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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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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Aug 30. 2020

늦은 여름 밤, 풀벌레가 운다

울음일까 대화일까 코고는 소리일까

낮에도 풀벌레가 운다. 사람들의 소란한 소리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낮의 풀벌레는 바쁘기까지 하다. 밤과 달리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사람은 저 소리를 운다고 표현했는데, 사실은 어떤 소리인걸까.


내 위치를 알리는 것일까? 나름의 어떤 대화일까? 어쩌면 의도하지 않고도 편안히 있으면 절로 나는 일종의 코고는 소리같은 걸지도 모르지. 생각이 많아진다. 그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는 생각.


자주 나는 내가 아무소리도 안낼때 마음이 편하다고 느낀다. 가끔은 나의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방식이 서툰건지 내가 뱉어낸 표현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또 비슷한 강도로 나를 후회하게 만든다.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이 많으면 마주하게 되는 감정 또한 다양하다. 감정을 해석할 수 없을때 나는 초라해지고 외로워진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침묵을 선택하는 사이,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도 있다.


오늘 밤은 사람인 내가 풀벌레를 부러워하는 밤. 침묵을 선택한 내가 풀벌레의 표현 능력을 동경하는 밤이다. 뭐라고 말하는 걸까? 저게 울음이라고 해도 부럽다. 대화라고 하면 더욱 부럽고, 잠꼬대라고 해도 부럽다.


열대야조차 없는 습한 여름밤. 차를 몰고 밤산책을 나가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를 만나는 밤. 상향등을 켜도 앞이 뿌옇기만 한 안개 속에서는 두 눈과 귀가 쓸모없어진다. 깊은 물속에서 문득 세상이 무서워진 작은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가까이 혹은 멀리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내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걸 듣고 나도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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