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생각했던 길을 잃었을 때.

시작은 내 갈 길을 알고 있었다.

by 햔햔

| 안다고 생각했던 길을 잃었을 땐, 길의 시작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 여러 가지 이유로 길을 잃지만 잊을 수 없는 시작이 있기에.

| 조금 오래 걸려도 언제나 그렇듯 나는 길을 찾을 테니까.


sketch1594850246923.png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될 때


집에만 있던 가족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한 시간의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처음의 활력은 사라지고 몸이 흐물거린다. 매번 느끼지만 네 아이를 동반한 여섯 식구의 외출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학습 효과도 없는 이 메멘토. 다음엔 반드시 집에 있으리라 마음먹으며 흐물대는 발을 끌어당긴다.


양손 가득 기저귀 가방과 먹거리, 거기에 휴대용 변기까지 짊어지고 현관문을 어렵사리 열고 나왔다. 편한 집 두고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번민이 또다시 엄습하는 찰나,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꺄아~” 오랜만에 밖을 나온 아이들. 신이 났다. 아니. 신이 들렸다고 해야 하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작두는 좀 그렇고 계란 위에 올려 두어도 사뿐거릴 기세다.


집 밖을 나와 다시 차 안에 갇힐 줄도 모르고 즐거워한다.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깝지만 자꾸 입 꼬리가 팔딱거린다. 씨익. 감출 수 없는 감정이 새어 나오며 조금 전까지의 번민이 일거에 사라진다. 몸이 다시 단단해지고 발걸음이 가볍다. 언제나 시작이 어렵지 보람은 있구나... 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나는 다시 메멘토가 된다.


아이들의 조잘댐 속에서 아내와 담소를 나누며 근처 이곳저곳을 누볐다. 알록달록 흐드러진 꽃, 녹음이 짙어진 나무. 그간 많은 것이 변했다. 평소 같으면 도시락을 싸서 나들이를 했어야 할 시기인데 떼로 모여 이리오라며 손짓하는 이 친구들을 그저 눈인사만 주고받으며 지나쳤다. 여보게 친구들. 그대들은 변한 게 없구려. 부럽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곳저곳 다녔다. 그러다 일전에 우연찮게 들어섰던 도로가 생각났고 얘기 끝에 우리는 그 길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차량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강을 굽어보며 지날 수 있었던, 끝에 바다가 맞닿아 있던 길.


| 길을 찾다 길을 잃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분명 이리 와서 저리 간 다음 거기서 돌면 길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감으로 길을 더듬다 찾은 것은 길 중간에 우뚝 서 있는 표지판이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렇다. 길을 찾다 길을 잃었다. 꽤나 심하게 당황.


대체 그 길은 어디로 간 것일까. 분명 저 거대한 건물을 뒤편에서 본 기억인데 그리로 향하는 길이 없다. 괜한 오기가 발동해 근방을 빙빙 돌아보지만 헛수고다. 내비라도 찍어 둘 것을... 쉽게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즉흥적이었던 경험은 선명한 선을 남기지 못하고 기억에서 희미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돌고 집으로 오는데, 아무래도 패배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깜빡깜빡하는 것을 나이와는 무관하다며 애써 아무렇지 않아 했는데, 이렇게 되면 피할 수 없는 팩트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길을 짚어 나갔다. 벚꽃구경을 위해 벚나무 길을 들어섰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하기에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철마다 다른 색의 옷을 입는 익숙한 길을 평소보다 천천히 나아갔다. '저기에 정류장이 있었군', '여기에 샛길이 있었나?' 일전엔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에 당도한 순간, 낯설었던 길로 들어섰던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서 좌회전이다'.


당시에 느꼈던 생소한 느낌을 낯설지 않게 받으며 애타게 찾던 길로 들어섰다. 여전히 인적이 없는 버스 정류장. 재개발을 시작하고 있는 집터들. 그리고 저 아래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강 줄기. 드디어 찾았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


| 길의 시작에서 잃었던 길을 찾다.


어릴 적,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갈 때면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의 십자가를 찾았다. 십자가만 보고 가면 아는 길이 나와 집을 찾을 수 있었기에 길 찾기의 시작은 항상 십자가 찾기였다.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세상을 넓혔을 땐 목욕탕의 굴뚝이, 다른 동네의 십자가가, 주요 관공서가 길 찾기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넓어졌고 지도 한 장만 쥐어 주면 온 세상을 다닐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럼에도 나는 길을 잃는다. 멍하니 앞만 보다 길을 지나치는가 하면 그날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잘 알던 길이 생소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정신을 차리지만, 살면서 헤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젊은 학창 시절 얼마나 많은 지하철을 잘못 탔던가. 지금 보면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 노선도를 암호 해독하듯 들여다봤던 그때, 난 내 위치도 내 갈길도 찾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의미로 길을 헤매면서 십자가나 굴뚝을 아내와 아이들이 대신하고 있다. 내 중요한 시작점들. 여전히 내가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지만 이들을 생각하면 방향만은 분명해진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눈에 보이는 익숙한 길도 헤매기 일쑨데 가보지도 정해지지도 않은 인생이라는 길이 그리 녹록할 리 없다. 계획했던 것은 뜻대로 되지 않고 지향하던 바는 점이 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지향'점'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작고 희미한지 서있는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수밖에.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딘가에 있기는 한지 방향은 대략 알겠다는 것이고 쉽지는 않지만 헤맴이 영원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중간중간의 이정표가 생겨난다는 거다.


| 시작에 각인된 설렘과 다짐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잃었다면 조금 늦더라도 아는 길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록 지체한 시간이 아깝고 한 번에 잘하지 못한 내가 안쓰럽지만, 시작엔 그간 잊고 있었던 설렘과 다짐 같은 것들이 남아 여전히 내 갈 길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설렘과 다짐. 그 자그마한 부추김에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분명 전 보다 좀 더 여유 있게 멋진 풍경을 즐기며 나아갈 수 있을 거다.


글을 써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백기를 많이 가졌다. 진작에 그만뒀을 법도 한 내가 이렇게 꾸역꾸역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책을 보거나 지난 노트를 뒤적이다 맞닥뜨리는 '시작의 설렘과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나도 이런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라는 그 이상 야릇한 설렘이 잊을만하면 찾아와 쓰게 만들었다. 시작이란 내게 그런 것이다. 언제든 벗어난 길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이정표. 그리고 더 힘차게 출발할 수 있는 격려와 응원이 있는 출발선. 덕분에 오늘도 시작을 생각하며 이렇게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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