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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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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Sep 24. 2021

인터넷이 끊겼다

세상은 멈추지 않지

갑자기 사무실에 인터넷이 작동되지 않았다. 추석연휴를 끝낸 첫날이라 바쁠 것을 예상했다. 디자인 일이라는게 급하게 들어오는 일들이 많아 항상 대기상태여야 하는데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은 초조해졌다. 이 초조함은 나의 것이라기  보다 누군가의 초조함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으며, 이 상황이  길어질 수록 나중에 마주할 내 일의 양과 촉박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가끔 일이 종일 끊이지 않는 날이 있는데 화장실 갈 시간이 없기도 했다. 아랫배가 당기는 느낌이 와야 헐레벌떡 화장실로 뛰어가는 일도 종종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지만 그렇게 된다. 십분에 한번씩 전화하는 고객도 있고, 당장 필요하다며 오전에 맡기고 오후에 찾으러와서는 아직도 안됐냐는 사람이 있다. 뚝딱 되는 일들이 아니기에 설명을 하면 그들의 초조함 섞인 읍소에 결국 화장실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제는 이해하기조차 포기했다. 일을 그때 그때 맡기지 않고 촉박하게 맞춰오는 심리 말이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걸 생각날 때 써서(원고) 그때 가지고 오는거지 그걸 미리미리 하는 사람이 어딨나? 기가막히는 적반하장에 말잇못. 다들 그러기 때문에 그냥 이해를 않기로 했다. 그냥 처해지는 상황에 끌려다니며 초조하거나 덜 초조할수밖에.


인터넷 하나 안될 뿐인데 전화도 검색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 사실에 새삼 당황스러워서 직원들끼리 나눌 대화도 없다. 그저 이 상황을 멀뚱히 지켜볼 뿐인데 그 와중에도 해야할 일을 생각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다는건 일 중독 증상의 하나가 아닐까. 무언가 하려하면 할 수록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암울한 상황.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발전할 수록 독립적이고 자의적으로 살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는 점점 나이들고 병들어 무언가,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가고 세상은 그런 나같은 건 배려할 여력이 없다는 듯 야멸차게 버려두고 가버린다. 나는 또 도태될까 기어이 급히 떠나가는 세상을 붙잡아 내가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그러다 세상이 조금 살만한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길 때쯤 이렇게 인터넷 오작동 한 번으로도 이토록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도 잠시 다시 돌아온 인터넷에 우리는 열심히 밀려버린 일을 처리하고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냈다는 듯 당당한 걸음으로 퇴근을 한다. 인터넷이 많은 정보를 내게 가져다주고 나는 그것을 습득해 더 나은 삶을 위한 일상을 살게될 줄 알았건만 인터넷이 끊기고 나서야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니 어디부터 다시 끼워맞춰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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