려서 눅눅한 탕수육과 싸구려 훈제연어를 입에 넣고 떠들 일도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한 묶음으로만 의미가 있는 사이에 불과하다. 서로 각자 개개인의 사연에 관해선 잘 모르고, 사실 관심도 없다. 그러니 따로 만나서 할 말은 더더욱 없을 터다. 우린 나이만 같지 관심사도 다르고 삶의 양태도 다 천차만별이다. 두 마디 이상만 이어져도 대화가 어색해진다. 옛 추억만 끄집어내는 관계는 쉽게 지친다. 우린 한때 학교에서 같이 밤새워서 과제를 했고, 함께 훈련을 받았고, 한때 내가 동경하고 미워하기도 한 사이지만 그 시절은 이미 다 지나버렸다. 이제 다 졸업했고, 사회에서 닳을 만큼 닳았으며 제각기 돌봐야 할 골칫덩이를 마주하고 산다. 그러니까 사실상 종료된 사이라 이거다. 그걸 이 나이에 억지로 이어 붙이려는 것도 억지에 가깝다. 그냥 가끔 만나서 여태 잘 살아 있다는 위안 정도 얻어가면 그만이다. 오늘처럼 근황 토크 한 시간 정도 하고 옛날 얘기만 주야장천 하다가 돈 없다고 지랄하다 헤어지면 된다. 마음 어딘가가 서걱거리지만, 이 정도면 족하다.


요즘도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나랑 관심사나 취향이 엇비슷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앉아서 얘기를 나눈다. 말 그대로 특정한 기능을 가진 만남이다. 공통의 경험이 전무하고 일상적인 접촉에 그친 인스턴트 한 사이다. 과거엔 바늘에 실을 꿰듯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요즘엔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만 유효한 우정을 선호한다. 그 맥락을 벗어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이지만, 관계에 들이는 공력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옅은 친구 사이는 도시의 고독을 이겨내게 도와준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 마지막 대사처럼 싱글라이프는 외떨어진 섬에 가깝지만, 느슨한 만남을 통해서 줄지어 늘어선 열도(列島)가 될 수도 있다. 언제든 끊어낼 수 있지만 억지로 고립될 필요는 없으니까 난 계속 새로운 이들을 마주한다. 마음 쓸 일이 적은 느슨한 지인이 주는 속 편함을 애용하며 산다. 하지만 어쩔 땐 필연적인 실망에 마음고생을 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관계에 깊숙이 빠져서 휘둘릴 때가 있다. 가벼운 관계의 장점만 취하며 산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오해해서 집착하고 상처 받기도 한다.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생각이 없고, 너무 쉽게 애착을 형성해서 우울해지고 싶지 않다.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외롭다가도 갑자기 약속이 잡히면 이상하게 불안해지는 게 나라는 놈이니까. 작가는 책이 절친이지. 맥북이 애인이지. 스타벅스가 열시면 문을 닫아도 할리스는 새벽 두 시까지 영업하니 괜찮다.


잠들기 전에 기이하게 한 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이십 대 초반 넉 달간 군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생애 처음 합숙이라는 걸 해봤다. 같이 방을 쓰던 동기는 소녀처럼 여린 감수성을 지닌 친구였다. 우리는 낮에는 훈련하느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밤에는 그 컴컴한 침대에서 농밀한 대화를 나눴다. 평소 친구나 애인과도 나누지 못했던 고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물론 낮에 훈련을 받는 중간중간에도 다른 동기들과 섞여서 농담을 따먹었지만, 그땐 일상적인 얘기뿐이었다. 우린 다른 동기들과 섞여 있을 땐 그냥 그 나이 때의 허세 넘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땀띠 나는 수놈의 세계에서 우리 자신도 인정할 수 없는 은밀한 감정을 숨기고 싶었다. 남자끼리 밤마다 부끄러운 얘기를 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우리 세계가 공유하는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먼 짓이었다. 하지만 밤에 불이 꺼지고 사위가 캄캄해지면 우린 자연스럽게 상대의 사정에 빠져들었다. 나란히 놓인 침대 위에서 팔을 괸 채 서간의 생각과 의견에 심취했다. 그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서로를 어색해하며 딴청을 피웠다. 남성성으로 질식할 것 같은 공간에서 다 큰 남자 둘이 속닥거리는 걸 들킨 순 없었다. 사람들은 저들이 규정한 정상성에서 벗어나면 악독하게 돌변한다. 우린 그걸 본능적으로 알았고, 당시 유일하게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시간인 새벽의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우리 관계를 숨겼다. 우리가 나눈 공감대를 지켜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에 남들 앞에서는 더 무심하게 굴었다.

자유의 언덕

그땐 인정하지 않았지만 난 어쩌면 나는 녀석을 사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나 느껴본 바 있는 땀내 나는 감정이었다. 조금 더 수줍어하고 덜 체면을 차렸던 그런 사이였다. 이런 원초적인 친밀함을 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넉 달의 시간 동안 우린 어둠 속에서만 친구였다. 우린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소년성(少年性)을 지켜줬다. 거기엔 어떤 호응도 위로도 필요 없었다. 그저 규칙적인 호흡이 가져오는 팽팽한 긴장만이 우리를 지탱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느껴본 소년성이었다. 이후론 그 어디서도 그런 대화를 나눠본 바 없다. 어디서나 꽤 믿음직한 어른으로 기능하느라 솔직하지 못했다. 간혹 술자리에선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맥주나 소주 따위를 조금씩 홀짝대며 취한 척 속 얘기를 꺼냈다. 내가 평소에 느낀 경악, 두려움, 혼란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쟤를 언제 봤다고 이런 얘기까지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 없는 관계가 주는 속 편한 감정도 있다. 고백한다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은밀한 즐거움이 통용되는 가벼운 사이였다. 흐리멍덩한 눈과 무표정한 말투로 술집의 나지막한 조명에 몸을 숨기고 술술 털어놨다. 어쩌면 술집은 그 부연 조명에 마음을 쬐러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내게 소년성이란 호프집 통닭 앞에서나 유효한 단어다.


요즘 글쓰기 모임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교집합보단 여집합에 가까운 이들과 한데 모여서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 가만 보면 좀 허름하고 지쳐 보이는 눈으로 뭔가를 주섬주섬 집어 먹으면서 온기를 나눈다. 마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처럼 우걱우걱과 옹기종기의 향연이다. 그런 와중에 전에 없이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나오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속내를 나누곤 한다. 실내는 살짝 어둡게 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밀한 질문을 던진다. 고민 끝에 속사정이 글에 베어지고 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라며 더 재촉한다. 어깨부터 팔을 어루만지며 뭔지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목소리를 가늘게 떨어 비브라토를 만들어낸다. 어둠 속에선 못 하는 소리가 없다. 그렇게 소년이 온다.



* 커버 사진 : 영화 인트로덕션, INTRODUCTION, 2020

* 삽입된 영화들 사진은 글을 쓸 때 떠올린 작품들입니다. 내용과는 무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