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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요원 May 03. 2023

우리는 부산에 짐짝처럼 내려졌다.

박완서 소설 <나목>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 아녜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 변화는 생기를 줘요. 1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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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쿠리, 담뱃대, 지게, 삼태기, 요란한 수가 앞뒤로 놓인 점퍼, 색이 바랜 조악한 천의 파자마, 갓 쓴 할아버지, 똥 통 멘 농부의 목각인형... 우리의 것이랍시고 내세운 물건들이 외국 사람, 아니 나에게 오히려 낯설고 정이 안 간다. 팔아먹을 것의 고갈, 그렇지만 팔아먹지 않고는 연명할 도리가 없는 상태, 그런 것이 바로 가난의 생탠가 보다.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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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몹시 춥던 날, 몇몇 가족과 피난짐이 실린 대형 트럭위에 어머니와 나는 마치 피난짐처럼 무력하게 실렸다. 큰댁에서는 그들의 피난길에 우리를 동반하는 것을 의무로 알았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우리는 부산에 짐짝처럼 내려졌다. 2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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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맴을 돌고, 커가면 술을 배우고, 사람들은 원래가 똑바로 선 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 권태롭고 답답해 못 견디게 태어났나 봐. 356p


박완서 장편소설, <나목>

이 책은 1970년 여성동아 공모에서 뽑혀 출간된 작가의 데뷔작이다. 작가나 이 소설에 대해 문외한 이었던지라 책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리고 이 책 <나목> 순으로 발간순서와는 거꾸로 읽다보니, <나목>을 읽는 처음 순간부터 이 책을 벌써 읽어버린 느낌이었다. 잘 몰라서 하는 얘기지만 이 책 <나목>으로 등단한 뒤, 그 내용을 토대로 하여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1, 2부로 나뉘어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두 소설도 그렇지만 한국전쟁이 남긴 아픔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특히나 피난길에 도착하여 그 느낌을 말한 표현, '우리는 부산에 짐짝처럼 내려졌다' 라는 말이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안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수단 내전 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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