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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투 Apr 19. 2019

어스

또 다른 나를 만난다면

-영화의 주요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공포영화는 좋아하지 않았다.

곡성은, 초반부는 그리 공포 영화스럽지 않아 마음 놓고 재미있게 보다가 그만 일주일간 밤잠을 설쳤었다.

하지만 곰곰이 돼 씹어 보니 곡성은 재미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공포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


'곡성도 봤는데 뭐...'


겟 아웃을 보니 '이게 공포..?'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실 겟 아웃은 공포영화로 분류되기에는 애매했다.

무섭다기보다는 '깔끔한'영화였다.


그래서 '어스' 또한 겁 없이 보려고 나섰는데..

영화표를 준 친구가 먼저 보고 난 후 '그 영화 정신건강에 안 좋아..'라며, 가급적 보지 말 것을 권고했다.

어떤 시사회에서는 상영 전 청심환까지 나눠주었다는 홍보성 기사도 있었다.

볼까 말까.. 많은 망설임 끝에 그냥 보기로 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미국의 지하엔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공간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게 사실인지, 아니면 허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인간띠 캠페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겠고..


부모와 딸, 아들 4인 가족은 바닷가 인근으로 휴가를 떠난다.

한사코 해변으로 나가길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해 바닷가로 향하지만

그녀에겐 자꾸만 어떤 징크스 같은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

'1111'이라든지 땡땡이 무늬에 정확하게 안착하는 원반 같은.

이 해변은 아내가 어린 시절 거울의 방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났던 충격을 간직한 곳이었다.

영화의 초반부 음악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기보다는 불편하고도 불안하게 만든다.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찢어지는 듯 기괴한 바이올린 소리가 기분 나쁘다.



그날 밤 가족의 숙소에 가족과 똑같은 모습의 붉은 옷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가위로 가족들을 위협한다.

이때부터는 심리적이거나 심령적인 공포보다는 보통의 일반적인 공포에 가까워진다.

이게 덜 무섭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숭이 같기도, 또는 개 같기도 한 막내아들의 닮은꼴은 불편했다.

이들은 1:1로 가족을 전담해서 목숨을 노리거나 괴롭힌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이들 가족에게만 벌어진 게 아니다.

함께 놀러 온 근처의 가족에게도 벌어졌고.. 급기야는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도플갱어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요즘 많은 홍보와 비방이 난무하는 가운데 재미있는 영화를 선택하기가 어려워졌다.

별점 테러나 경쟁 영화에 대한 악평과 댓글들이 심하다.


아내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지하세계로 들어가 또 다른 나와 맞닥뜨리는 모습은 꼭... 공포영화를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극장에 발을 들인 내 모습 같았다.

반전이 있다는 것을 얼핏 듣기는 했으나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살짝 충격을 받은 것도 좋았다.

그러니까 너무 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극장에 가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그 반전이 반전을 위한 반전만이 아니면 더 좋다.

내가 누구인지, 너는 누구인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홀라당 뒤집어 버린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영화를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로 보았다.

정치적 비유와 풍자보다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환기하게끔 이끌어주는 그런 영화.




회사 차고지가 얼마 전에 신당에서 훈련원공원으로 옮겨졌다.

훈련원 공원은 을지로 5가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예전에, 조선시대쯤 훈련을 하던 곳이지 싶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예전에 메디컬센터였고 나는 거기서 태어났었다.

태어난 곳 바로 옆으로 오니 뭔가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고만큼, 출근거리가 늘었다.

옮기기 전에는 6호선을 타고 약수에서 내려 걸어가면 그만이었는데

훈련원은 전철을 한번 갈아타야 한다.

처음에는 동묘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종로 5가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우리 차고지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지하'로 연결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신당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거기서 내렸다.

과연 3개 노선의 지하철이 교차하는 복잡한 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오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길고도 긴 지하도가 뚫려있었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좌우로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 지하통로.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통로는 거대한 우주선 모양의 DDP와 연결되어 있고 조금 더 가서 롯데와 연결되어 있었다.

각종 스포츠 유니폼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다시 우측으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빠지는 길이 나오고 한참을 더 가서야 훈련원공원 지하에 들어선 벤처센터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난다.

그렇게 많은 상가들이 있었음에도 어찌 그걸 몰랐을까.



역에서 주차장까지의 길이는 대략 570m. 정말 길다.

그러고도 지하통로는 을지로 4가 지하철 역을 지나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씩 비둘기가 드나든다.

지상에서 날아들었는지, 아니면 지하에서 올라왔는지 알 수 없는 비둘기들.

도시에서라면 토끼보다는 비둘기가 더 설득력이 높지 않을까.



지상에 있는 공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하의 벤처센터는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헤매기 쉬울 정도로 넓다.  

그런 벤처센터가 지하 1,2층을 차지하고 있고 지하 3층부터 지하 5층까지가 주차장.

지상의 작은 공원과 그보다 넓은 공간이 지하로 5개 층이나 있다니 뭔가 이상하다.

차를 몰고 지하로 내려갈 때 지하 5층까지 내려가는 것도 한 바퀴만 돌고 그대로 아주 기다란 4단 미끄럼틀을 타는 것처럼 한 번에 내려가고 올라오는 것도 참 독특하다.

우리야 지하 5층에 주차하도록 지정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5층에 차를 대지만 5층엔 차량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 넓은 공간에 토끼라도 몇 마리 돌아다닌다면 정말 기분이 묘해질 것만 같다.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훈련이라도 해야 할까.

출퇴근이 조금 멀어졌어도 은근 기대된다.

 


혹시라도 나를 닮은 누군가 나타난다면...  꼬옥 안아줘야지.


영화를 보여준 친 구가 ‘공포의 묘지’ 표 있는데 볼래? 하길래

“그건 진짜 무서운 거잖아..”

공포영화는 가끔 보는 걸로.

정신건강에 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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