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삶의 학교
세계여행을 한다고 하면 많은 친구들이 여행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느냐? 얼마나 생각하고 있느냐? 물어본다. 사실 나도 떠나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나의 대답은 조금 다르다.
'그냥 떠나라'이다.
만약 서른이란 나이까지 직장생활을 하거나 돈을 열심히 모았다면 세계여행을 떠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자금을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경험과 여행을 돈을 벌며 기다리는 몇 년의 시간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경제학과를 전공했지만 경제는 무시하고 살아왔다.
몰디브 리조트에서 일을 한 것이 첫 경제 활동이었는데 고정 월급은 300불 남짓, 나머지는 팁과 리조트 전체의 서비스 비용을 직원 수만큼 나누어 가졌다. 두 가지를 더해 평균 백만 원 정도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밀린 보험금, 치과 치료 등 대학 졸업 후 일 년간 밀린 고지서를 처리하니 통장 잔고는 절반으로 깎여 있었다.
네팔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고 생활비 명목으로 월급은 천 불로 고정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곳에 적응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어 국제적 사회적기업, Victorry fitness club을 만들었다. 이 체육관을 위해 일 년 동안 모은 돈을 모두 사용하였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여름방학 동안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해외봉사캠프의 매니저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위해 호주로 여행자금 마련을 위해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로 친구도 많이 만들고 돈도 많이 벌어서 멋지게 자전거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불운과 극복 의지의 부족으로 돈은 벌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빚을 내어 갈려고 했지만, 이자는 받지 않겠다는 아는 형한테 빌리기로 했다.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이 빚을 지며 세계여행을 떠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있다. 젊은 날, 시야를 확장하고, 십 년을 간직한 희망 목록의 달성을 위해서 떠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경제적인 걱정은 잠시 차순위로 밀어두기로 하고 떠났다. 이제 기차는 출발했고, 다음 역에 정차할 때까지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모르겠다. 돈이 먼저 내 발길을 멈춰 세울지, 약해진 마음이 먼저 멈춰 설지. 그저 다음역에 안전히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부족한 돈만큼 더 끈적하고 가난한 여행을 하면 될 것이다.
여행자금에 대하여 각자가 생각하는 적정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적정선이 현재에서 너무 먼 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며, 여행에 대한 마음이 아주 약해질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꿈을 양보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6개월간 아시아 40여개 도시에서 150~200만원으로 여행했다.
배낭여행을 함께 떠날 사람을 만났다. 송창섭, 오지탐사대를 통해 만난 형은 나와 공통점이 많았다. 운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리는 해병으로서 1년 이상을 같은 근무지, 백령도에 있기도 했다.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실행하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기 얼마전이었다. 창섭형은 중국을 오가며 보이차 사업을 하시는 정경원형님을 알고 있었고, 우연하게 동행을 하게 되었다. 함께 간 곳은 열암 송정희 서예가선생님의 자택이었다. (열암 선생님은 역대 3분의 대통령 휘호를 쓰셨고, 2006월드컵유니폼에 들어간 '투혼' 이라는 글씨를 쓰신 서예가 선생님이시다.)
경원형이 쌓아온 신뢰덕분이었을까?
젊은 두 청년이 세계를 여행한다고 하자 선생님은 커다란 붓을 집어 드셨다.
"자네 이름이 뭔가?"
"네, 박대하입니다. 큰 대, 강 하 자를 씁니다"
"큰 강... 큰 강에는 산이 없지!"
선생님은 나에게 '무산' 이라는 글귀를 주셨다. '무산'은 오를 산이 없다는 뜻으로 목표를 다 이루었다는 뜻이었다.
함께 간 창섭형은 '일귀'라는 글을 받았다. '일귀'는 하나로 나가 하나로 돌아 온다는 뜻이었다.
긴 여행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큰 선물이고 행운이었다. 형과 난 글씨를 연결하여 '무산일귀'로 액자를 만들어 각자의 집으로 보내어,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을 이루고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메세지를 대신 했다. 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며 여행의 동력으로 삼았다.
여행자금
세계여행을 한다고 하면 많은 친구들이 여행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느냐? 얼마나 생각하고 있느냐? 물어본다. 사실 나도 떠나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나의 대답은 조금 다르다.
'그냥 떠나라'이다.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몇 개월 열심히 돈을 벌었거나, 몇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거나 돈을 열심히 모았다면 세계여행을 떠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자금을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경험과 여행을 돈을 벌며 기다리는 몇 년의 시간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경제학과를 전공했지만 경제는 무시하고 살아왔다.
몰디브 리조트에서 일을 한 것이 첫 경제 활동이었는데 고정 월급은 300불 남짓, 나머지는 팁과 리조트 전체의 서비스 비용을 직원 수만큼 나누어 가졌다. 두 가지를 더해 평균 백만 원 정도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밀린 보험금, 치과 치료 등 대학 졸업 후 일 년간 밀린 고지서를 처리하니 통장 잔고는 절반으로 깎여 있었다.
네팔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고 생활비 명목으로 월급은 천 불로 고정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곳에 적응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어 국제적 사회적 기업, Victory fitness club을 만들었다. 이 체육관을 위해 일 년 동안 모은 돈을 모두 사용하였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여름방학 동안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해외봉사캠프의 매니저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위해 호주로 여행자금 마련을 위해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로 친구도 많이 만들고 돈도 많이 벌어서 멋지게 자전거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불운과 극복 의지의 부족으로 돈은 벌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빚을 내어 가려고 했지만, 이자는 받지 않겠다는 친한 형한테 빌리기로 했다.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이 빚을 지며 세계여행을 떠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있다. 젊은 날, 시야를 확장하고, 십 년을 간직한 희망 목록의 달성을 위해서 떠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경제적인 걱정은 잠시 차순 위로 밀어 두기로 하고 떠났다. 이제 기차는 출발했고, 다음 역에 정차할 때까지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모르겠다. 돈이 먼저 내 발길을 멈춰 세울지, 약해진 마음이 먼저 멈춰 설지. 그저 다음 역에 안전히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부족한 돈만큼 더 끈적끈적하고 가난한 여행을 하면 될 것이다.
여행자금에 대하여 각자가 생각하는 적정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적정선이 현재에서 너무 먼 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며, 여행에 대한 마음이 아주 약해질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꿈을 양보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삶 속에는 여러 선택이 있고, ‘도전’이라 불리는 선택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못 먹어도 고, 지르고 보자’ 등 일단 용기 있게 시작한 뒤에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치밀한 계획과 방법을 다 구상한 뒤에 그 일을 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중, 세상에 영감과 발전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첫 번째에 속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깨닫는다. 세상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과 무관한 것이다. 두 번째에 속하여 치밀한 계획으로 깨달은 여러 조건들의 부재는 포기와 더 친하다.
중국 단동을 시작으로 네팔의 에베레스트 트레킹까지 나는 6개월간 아시아 40여 개 도시에서 150만 원으로 가난한 여행을 했다.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기와 기록을 영어로 한 덕분에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여기에서 배낭여행의 기록을 마치고자 한다.
혹시,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주변의 권유가 있다면, 30KG의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시아 대륙을 누빈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상 초월 19금 이야기부터 영혼을 적시던 다양한 시간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