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점심시간 연대기
왜 혼자 먹어? 왕따야?
누군가 옆 자리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말을 건넸다. 내 옆에 앉음으로써 혼자가 되지 않은 그에게 자신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갈 수 있게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대답했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가?"
예전 같았으면 왜 혼자 밥을 먹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했을 텐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혼자서 밥을 먹느니 굶었던 나였는데 놀랍게도 이제는 혼밥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밥을 빨리 먹지 못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그 맛있음을 표현할 만큼의 속도를 낸 적이 없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숟가락을 놓는 마지막 주자였던 것을 보면 천성이지 싶다. 초중고 점심시간에 나의 주 반찬이 김치와 교실을 뛰놀던 친구들이 만들어준 먼지였던 것은 최소 30분은 필요한 내겐 당연한 일상이었다.
대학생이 되고는 여학우들의 덕을 많이 봤다. 남정네들의 저돌적인 식사에 대화라는 것이 생겨났으며 저도 모르게 밥그릇을 뚝딱하더라도 점잖게 기다렸다. 한 무리의 남자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누구도 나를 '평소처럼' 채근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은 평온했고 여유로웠다.
몇몇 친구말로는 내가 밥 먹는 속도가 느린 것은 아직 군대를 가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군대라는 조직도 내 식사 시간을 줄이는데 실패했다. 훈련소 첫날, 긴장감 속에서 최선을 다한 나는 반 밖에 먹지 못했고 조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식사 빨리 빨리 합니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더 노력했을 텐데, 조교가 식탁을 발로 찼고 나는 포크 숟가락을 식판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그가 바라는 속도는 낼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짐승 취급은 곤란했다.
"그만 먹겠습니다."
모자챙 아래로 보이는 조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조용히 다가오더니 복화술로 밥을 마저 먹으라며 협박조로 읊조렸고 그 이후 재촉은 하지만 겁박하는 일은 없었다.
당시엔 몰랐는데 식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방부장관의 지시에 위배되는 일이었고 일병을 단 조교로서는 상당히 난감한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거기다 다행히 배치받은 자대에서는 밥 먹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웠기에 훈련소에서 빠릿해져 들어온 동기들과 다르게 나만은 정체될 수 있었다.
그랬던 내가 입사 후에 밥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배려에 최선을 다한 것이 주효했다. 게다가 직장에서의 식사 속도는 군대에서의 식사 속도를 웃돌았다.
나는 분명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먹었음에도 쉴 새 없이 이야기하던 동료가 먼저 수저를 놓았다. 다들 만기전역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보충역, 면제 상관없이 빨랐다. 팀내 유일한 여사우도 나를 능가했다, 모두가 씹고는 삼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다소 과장돼 보이지만 내가 느낀 것은 이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 빨리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식사를 10분 만에 끝내다니. 나는 속된 말로 숨도 쉬지 않고 씹고 마시고 삼켜야 겨우 그들의 기다림을 5분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면 빈자리를 찾아 헤매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도 내게 큰 도움(?)을 줬다. 나만 빼곤 식사를 마친 우리 테이블이 포위된 듯 둘러싸이는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씹는 횟수는 줄고 삼키는 양은 많아졌다. 뜨거운 눈치에 다들 쫓겨나듯 일어나고 혼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경험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혼밥은 단순히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아닌 어떤 처량한 이미지로 인식됐다. 남의 이목에 낭창낭창 휘둘리던 그때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했던 내가 처절한 노력을 한 또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느렸다. 미안함과 감사함을 매번 표하며 식사를 했고 그동안 점심시간은 직장 생활의 중요한 리프레시 포인트로 자리했다. 누군가는 기분 전환을 위해 산보를 다녀오고 누군가는 달콤한 낮잠이나 게임을 즐겨야 하는데 그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면 미안함이 커져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급이 올라 갈수록 뜻하지 않게 기다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였다. 밥 먹을 때마다 먼저 일어나라는 멘트를 던질 타이밍을 고르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도 기다리겠다며 대화를 이어가던 사람들 사이에 정적이 흐를 때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칸막이와 빈자리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말이 없어졌다. 얘기를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혼밥을 시작했고 먹고 나면 바로 일어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자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곧 그들도 흐름에 동참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의 방식이 바뀌고 있었다.
그 이후, 한없이 느린 나의 손이 식판 위를 오가며 음식을 입으로 날랐고 양반의 여유로운 걸음걸이처럼 오물거리는 입은 재촉 없는 맛의 평가에 신중을 기했다. 세상이 난리가 난 통에 뜬금없이 평온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격차를 줄이기 위해 허겁지겁 먹던 버릇도 어느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작은 함께이지만 끝은 다를 수 있다는 안도감이 긴장상태에서 밥을 먹던 내게 편안함을 선사했다. 원하는 만큼만 집어서 원하는 만큼 씹는 행위가 얼마나 호사스럽던지, 배식 받아먹는 밥임에도 코스요리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내친김에 시작도 달리 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하던 계단 오르기 운동을 밥을 먹기 전에 시작한 것이다. 밥을 먹고 계단을 오르다 보면 속이 부대끼고 점심 종료 시간에 쫓겨 무리하거나 운동을 건너뛰기도 했는데, 빈속에 가볍게 계단을 오르내린 후 여유롭게 점심을 먹는 시도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대단한 만족감이었다. 운동에 충실할 수 있고 점심 내내 혼자이다 보니 한 시간 내내 오디오북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귀로 즐기는 한 시간의 독서는 하루의 일부분을 매끈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조금 더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고 잘 수 있었으며 즐길 수 있었다. 서로를 배려하느라 낭비하던 에너지를 조금 아끼는 것만으로도 각자의 시간이 값져진 듯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은 점심식사 후 긍정적 감정이 늘고 부정적 감정이 줄어든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얼마나 여유롭게 먹었는지, 식사 분위기가 어땠는지가 변화의 주요 요인이라고 했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모두의 만족감과 효율을 위해 가끔 왕따로 오해받더라도 혼밥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빨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아무래도 나는 복귀가 힘들 것 같다. 이제야 찾은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