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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Dec 17. 2019

지금 울어도 언젠가 그칠 것을 안다.

드보라에게.


드보라.
이제 12월도 중순이 지났고, 우리의 서른세 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의 변화도 앞두고 있는 2019년의 마지막 달이구나.
나는 혼자 살기 시작했고, 너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지.
너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준비하고 있고, 나도 새로운 자리를 찾고 있어.
가까이에서 봤을 땐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멀리서 보니 우리는 비슷했구나.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부쩍 옛날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순간이 늘었다.
그것은 그리운 기억이기도 하고,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하고, 후회스러운 기억이기도 하다.
그중에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해볼 텐데라고 하는 아쉬움의 기억도 있다.
그중에는 너와 함께한 19살의 장면들도 있다.

최근에는 특히 부끄러운 기억들이 걷잡을 수 없이 떠올라 조금 지치기도 했었다.
이유가 뭘까.
누군가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잘 모르겠다.
이유가 뭘까.

30대가 되어서 좋은 점은 부끄러웠던 20대와 거리를 둘 수 있어서인 것 같다.
내 부끄러운 기억과 후회스러운 기억들은 대부분 20대에 머물러있다.
그래서 가끔은, 물론 사랑하지만,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오히려 얼마 없는 10대 때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편할 때가 있어.
그건 아마 내 부끄러운 기억들과 관련이 있겠지.

삶에 숫자를 매기고 층을 나누는 것은 이럴 때 유용한 것 같다.
이름표를 붙여, 지금의 나와 거리를 두게 하는 것.
그래야 우리는 그 모든 부끄러움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기분이 가라앉는다고들 하지만, 나는 비가 오는 게 좋다.
빗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비가 그치는 게 아쉽다.
하지만 반드시 비는 그치겠지. 그러나 또 언젠가 다시 내릴 것이다.
지금 울어도 언젠가 그칠 것을 안다.
하지만 언제든지 우리는 또 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편지를 쓰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쓸 것이라면, 그게 너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내가 우리가 행복하길.
기도하지 않는 나이지만, 오늘만은 너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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