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이다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데 옆자리에 실팍한 초콜릿 밀크셰이크 두 잔을 올려놓는 친구들이 보였다. 스타벅스에는 밀크셰이크가 없지만, 생크림과 초콜릿 시럽이 잔뜩 들어 있는 그 음료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나 마나 이탈리아에는 없는 이탈리아식 작명을 붙인 무슨 치노 무슨 카노 같은 음료일 것이다. 그들은 앉자마자 빨대로 입만 쭉 빼고 마시면서 문제집을 풀었다. 가늠이 어려웠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였다. 스타벅스에서 숙제하면 더 잘된다는 걸 벌써 눈치챘다니 제법인걸. 얼마 못 가 두 사람은 문제집을 펴놓고 요즘 사는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은은한 조명에 밀크셰이크면 뭐든 털어놓을 수 있기 마련이다. 나는 정말 그들의 대화를 엿듣지 않았다. 읽던 책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참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엿들으면 아이들이 혐오하는 눈빛으로 날 흘겨보며 야 저 아저씨 쳐다본다며 그냥 가자고 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제 얼굴보다 큰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소곤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잘 들렸다. 어른들과 차별화된 고주파 대역을 쓰는 바람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우퍼가 달려 있었다. 마치 내 귀에 속삭이는 것처럼 코를 훌쩍이며 하는 말소리까지 다 들렸다.
그들이 앉아서 고개를 쑥 빼고 얘기에 집중하는 모습은 창밖으로 보이는 봄꽃이 무색할 만큼 귀여웠다. 이 공간을 장악한 두 소년 덕분에 온도와 습도까지 조금씩 올라가 있었다. 색감은 좀 더 파스텔톤으로 부해졌고, 배경 음악은 ‘카페에서 틀기 좋은 음악 100선’처럼 흔해빠진 멜로디 대신 귀에 착 감기는 보사노바풍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 어린이는 자신들이 내뿜는 강력한 자장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걸 알면 얄미운데 모르니까 더 어여삐 보였다. 그들의 알콩달콩함이 내 컴컴한 낯까지 밝게 만들었다. 세상에 알콩달콩함이라니. 내가 지난 십 년간 글을 쓸 때 이 부사를 쓴 적이 있던가. 깜찍할 정도로 구식인 관용구가 튀어나와 버렸다. 근데 정말 알콩달콩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한 길이 없는 모습이었다.
두 친구는 어찌나 사이가 좋아 보이는지 단짝일 것 같았다. 단짝이 아니라면,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나 떠는 그런 사이라면 오스카에서 아역 배우상을 신설해야 마땅했다. <미나리>의 앨런 킴도 그런 친밀함을 흉내 내긴 어려울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걱정거리를 제 일처럼 걱정해줬고, 그들이 평생을 골치 아파할 부모와의 갈등도 진심으로 위해줬다. 나는 본의 아니게 엿들으며 같은 페이지만 멍하니 쳐다본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중에서도 내 귀를 사로잡은 건 ‘그 애’ 얘기였다. 요즘 신경이 쓰이는 그 애 얘기라면 나도 좀 알지. 한 친구가 최근 집요하게 카톡을 하는 아이가 골칫덩이라고 했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지 표정이 밝았다. 멍청하다느니 이상하다느니 불평을 했지만, 얼굴엔 호기심이 드러났다. 만약 그 애한테 그런 얼굴로 얘기를 했다면 나라도 계속 연락할 것 같았다. 정떨어지게 하는 표정은 내가 보여줄 수 있는데. 혐오를 자아내는 미간 찌푸림을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두 아이는 그렇게 내밀한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의 돈독함을 확인하고 있었다.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절대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야말로 우정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내 치부와 약점을 다 드러내고, 내가 이만큼 네게 드러냈으니 너도 보여줘야 한다고 강요하는 다분히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서로의 비밀을 어떤 증표처럼 지니고는 다른 친구들을 배척할 때 써먹는 사귐의 방식이라면 나도 잘 알았다. 그런 청교도적인 폐쇄성이야말로 그 시절이 가진 우정의 근간 아닌가. 난 두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며 과연 누가 먼저 그 약속을 깰지 추측해봤다.
밀크셰이크는 두 사람의 우정을 축하하는 트로피처럼 얼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벤티 사이즈에 담긴 음료가 쭉쭉 줄어들 때마다 무슨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까르르 소리가 났다. 너희들은 그렇게 맘 놓고 셰이크를 마시면서 어쩜 그렇게 말랐니. 난 그게 제일 부럽다. 그러다가 한 친구의 밀크셰이크가 공책으로 엎어졌고, 당황하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둘 다 어쩔 줄을 몰라해서 내가 가서 치워주고 싶은 마음을 어렵게 억눌렀다. 뒤늦게 휴지를 더 가지러 간 친구는 쏟은 친구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괜찮다는 말을 연발했다. 서로 상대를 먼저 닦아주고, 어디 묻은 데는 없냐며 매무새를 살펴줬다. 그곳에 바로 평화가 있었다. 두 사람을 가자지구로 보내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도 단 삼일이면 끝날 일처럼 보였다. 두 소년의 케미스트리는 내가 절대 쓰지 않는 또 다른 단어 중 하나인 순수와 우정의 결정체였다.
새로운 친구를 사귄 지 꽤 오래된 느낌이다. 비단 기존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주말이면 마트에 아이들을 데려가야 한다는 사명감에 날 잊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과 긴 시간 소통하고 무람없이 굴 수 있을 만큼 편해지는 과정과 멀어졌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대체 어떤 것인지 감조차 잡지 못했을 적 기억만 남았다. 성적 긴장감 없이 한 사람과 관계를 지속해본 지가 꽤 됐다. 무엇보다 어떤 인간적인 호감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다. 내가 드러낸 호의가 떠안게 될 책임이 부담스러워졌다. 어릴 적엔 누군가에게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설명하고, 지나치게 개입하고, 지나치게 흥분하는 방식을 통해 친해지는 게 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구로 가는 통로를 잘 찾지 못한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는 식이다.
요즘 내가 터득한 방식은 관계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혼자 살아가는 요령이다. 마음을 동요케 만드는 복잡한 관곌랑 일찍이 멀어졌다. 어째서 타인에 대한 이해는 아무리 잘해도 늘 약간은 빗나갈 수밖에 없는지 더는 고민하지 않는다. 고요함을 내가 이룬 최대의 성취로 여긴다. 고요함을 목돈 저축처럼 쌓아놓고 산다. 고요함을 내가 선택한 유일하고 유리한 근원으로 모신다. 고독한 마음을 이리저리 가져다 쓰면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낸다. 이미 나보다 앞서 고독과 씨름하다 종국엔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된 작가들을 형님으로 모신다. 그들이 쓴 책을 지혜랍시고 받든다.
하루를 정확하게 나눠 쓰는데 도사가 됐다. 평온하기만 한 삶을 촘촘히 쪼개 쓴다. 누가 그러던데 놀이가 인류문명 발달의 핵심이라고. 잘 노는 사람이 가장 문명화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든 시간이 흥미롭다. 쓸데없다고 말하는 짓을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을 보라) 이제 당치도 않은 해로운 소망에 탐닉하지 않는다. 밤이 늦으면 번잡한 외로움이 찾아들지만, 어느 정도 실상을 알기에 더는 톡 창을 열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구도로 관찰하며 글을 쓰는 데 익숙해졌다. 내 펜대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변화에 주의를 기울인다. 오늘의 날씨나 커피 맛이라든지 계절이 변화처럼 느긋한 나무의 색감 같은 거.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와 사람들의 옷차림까지.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거리의 흐름에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낸다. 활기찬 공원의 아침과 비교적 썰렁한 주말의 공기, 평일만 되면 바짝 긴장감이 높아지는 차도, 단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달라져 버린 하늘의 색감을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미세하게나마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지극히 친근한 그들의 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난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커피를 마시는 이들과 같이 지내고 있었다. 내 시선 안에서 그들은 삶의 한순간을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예상보다 금세 얘깃거리가 떨어졌는지 자리를 떴다. 주위 공기가 그들의 부재에 따라 식어버렸다. 두 사람이 앉던 자리를 한 연인이 차지했다. 격앙된 목소리에 다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관심이 없어서 귀를 닫으려고 했다. 약속을 왜 어기느냐,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거친 말이 오갔다. 아니 왜 싸우고 난리야. 나는 귀를 닫고 다시 소설책에 빠져들었다. 또 다른 사연이 시작된 참이었다. 내 예상대로 뻔한 갈등. 그렇지만 내 예상과는 미세하게 다른 그런 양상. 남자는 몸 좋은 폴 오스터처럼 잘생겼고, 입은 옷도 말쑥해 보였다. 마치 소개팅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풀을 잔뜩 먹인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에 반해 여자는 집에서 막 나온 것처럼 복장이 가벼웠다. 흰 엄지발가락에 버켄스탁 닥스 슬리퍼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한 끗 다른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함을 성격처럼 내재한 클리셰 범벅의 드라마. 그리스 신화처럼 꽤 숙명적인 구석이 있는 파국. 나는 몸을 웅크리곤 다시 내 일처럼 그 사연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