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되고 싶어서 아무것도 될 수 없었고, 할 수 없는 것들을 손에서 내려놓으니 해야 할 것이 생겼다.
18살, 고 2때 나는 일기를 쓰며 5년 뒤인 23살의 나를 상상했다. 원하는 대학을 다니며 전공 공부도 열심히 하고 5개 국어를 하고 해외여행도 다니는 자유분방한 청춘. 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 새로워 보이고 좋아 보이면 그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영상 만들기가 그랬고, 그림 그리기가 그랬고, 웹디자인이 그랬고, 코딩이 그랬다. 유튜브도 잠깐 생각했었지. 하고 싶다면 공부부터 하는 사람이라 아주 기초적인 것을 배워서 해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나는 그게 나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진정한 나의 흥미가 아니었던 쪽이 더 가까운 것 같다. 좋아 보이는 것을 하고 싶었을 뿐, 진정 그게 나의 욕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지쳐 욕심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 몫은 아닌 것 같아. 잘 그리는 사람들한테 부탁하자. 영상도 나보다 더 잘 만드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필요하면 용역으로 넘기자. 그리고 코딩은...! 유튜브는...! 이제 그만 ~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욕심을 내며 나는 왜 그걸 못하지?라고 좌절하지 말자.
5개 국어 마스터는 그 뒤로도 종종 등장했는데, 그 뒤로 몇 년이나 흘러 그걸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가. 지금까지 나는 무얼 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대단하게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 운전면허 외에 자격증도 없고(심지어 운전도 못해!), 유효기간 지나서 영어점수도 없고, 일본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백수다. 껄껄. 우와 정말 별 볼 일 없구나. 그런데도 왜 마음이 초조하진 않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거나 성격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은 과거에 비해 경험이 쌓여 인생을 대비할만한 자원이 있고 대단하게 좌절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그렇다고 해서 부족함이 없다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내가 뭘 잘하는지, 잘할 수 있을지 조금은 윤곽이 보인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알겠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시간이 지나 곁에 남은 소중한 사람들.
모든 것을 알아야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겨우 그 욕심을 버리고서야 가야 할 길을 찾았다. 나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내 인생에서 무엇을 빼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