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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y 20. 2019

오전 반차를 내고 한강을 갔다


오전 반차를 내고 한강을 갔다. 보통은 반차를 내고 병원에 가거나 늦잠을 자기 마련이었다. 오늘은 달랐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내려버렸다. 회사에 오후에 출근하겠다고, 늦게 전해드려서 죄송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영문인지 나도 나를 몰랐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흐릿했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아서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편의점에 들러 샌드위치와 마실 것과 과일을 샀다. 바구니 대신 비닐봉지를 들었지만 어쩐지 소풍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시원한 한강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참 여유 없는 사람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혼자 한강에 온 건 처음이었다. 시간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내 삶은 달리고 있다. 이제는 앞서가는 사람과 뒤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다. 온전히 나의 호흡과 속도와 컨디션을 살피며 뛰고 있다. 그리고 더 앞서 있을 내 미래를 그리면서 달린다. 그런데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죽도록 쫓아야 한다는 것은 똑같았다. 언제나 내 앞을 달리는 미래의 내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보았다. 그러면 조바심이 들었다. 이래서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술을 끊었다던 내가 몇 달 만에 맥주 한 캔을 샀다. 'BINTANG'이라는 인도네시아 맥주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바보같이 여유로웠을 때 나는 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수분에 젖은 머리칼을 강바람에 말리고 찰랑찰랑 수중 가옥 기둥에 부딪히는 물소리를 들으며 마셨더랬다. 이제는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인도네시아 빈탄이 아니라 한강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그 사이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 삶은 그대로이고 얻은 것만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얻은 것은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고, 잃어가는 것은 시간처럼 침묵하며 사라졌다.


내 학창 시절의 별명은 '멍용'이었다. 언제나 멍하니 딴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을까. 오늘은 앞으로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뒤돌아본다. 그때의 나를 그리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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