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는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을까?
"프루스트는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을까? 그의 병이 너무 심해지기 전에는 카페오레(우유를 넣은 커피) 두 잔이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진 은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그는 커피를 필터에 가득 넣어 한 방울씩 드리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또한 그에게 온 편지를 살펴보고 신문을 읽으면서, 제대로 바삭바삭하고 고소하게 구울 줄 아는 빵집에서 하녀가 가져온 크루아상을 커피에 찍어 먹었다."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중-
이 글은,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의 한 문장이다.
프루스트가 아침마다 크루아상을 먹었다는 것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 문장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그 프루스트를 흉내 내려고 믹스커피에 편의점 크루아상을 찍어 먹어먹어 본 적이 있다. 눅눅하고 찌그러진 크로와상을 먹으며 프루스트가 아침마다 먹었다는 바삭하고 고소한 '제대로 된 크루아상'이란 과연 어떤 맛일까 상상하려고 애쓴 적이 있다. 5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un cafe, sil vous plait(커피 한 잔주세요)"
파리에서 맞는 첫날 아침, 나는 숙소 앞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불어 문장으로.
그러자 점원이 바로 뒤이어 물어보았다. 크루아상은? 조식을 배부르게 먹고 나온 뒤라 '크루아상은 괜찮아'하고 말했다.
이른 아침 파리의 노천카페에 앉아, 두껍고 받침 있는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신다. 방금 청소를 마친 길 건너의 성당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시원한 물비린내와 첨탑의 종소리, 사람들의 손마다 쥐어진 부활절을 축하하는 푸른 잎사귀. 팔랑거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시없을 순간이라고.
그리고 이어진 생각, '아, 크루아상 먹을 걸.'
내일은 꼭 크루아상을 먹자고 다짐하며 카페를 나섰다.
하지만 그다음 날은 박물관 오픈 시간에 가느라, 또 그다음 날은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나가느라, 그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 마침내 나는 공항 카페에 앉아 크루아상과 커피를 주문했다. 여행객들의 캐리어 끄는 소리와 안내 방송으로 어수선했다. 받침 있는 잔 이 아닌 1회용 종이컵에 커피가 담겨 나왔다. 종이봉투에 크루아상도 함께.
크루아상 한 입.
파리의 크루아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바삭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커피는 많이 썼다. 너무 써서 마음 한 편까지 씁쓸해졌다. 아니다. 마음이 씁쓸해서 커피맛이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항 카페에 앉아 5년 전에 내가 읽었던 문장에 대해 생각한다. 출근 전, 스스로를 위로해 주기 위해 믹스 커피와 편의점 크루아상을 먹던 나를 생각한다. 문득 인생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파리에 왔더라면 어땠을까. 지금과 달랐을까, 그런 생각들이 자꾸 들었다. 돌아보지 않으려 애써도 자꾸만.
다시 만날 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이 앞에 있을 때는 예민하고 재빨라지기를 원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이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유일무이한 순간이라는 것을 아는 자만이 순간을 산다. 그런 사람들만이 몸을 조금 더 앞으로 기울여 뒤로 물러나려는 스스로를 떠민다.
아끼고 아끼다 똥 만드는 나여, 몸을 조금 더 앞으로 기울이길. 크루아상을 먹어야 하는 순간엔 망설이지 말고 주문하기를. 오랜 세월 수많은 기회 앞에서 주춤거렸던 순간들을 반복하지 말기를. 나는 크루아상 덕분에 파리에서 그런 것을 다짐할 수 있었다.
방황하는 사람들은, 결국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떠돌아다니다가, 호기심이 식은 다음에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늘 늦된 내가 여행을 계속하는 까닭은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언제나 나는 '다음번에는 더 솔직해해야지', '다음에는 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려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다.
이제 프라하로 떠날 시간이다.
Adieu,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