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인 Feb 12. 2024

고백

to. 우리 강아지


우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어느 집에서 율무나 라떼와 같은 이름으로 불렸을 지도 모르는 하얀 우유에 커피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은은한 색깔의 강아지는 은적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얻어 어렵게 살다가 겨우 겨우 우리 집에 와 이제는 어려운 강아지가 되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도 사람에게 안길 줄도 모르고 그저 쓰담쓰담 만져주며 산책하기만을 바라는 강아지가 되어 고요하게 앉아있으니 나는 너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너가 바라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없음에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세상에 어렵게 사는 모든 동물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말없이 네 앞으로 가 쓰담쓰담 '따뜻해?', '졸려?', '밥 먹었어?', '물 먹었어?' 필요한 게 없는지 살피고 네 표정을 살피고 귀찮아 보이면 손을 물리고 가만히 너를 바라보면 너는 무엇이 불안한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괜히 앞발 하나를 넌지시 건네오면 나는 그 발을 잡고 흔들며 잘자 하고 속삭이고 돌아온다.


나는 우리가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지만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며 하루 두 번 산책을 지켜주려 노력하며 네 응가를 매번 체크하며 눈꼽을 떼어주며 털갈이로 온 사방에 털이 날려도 묵묵히 치울 테니 너는 건강하기만 하여라. 늘 즐겁기만 하여라. 그것이 바로 나의 행복일 것이다.



눈이 억수로 내리는 날 기분이 좋은 김은적씨



#강아지 #반려견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이 되고 싶었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