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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Aug 02. 2023

깊은 서랍 속의 편지

단비에게.

언제였을까. 숫자를 헤아려보니 아마도 2012년인 것 같다. 네가 나에게 아주 작은 글씨로 컴퓨터로 타이핑해 건네준, A4용지를 반으로 잘라 또 반으로 접어 건네준 편지. 나는 그것이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꼭꼭 간직하고 수 년째 내 책상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었어. 아주 의미 있는 언어들은 아니었을지라도 네가 나에게 돌아와서 기쁘다고 해준 그 말이 참 좋아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게 두었어. 그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나 봐.

오늘 그 자리에 이제 또 다른 편지를 올려놓았다. 이번엔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봉투에 담긴 편지. 11년 만에 또 너에게 받은 새로운 편지라고 볼 수 있겠다. 이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 그냥 네가 나를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생각해 준다는 것이 좋았어. 


언젠가 주변에 다정한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네가 떠올랐어. 좋은 것은 좋다고 꾸밈없이 말해주던 너. 네가 해사하게 웃으며 '언니 좋아요'라고 말해주던 그 모습이 바로 떠올랐거든. 너는 나에게 이것저것 고맙다고 해주지만, 오히려 나는 너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 꾸밈없이 솔직하고 당당하면서도 늘 사람들에게 다정하던 모습. 정작 내가 너에게 했다고 하는 말들과 행동은 잘 기억나질 않는데 우린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각자 기억하고 있나 보다. 나는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데 말이야. 그 시절 우리가 잘못했다고 했던 것이 뭐 얼마나 특별했겠니. 약속에 늦은 것? 누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지 않는 것? 과제를 하지 않은 것?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그게 참 뭐라고 말이야. 누가 누구를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그런 우리가 나이를 먹고 또 먹고, 이제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너를 이렇게 나는 축하하고. 우리가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너를 우려했던 것은 혹시라도 네가 슬퍼질까 봐, 불행 해질까 봐를 우려한 것이었나 봐. 검증이 끝났다는 그 말이 한 편으로 기쁘고 이제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겠다. 그냥 네가 행복하길 바라. 무슨 선택을 하든, 나는 언제나 널 응원할 거야. 우리는 부디 이렇게 꾸준하게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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