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10년 했으니 책 좀 쓰라고 해서 쓰는 이야기 #6
나는 05학번이다. 학교를 다니며 휴학을 한 적도 없었기에 예정대로라면 2011년 2월 졸업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0년 하반기, 4학년 2학기 때 대외활동 때문에 서울에서 생활하며 교환학생도, 인턴경험도 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유니브엑스포'라는 대학생 대외활동 박람회 라는 멋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학생들이 참여 할 수 있는 다양한 대외활동, 공모전 등에 대한 정보를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자리였다. 나는 이런 경험의 장이 부족해서 이 곳 서울까지 와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곳의 친구들은 더 많은 정보를 나누고 교류하기 위한 자리까지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자리가 부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맘일 거라 생각했지만 서울생활을 마무리하고 내려와야 하는 2011년이 되었음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해당 행사를 추진하셨던 '대학내일'의 신익태 소장님(현 올댓캠퍼스 대표)을 찾아가서 부산에서 '유니브엑스포'를 개최하고 싶다 말씀드렸다.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그 자리가 처음이었지만 무슨 배짱이셨는지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다. 얼떨결에 '유니브엑스포 부산 학생위원장' 이라는 직함이 생겼고, 혼자서 조직 구성부터 단체 섭외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총괄 책임자가 되어버렸다.
대외활동에 참여하는 참가자로, 동아리의 운영자로서 역할을 맡을 때는 '열정'이라는 단어 하나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을 메꿔줄 수 있는 잘 짜여진 시스템과 동료가 있었으니까. 얼떨결에 맡게 된 이 자리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단언코 열정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시스템이라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나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했지만, 이는 결코 단시간에 키우거나 보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작정 시작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료를 찾아 나서야 했고, 다양한 단체들을 설득해야 했으며, 기업과 행정의 후원을 끌어내야 했기에, 부족한 실력을 보완 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만 했다.
답은 하나였다. '책'에 매달렸다.
2011년에는 학과 후배들과 시작 한 '혜윰', 학교에서 신청자를 받아서 진행 'Mac 연구소' 총 2개의 독서모임을 동시에 운영 및 참여하며, 매 주 1~2권씩의 책을 꾸준히 읽게 되었다. 말 그대로 '무작정,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목표나 목적은 사치였다. 부족한 나의 수준을 감출 수 있는 실용적인 포장지를 어떻게든 만들어내겠다는 희망 뿐이었다. 없어도 있어보여야 했기에,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통해서 지적이고 배울 것이 있는 리더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구현해내려 애썼다.
이를 위해서는 책을 읽기 위한 '물리적인 시간'의 확보가 관건이었는데, 다행히도 학교에서 집까지는 지하철로 48분이 걸렸고 대부분 자리에 앉아서 이동을 할 수 있었기에, 하루 평균 1시간 30분 정도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무작정, 닥치는대로, 열심히 책을 읽어나갔지만, 이것이 크게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실력은 깊이에서 나오고, 깊이는 시간과 함께 한 숙성에 달려있다. 벼락치기로 책만 읽는다 해봤자 경험이 수반되지 않은 지식은 지혜로 발전 될 수 없으니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 미칠 것 같았으니까. 불안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가는 모순 덩어리의 시간이 이어졌다. '넌 부족해, 열정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아. 이런것도 모르면서 시작했니?' 라고 책이 내게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나의 내면은 움츠러 들었고, 내가 감당 하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마저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길을 찾는 자에게 문이 열리는 것처럼 운 좋게도 한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니 내용만 참고)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더가 지치고 힘들 땐 누가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하는가. 결국 리더는 셀프 모티베이션(Self-Motivation)을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격주마다 기획단들과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약 10분 정도의 피티를 매 번 준비했다.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을 공유하는 내용이 중심이었지만, 기업 섭외와 후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진행 속도에 딜레이가 생겼고, 어떤 날은 새로 전달 할 수 있는 내용이 없는 날도 있었다. 나 조차도 성공이 아닌 실패에 한 걸음 더 가까워 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동료들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어떻게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채웠어야 했기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고민하다, 나의 불안을 잠시나마 해소해줬던 책 속의 문장들을 전달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기획적인 측면이나,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 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발췌해서 전달했는데, 내가 아닌 남의 생각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자리가 반복되면서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자신감을 불러왔고, 자신감이 가미 된 이야기는 나의 불안을 스스로 달래주었다. 이야기를 준비할수록 우리의 프로젝트는 '실패 할 수도 있는 것'에서 '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위한 읽기라는 과정의 숨겨진 힘을 발견했다.
그동안의 읽기는 무작정 많이를 추구하는 '양'으로 접근을 하는 시간이었다. 읽어왔던 책이 너무 없었기에 꼭 필요한 시기였지만 책 속의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고 내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동료들에게 책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하면서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살펴보고, 내용들을 이리저리 엮어내면서 맥락을 파악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책 속의 이야기를 나의 일상과 경험과 연결짓는 '자기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독서라는 행위의 새로운 층위를 경험하게 되면서,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으로 모드 전환을 하는 방법을 우연히 찾아낸 것이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한 '인풋(input)'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서 어떤 '아웃풋'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독서의 숨겨진 목적이라는 것. 그제서야 불안 속에서 불안을 달래는 방법을 알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레 셀프 모티베이션까지 연결되었다. 동료들을 위해 준비한 이야기를 통해서 내 스스로가 구원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나 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도 메세지가 잘 전달이 되었는지 대부분이 중도 탈락하지 않았고, 성공적인 개최라는 결과를 누릴 수 있었다.
반복되는 읽기 속에서 '독서의 무용함'이라는 덫에 빠져있다면, 양에서 질로, 입력에서 출력으로, 성공이 아닌 성장으로 모드 전환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