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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투 Nov 29. 2020

12월의 대만 #4

대만에 우산 사러 왔어요


여행지로 타이베이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양명산이었다.

도시에서만 머물기보다는 트래킹도 해보고 싶었고, 대만엔 산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타이베이 근교에 산이 있었고 숙소를 정할 때에도 양명산까지의 교통편을 알아보았더랬다.

시먼에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양명산은 1,000미터가 넘었고... 게다가 활화산이란다!


대만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산행을 하기로 한 것은 예보상 비가 오지 않는 유일한 날이 그날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는 비비비비...

비가 와도 나쁘진 않은데 1,000미터가 넘는 산에서 비를 맞으면 좀 추울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호스텔 카운터에 물어보니 그날은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8시가 넘어 일어나서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삶은 달걀 2개를 챙겨 숙소를 나왔다.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스쿠터, 자동차들로 붐볐다.


중정 역에서 전철을 타고 타이베이 메인 역으로 이동해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타는 곳이 헷갈려 조금 헤매다가 10시가 넘어 260번 버스를 탔다.

종점까지 가야 하는데 그곳에 대학교가 있다고 하더니 학생들이 많아 빈자리가 없다.

꽤 가야 하는데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수가 없다.

대만에서는 대중교통에서 음식은커녕 물도 마시면 안 된다.


종점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마을 버스정류장 같은 곳을 기웃거리다가 한 청년에게 물었다.

양명산 트레킹의 출발점인 '소유갱'을 가야 하기에 "소유갱... 소유갱.."했더니

그는 여기서 타면 된다고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버스가 오기 전까지 주위를 잠깐 둘러보았다.

1,000미터가 넘는 산이었지만 이미 버스를 타고 많이 올라왔다.

그래서인지 산행을 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웠다.

버스가 도착하고...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 뒤로 가서 줄을 섰더니 아까 그 청년이 앞으로 오라고 한다.

아마 아까 처음에 내가 있었기 때문에 버스를 먼저 타라고 하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라는 눈치였다.

버스에 올랐다.


'마을버스'는 금방 소유갱에 도착했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렸다.

대기는 뿌얬고 구수한(?) 냄새와 함께 군데군데 땅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유황냄새를 직접 맡아보기는 처음.

그렇게 역하지는 않았다.


조금 오르니 아까 그 청년이 보였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오르는 게 꼭 나를 안내하는 것 같았다.



그 청년은 타이베이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였다.

우리나라에도 남자 간호사가 제법 있기는 하지만 흔하지는 않은 터라 조금 신선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해발고도는 꽤 높았지만 등산은 그리 어렵지 않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운.

산새가 우리 것과는 조금 달랐다.

기대했던 만큼의 '등산'은 아니었다.



청년의 이름은 '황유량'

너무 가까워지거나 너무 멀어지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앞서가다가 휴식을 취할 때면 나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여행지 추천을 부탁하자 다다운첸과 고양이 마을을 추천.

고양이 마을은 들어 본 것 같았고... 다다운챈이 어딘가 했더니 옛 모습이 남아있는 거리라고 했던가.

시간 내서 가봐야겠다.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았고 그 청년은 배낭 옆구리에 접이식 우산을 휴대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던 이유는 대만에서 사고 싶어서였다.

대만 우산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비도 많고 바람도 강해서 튼튼하고 좋은 우산을 만든단다.


 

청년은 정상에서 내려오는 도중 사라졌다.


내려온 곳은 냉수갱.

이곳은 활화산이 보이지 않았고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계단으로 흔적만 남아있다.

작은 호수 또는 늪이 있는 풍경이 예쁜 곳이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갔더니 등산객 몇 명이 줄을 서있었다.

아주머니 한분께 버스 경로를 확인하고 줄을 섰더니 이것저것 물으시면서 안내를 해주셨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한국? 일본 사람처럼 생겼어요..  한국 여자들은 왜 그렇게 얼굴이 하얘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남편분은 앞에 놔두고 내게 말을 걸며 대화를 이어가셨다.

아주머니는 버스에 타서도 내가 내릴 곳이 어디인지, 언제 내려야 하는지를 신경 써주셨다.

버스에서 내려 헤어지려는데 그녀는 뭔가 아쉬워하는 듯했다.

맛집이라도 안내해 주시려는 눈치였는데 '거리를 걷고 싶다'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저녁 먹으러 용캉제로.

명동이나 대학로 느낌이다.

상점과 사람들.. 대로의 한 블록 뒤편 골목에는 작은 가게들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유명한 샤오롱바오 가게는 줄이 길게 늘어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국숫집 한 군데를 골라 들어갔다.

오래되지 않고 깨끗한, 프랜차이즈 느낌이 풍기는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골랐다.

토마토 소고기 국수.

면을 고를 수가 있었는데 '슬라이스드'와 '누들' 두 종류.

추천을 부탁했더니 슬라이스드.

일반 국수면이 아닌 뭔가 색다를 것 같아 바로 결정했다.


주문을 마치고 옆을 보니 대만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탁자 위에 놓인 것은, 바로 우산!

우산을 살 계획이었기에 혹시 우산 가게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미안하지만 모르겠다고...


나온 음식을 보니 토마토 소고기의 맑은 국물에 두껍고 짧은 면이 들어있었다.

수제비도 칼국수도 아닌 것이 색달랐다.

국물은 토마토 스파게티 맛이 나는 게 감칠맛이 돌았다.

배도 고팠고... 입맛에 맞아 국물까지 싹 비우고 옆 자리에 새로 앉는 필리핀 여행객에게 추천까지 해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우산가게를 물어보았던 대만 사람이 근처에 우산가게가 있다고 알려준다.

아마 식사를 하는 동안 검색을 했었나 보다.

"씨에 씨에~"


우산 가게는 가까이에 있었다.

용캉제에서 두 곳의 우산 판매점을 보았다.

우산만 파는 가게가 깔끔하고 예뻤다.


그중 한 곳을 들어갔다.

주인은 아니고 알바로 보이는 점원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우산이 종류별, 가격별로 분류되어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접이식 자동우산.

생각보다 가격이 싸지 않았다.

대만의 물가는 우리나라에 비해 그다지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우산 하나에 우리 돈으로 거의 3만 원에 가까우니 한국에서 사도 괜찮은 놈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달러(대만달러)로 표시되어있어 무지 비싸게 느껴졌다.


알바생은 내가 서 있는 코너의 우산중 하나를 꺼내 펼쳐 보였다.

"촥" 펼치더니 물을 뿌려 보여주고 또 홱 잡아채 우산을 뒤집어버린다.

그렇게 까뒤집힌 상태에서 버튼을 누르니 다시 원상태로 잘 접혔다. 신기하게도.

대만의 기후가 비가 잦은 데다가 바람 또한 거세다 보니 우산 제작기술이 발달했단다.


마음에 들어 가격을 보고 흥정을 해보려고 해 봤지만 할인은 안된단다.

대만은 정찰제가 정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흥정 자체를 낯설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시 '대만에 우산 사려고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했으면 조금은 깎아주었으려나.


우산대가 묵직한 게 튼튼해 보였다. 

우산도 샀겠다, 내일부터는 비가 와도 괜찮다 싶었다.

아니 한 번쯤은 많은 비가 오기를 바랬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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