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똥을 싸도 어차피 나 찬양할거잖아ㅋㅋ
유명한 인터넷 명언이 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앤디 워홀이 했다고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앤디 워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지어내서 적당히 앤디 워홀 이름 갖다 붙였을 뿐임. 누군진 몰라도 그 분은 저 혼자만 아는 이 자랑스러운 비밀을 남몰래 떠올리며 종종 흐뭇하게 낄낄대실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말 뒤에 '-앤디 워홀'이 아니라 '- 쿠엔틴 타란티노'를 붙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이름만 없었다면 흔하디 흔한 똥 중 하나였을 터다. 하지만 거장의 이름이 상표로 붙여짐과 동시에 똥은 작품이 됐다. 원래대로라면 코를 부여잡고 눈을 가리는 데 사용됐을 두 손은 번쩍거리는 '타란티노 상표'를 만나 그를 찬양하기 위한 박수에 동원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여러모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자신감이 돋보인 영화였다. 마치 관객들을 향해 "자, 이래도? 이래도?"하고 얄밉게 시비를 터는 느낌이랄까. 영화를 보는데 "내가 이 따위로 만들어도 너넨 나 찬양할 거잖아. 그러니까 나도 내 좆대로 영화 만들겠음ㅋㅋ"하고 한국말로 낄낄대는 타란티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을 정도.
실망스럽다. <조커>, <겨울왕국2>와 함께 하반기 기대작 3편 중 하나였는데 이 지경일 줄이야. 영화는 통째로 맥거핀 덩어리다. 유의미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면은 장면일 뿐, 스토리와는 따로 논다. 장면마다 살짝 쫄깃한 서스펜스가 주어지는데 이 역시 꾸준히 반복되면서도 막상 폭발은 없다 보니 영화 중반 쯤 지나서는 별 긴장감도 없이 매한가지로 지루해진다. 혹자는 1969년의 할리우드를 정말 충실히 재현해 냈다고 감탄하던데, 그런 장면 하나하나의 묘사나 분위기 자체가 중요하면 그냥 다큐를 보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지금의 타란티노 팬덤을 형성케 해준 <펄프 픽션>과 닮았다는 말도 나오던데 별로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킬빌>은 물론이고 <쟝고>나 <바스터즈>랑도 다름. 내가 보지 않은 나머지 4편의 타란티노 영화와 닮은 점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작품은 이 작품이다.
일단 영화를 보러 가시는 분들은 반드시 나무위키에서 '맨슨 패밀리 사건'을 꼼꼼히 읽어보고 가시라. 그거라도 알고 가야 마지막에 전통 타란티노식 쾌감이라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러더라도 "이게 뭐지?"하는 지루함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본인이 타란티노 뽕에 잔뜩 취해 영화관에서 그의 신작을 보는 자체에 오르가즘을 느끼거나, 혹은 1969년 미국 할리우드에 직접 살아봐서 그 향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기대는 하지 마시라. 물론 뭐, 우리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일단 '거장' 소리 듣는 예술가의 작품은 어떻게든 한 번 구경하러는 가 보듯, 이 영화 역시 '거장'의 은퇴-1번째 작품인 만큼 극장에서 보는 자체의 의미는 있겠다.
P.S)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작품이다. 타란티노는 총 10편의 영화를 찍고 감독을 은퇴할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P.S2) 주인공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는 가상 인물이다. 나머지는 실존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