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인지 말할 수 있다고?

#4 MBTI로 나를 안다는 것이 가진 의미

by 박민진

지인들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해 모였다. 다들 대부분 처음 보는 사이라 서먹서먹했다. 나름대로 너스레를 떨며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봤지만,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내 비장의 무기인 이선균 성대모사를 하려던 차에 견디다 못한 누군가가 무료 MBTI 링크를 단톡방에 띄웠다. 우린 즉석에서 문항을 풀고 결과를 비교해봤다. '저는 INTF 나왔는데 어떻게 되세요?' '어쩜 이미지랑 완전히 다른 분이시네요.' '와, 그럼 우리 완전히 반댄데요.' 서로 유사한 점과 다른 점을 주제로 대화에 물꼬를 텄고, 각기 다른 사연을 털어놓으며 서로에 관해 알아갔다. 난 E가 뭔지 I가 뭔지 녹색 검색창에 묻고 나서야 쭈뼛쭈뼛 말꼬리를 파고들었다. 나처럼 유행에 약한 사람은 대화 흐름도 부여잡기 어렵다. 아는 척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나도 이해하고 있다는 강렬한 신호를 보냈다. 혈액형의 굴레에서 막 벗어난 줄 알았는데 이제 다시 네 자리 알파벳으로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상대를 유형화하는 대화는 흥이 났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의 언어를 모르고 산다는 소외감이 들었다. 내가 관계와 사랑을 배우는 곳은 책과 영환데, 그런 얘기를 나눌 자리는 점점 더 희박해진다. 하긴 책을 쓰는 작자들이란 죄다 사랑에 버려진 개츠비에 가깝다. 연애하면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류 작가들의 문장은 하나같이 고독에 몸서리친다. 문학은 오히려 사랑보다 그 이후의 여파를 다루기 때문이다. 모든 카메라가 일제히 홀로 남겨진 자의 고독을 비추는 꼴이다. 내가 아는 대다수의 고전은 타인의 영향 없이 진정한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좇고 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버려진 자의 눈망울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고, 부감으로는 이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측은한 등판을 찍어간다. 그래서 난 외로울 때 스탠드를 켜고 소설을 편다. 기이한 아늑함과 예측 불가한 폭력성, 쉼 없는 감정 기복이 고스란한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며 안도한다. '아 나만 이러는 건 아니구나.' 손쉬운 MBTI의 16가지 시나리오에 날 태우면 고독은 물 건너간다. 오해 따윈 끼어들 거 없이 명료하게 내 속사정을 일축한다. 단순해지지 않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왔는데 어느 자리에서든 날 한 마디로 요약해내기를 강요받는다. 우물쭈물하다 요령부득의 말을 뱉고 토라지기 일쑤다.


고독은 인물의 정신과 사상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고독을 끌어안고 고독에 저항하며 몸을 뒤척일 때 비로소 가뭇해진 감정을 헤아릴 수 있다. 한데 고독은 꽤 복잡한 녀석이다. 몇 마디로는 그 고독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뜨신 밥 먹고 동료들과 저녁까지 거나하게 먹고 와서도 고독할 수 있다는 건 긴 서술을 필요로 한다. 내 집 거실에는 여러 국적, 온갖 시대 배경을 담은 책들이 뒤죽박죽 더미로 쌓여있다. 장서가의 숙명은 다른 건 다 버려도 책은 못 버리는 데 있다. 책은 아직 가지 못한 길, 읽히지 않은 서사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설마 하니 거기에 내 인생을 바꿀만한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있을지 모른다는 미세한 기대를 떨치지 못한다. 이 켜켜이 쌓인 문장 속에서 고독을 깨칠 단초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켜켜이 쌓인 책들을 다 어떤 경위로 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그냥 표지가 이뻐서 집어오고, 우연히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들고 온 책이 한가득하다. 멍청하게 두 권 산 책도 보이고, 읽었는데 개정판을 또 산 책도 있다. 뭐가 어찌 됐든 나와 인연을 닿은 이 책들의 공통점은 고독을 마주하고 맞서고 끝내 피하지 않은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이 외로운 작자들은 집세도 안 내고 내 좁은 집 한구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누구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으면 혼자 사는 집도 아늑하다고 했지만, 난 체온 없는 소란은 사양이다. 쉽고 낙관적이기만 하면 속는 기분이다. 그냥 무뚝뚝하게 말이 많은 책장이 더 듬직하다. 이리저리 말을 돌리면서라도 내가 혼자인 이유를 설명해내는 작품엔 명료함 따윈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나는 책에서 읽은 고독을 동료들에게 꺼내놓지 못했다. 그런 음습하고 누추한 소리들을 뱉으며 분위기를 깰 순 없었다. 여기는 지금 진지해지면 벌레가 되는 초록초록한 잔디밭이다. 귀뚜라미처럼 구슬프게 울 수 있는 곳은 텅 빈 백지뿐이다.


녀석들은 분위기 전환차 다시 MBTI 얘기로 돌아갔다. '이 유형은 나랑 상극이야.' '이런 유형은 절대 말을 편하게 할 수 없어'라는 식으로 단정하는 말이 오갔다. 우린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인간상에 대해 논했고, 그들을 어떻게 내 삶에 발붙이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대화는 과거에 만난 이상적인 상대와 최악이었던 상대에 관한 얘기로 넘어갔고, 난 그걸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듣고 있었다. 그러다 불쑥 이상한 말을 쏟아냈다. '병신 짓을 했더라도 조건 없이 줬던 연애는 후회가 남지 않아. 그게 비단 실패에 불과하더라도 어쨌든 흔해빠진 연애보다 훨씬 더 낫다고. 오히려 평범 그 자체인 무난한 연애는 흠집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다고.' 내 우악스러운 강변에 싸늘해진 동료들은 잠시 곤란한 표정을 하고서 침묵하다가 일제히 다시 MBTI로 농담을 따먹었다. 난 기죽지 않고 실패한 연애를 털어놨다. '난 ENTJ, 늠름한 지도자형이고 관련 인물이 히틀러니까 오늘 밤 니들은 내 궤변을 순순이 들어줘야겠다.'


얘기는 어느새 연인 사이의 권력에 관한 대화로 이어졌다. 힘의 균형추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랑은 없을까. 어떻게 늘 더 사랑하는 쪽과 덜 사랑하는 쪽이 나뉠까. 난 더 좋아하는 쪽이 상처 받게 되어있다고 시니컬하게 내쐈다. 사랑도 한쪽이 점령군이고 그로써 어느 한쪽은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칼자루를 쥔 자에 휘둘리면 모든 잘못은 더 좋아하는 쪽이 진다. 그래서 애걸하고 매달리며 울부짖는 건 힘없는 자의 몫이다. 그에 반해 사랑받는 사람은 당당하게 권력의 만능감을 누린다. 그 앞에 몸을 조아린 사람은 그가 언제 날 부르고 언제 내칠지 몰라 혈안이 된 얼굴로 납작 엎드린다. 약자는 별 수 없이 수동태의 문장만 쓴다. 난 그렇게 식은 맥주를 홀짝이며 연애 심리학 석사라도 받은 양 떠들었지만, 싸늘해진 눈초리를 더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이게 다 작가들한테 배운 개똥철학이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참을 걸었다. 날씨가 좋아서 택시를 타기가 아까웠다. 오늘 먹은 고칼로리에 변명이 필요했다. 삶이 무탈하고 안전하고 평온하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왜 왁자지껄한 자리만 끝나면 마음이 시큰할까. 난 문득 서른여섯 이 나이를 먹도록 이런 질문들에 대답은 고사하고 제대로 답할만한 건더기도 없다는 걸 깨닫고 심란해졌다. 언제까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지,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들은 어떻게 수습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맨정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