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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Feb 02. 2023

윤슬을 바라보며

"이성이 욕망을 위해서 일하던 상태에서 벗어나서 사물과 세계를 호젓하게 관조하면 사물과 세계는 아름답게 나타난다. 이와 동시에 우리 마음에는 저절로 평안이 깃든다."


- 박찬국,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바람은 춥고 거리는 한산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기분이 어떻냐는 물음에 아직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순간까지도 알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간호사로부터 수술 중 수혈을 하거나 자궁을 드러내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 서명을 했다. 그리고 수술실 문 앞에 앉아 소식을 기다렸다. 복도는 빈집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창문 너머로 푸른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얻었던 자격들은 시험에 합격하거나 정해진 과정을 수료해야 했다. 하지만 부모는 달랐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자격이라기보다는 예고된 사건에 가까웠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잘 거두고 정돈하는 과정, 그리고 하나였던 존재와 천천히 멀어지는 일. 그것이 부모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오전 8시 37분, 아주 밝은 아침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나는 방금 부모가 되었다. 머리가 조금 멍해졌다. 벽 너머로 옅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 아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2.8kg의 어떤 존재를, 나와 아내를 닮은 얼굴을, 처음 공기를 맞이한 부드러운 살갗을, 그 작고 무의식적인 움직임들을 상상해 보았다. 기다림이 무척 길었다.


잠시 후 유리창 너머로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갓 태어난 조그만 생명이 하얀 천에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그러나 바라볼수록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아기는 자고 있었다. 잠든 얼굴에는 평온이 있었다. 머리칼도 제법 나있었다. 뭉툭한 코와 눈썹은 나를 닮았고 긴 입꼬리는 아내의 것과 같았다. 아기는 이따금씩 입을 찡긋거리기도 했다. 불편한 듯 고개를 움직이고 인상을 쓰면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윤슬'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순우리말로 윤슬이라고 한다. 나는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눈이 멀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소리 없이, 미동도 없이, 온 마음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떠한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친애하는 작가님들과 뭉쳤습니다. 책 속의 문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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