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키 크는데 실패했습니다.

많은 아쉬움을 이 키가 말해줍니다.

by 햔햔

나는 키 크는 데 실패했다. 무척 아쉽다.

그게 무슨 실패냐는 말에, 지금 이 키에는 내 대부분의 실패를 대변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노력 흔적 無


방학만 지나면 10cm씩은 크는 몇몇 친구들을 보며 언젠가 내 순서도 올 줄 알았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에서 나와 고만고만하던 친구 녀석이 여름방학을 지나고 훤칠해져 왔을 땐, 이제 곧 내 순서가 올 거라는 기대에 내가 더 기뻤다. 비록 그 급격한 성장이 친구의 얼굴에 여드름을 장착시켰지만, 그 정도 부작용은 용인할 수 있었다. 마치 성장의 힘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치솟은 여드름은 훈장 같아 보이기도 했다.


두 해가 지나고 네 번의 방학이 지났다. 중간쯤의 나의 자리는 앞에서 두 번째 줄로 옮겨졌고 뒷자리에서 만화책을 보겠다던 목표는 그간 커 버린 친구들의 배려로 이뤄졌다. 그 기나긴 2년 동안 키는 5cm 남짓 자라다 말았고 나의 피부는 여전히 뽀송했다. 3학년이 되어 170cm를 겨우 넘기면서 이제 10cm만 자라면 된다는 나의 바람은 졸업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고 다들 크는 키를 더 크지 못함으로써 남 다르게 살겠다던 또 다른 바람은 어이없이 이뤄졌다.


그때부터다. 키에 대한 웬만한 미신 같은 말들을 믿게 된 것이. 25살까지 큰다는 말. 군대 가면 큰다는 말. 큰 친구와 다니면 큰다는 말. 그 가느다란 지푸라기를 잡고 대학과 군대를 거치는 내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현실적으로 목표를 낮췄다. 175cm. 마지노선이었다. 앞으로 4cm. 적어도 175cm는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작 그만"이란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나의 뼈마디는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175cm라는 고지를 점령하지 못한 채 군대를 제대했다.


군 제대와 동시에 헛된 희망에서도 졸업할 수밖에 없었다. 173cm. 누구나 그렇지만 딱 떨어지는 173cm는 정확히 173cm를 뜻하지 않는다. 무조건 올림. 키를 재면 시원하게 173cm를 넘어서기 힘든 172cm 초중반을 뜻한다. 171.9cm는 172cm. 172.1cm는 173cm. 180cm 이상에서는 별 의미도 없을 0.1~0.2cm가 내게는 몹시도 소중한 이유다.



| 난 바라기만 했지 노력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키 173cm(무조건 올림 기준)이 어째서 실패냐고, 분노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실이다. 적어도 대중의 무리에서 긴장해서 등과 목을 곧게 세우면 눈에 띄게 작지는 않은 것 같으니, 길이에서 만큼은 그래도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게 있어 지금의 키는 지난날 고민만 하고 노력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의 아쉬움을 대변하는 상징 같은 것이다. 희망에 기대서 걱정만 하며, 할 수 있었던 많은 것을 해보지도 않고 바라기만 했던 아쉬움이 베인 것. 내 실패의 대부분의 원인의 표면화된 결과. 그것이 내 키인 거다.


그리도 애타게 원하면서도 그를 위해 노력한 것이 없다. 장에 맞지 않는다고 우유를 거부했고 누워있어야 할 시간에 희미한 불빛에 만화책과 키득거렸다. 땀이 배는 것이 찝찝해 체육 시간 농구 경기를 건너뛰고 공부를 핑계로 관절의 움직임도 최소화했다. 움직임이 적으니 먹는 것이 덜했고 먹는 것이 덜하니 활발히 움직일 힘도 나지 않았다. 학생 시절 내내 57kg. 생각해보면 인대는 날로 뻣뻣해졌고 살도 없어 뼈마디가 늘어날 힘도 공간도 없었을 듯하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그 무슨 노력을 했어도 지금과 같을 수도 있었겠지만, 해보지 않은 게으름이, 반복된 고민을 마치 노력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그게 너무도 아쉬운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실패다


그래서 키 큰 사람들과 함께 할 때면 여전히 예전과 다르지 않은 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이제는 괜찮아질 만도 한데, 그래도 요즘은 나름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열과 성을 다해 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렇다. 아마도 희망은 접었지만 미련은 끊어내지 못하고 마음속 응어리로 남겨 콤플렉스로 승화시킨 이유일 테다. 오래전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말에 격분하면서도 내 삶을 돌이켜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기에, 많은 이들의 삿대질에 동참하지 못했을 정도로.


차키 대신에 키 180을 받았다는 가수 지코. 내 보기엔 그만한 선물이 없다. 복 받은 사람. 그나저나 난 과연 무엇을 받았을까?



| 믿음과 합리화


2011년. 슈퍼스타 K에서 울랄라세션이라는 스타가 탄생했다.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탄탄한 노래 실력을 갖춘, 자칭 딴따라. 이래저래 감동적이었다. 그중 내 뒤통수를 심하게 때렸던 것은 그중 가장 작았던 멤버의 별명이 '빅 마운틴'이라는 사실이었다. 누가 봐도 작았던 사람. 하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누구보다 깊고 높은 목소리를 가졌던 남자. 빅 마운틴. 너무 멋졌다. 유명하지 않을 때부터 가졌을 별명. 그 남자는 그 작은 몸 안에 거대한 산을 품고 있었다. 결국엔 드러날 깊은 골과 높은 봉우리를 가진 산을.


생각해보면 키가 크고 싶었던 것은 이루고자 한 것이 많아서였다. 연예인도 되고 싶었고 운동선수도 되고 싶었던 꿈 많은 아이의 단순한 목표였고 이성을 알게 되면서 조금 더 매력 있어 보이기 위한 공통 조건 중 하나였다. 반드시 그래야 했던 것이 아님에도 유리한 선에서 출발하기 위해 요행을 바랐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크지 않은 키는 많은 것들의 포기를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 키로 연예인을 어떻게 해...', '농구 연습은 하면 뭐하나..', '키 작다고 싫어할 텐데 창피하게 뭣하러..' 그러니까 노력하지 않을 이유. 그런 합리화에 사용할 유용한 도구로까지 진화해 버린 거다. 어쩌면 지금 이 글도 합리화를 위해 적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훗날 '내가 그래도 이런 글을 쓰며 반성도 했구나..' 하는 위안이라도 얻으려고 말이다. 이쯤 되니 아무래도 내가 물려받은 것은 어떻게든 편한 쪽으로 마음을 다잡는 합리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아. 이 속 편한 인간.


그래. 난 합리화하는 재능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키 180cm도 유용하지만 뭐든지 합리화하는 재간도 여간 쓸모가 있다. 어릴 적, 작은 키를 커버하려 신발 뒤축에 종이를 넣어 다닌 적이 있었다. 신발 벗는 식당이 싫었고 산책이 힘들었다. 왜 당시 주변인들은 남자고 여자고 친구고 동생이고 다 컸던 것일까. 그래서 관뒀다. 난 그냥 크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노력했다고 컸을지 모르지만 게을러 키를 키우지 못한 콤플레스가 심한 사람. 그렇게 인정하기로 했다. 아쉽고 부럽다고. 그러고 나서 내 신발은 언제나 스니커즈나 로퍼다. 작아서 신경 쓰이지만 어쩌겠나.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것을.


아침 출근길에, 나와는 다르게 시원한 보폭으로 앞서가는 한 청년이 보인다. 청년? 아. 이제 또래라고 우기기도 힘들어졌나 보다. 나이가 들며 염치는 생겼는데 부러움은 가시질 않는 이 미련. 아무튼 예전 같으면 나도 크고 싶다는 바람을, 적어도 아들들은 저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나중에 아빠만큼 이만큼 클~~ 거예요!!"란 아이들의 바람이 이뤄지질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난 글렀으니 너라도 크렴...


아무튼 합리화를 잘하는 나로선 그저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때 연예인을 꿈꾸던 꿈나무로서 술자리 가무에 능한 덕분에 회사의 녹을 받고 있고 그나마 농구라도 할 줄 알아 총각들이 운동에 껴준다. 천만다행으로 내 키에도 만족하는 아담한 아내를 만났고 아직은 아빠를 엄청나게 크게 봐주는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거기에 더해 더 이상의 아쉬움은 남기기 싫어 당장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합리화는 선을 넘는 뻔뻔함으로 내 삶을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어느 날, 마스크를 쓰면 나만 귀가 아픈 이유는 내 얼굴이 커서라는 아내의 얘기에 내 입에선 아무렇지 않게 이런 대답이 튀어나올 정도로.


세상 어디에도 얼굴이 큰 사람은 없어!
그냥 귀가 좀 뒤에 달린 사람이 있을 뿐이지!


난. 이렇게 나를 아쉬움 없이 아끼는 속 편한 사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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