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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7. 2017

Part 6. 2 남극일기 #2

어머니의 하얀 트럭

매번 어디론가 길게 떠나기 전 부모님 집을 찾는다.


차가 없는 내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밀양역에 내리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바빠도 나를 마중 나오시는 부모님.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데리로 와주셨다.
언제부턴가 부모님을 만난 반가움 뒤 찾아오는 씁씁함이 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미소짓는 얼굴에 늘어난 주름을 시작으로 십년이 훨씬 넘은 낡은 하얀 트럭을 볼 때면, 떠돌이 생활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살아와 돈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모아두지도 돈이라는 것을 1년이상 벌지도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럽고 그것을 이해해주시고 못 난 아들을 믿어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보는 듯해 가슴이 아프다.


언제인가 몇 번은 무한한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가 부담스러워 혼자 밀양역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시간이 많은 백수의 입장에서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는 아들과 부모님에게 준비단계를 빼앗아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후에는 매번 이렇게 연락드려 몇 시에 도착이라고 마중을 부탁드린다. 
자식을 키우고 농사일을 하시는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언제나 바쁘시다. 그래서 집을 찾을 때면 반나절이라도 일을 도와드리려고 한다. 물론 이 생각이 편안히 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으른 육체는 고향집을 찾을 때마다 더 게을러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지만 그동안 농촌에서 커온 기억은 일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 속 센스를 작동시켜 도착하여 다시 떠나는 그 순간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이 생각은 종종 집에서 소파에 누워 편안히 쉬고 있으면 육체는 편안해도 정신은 편하지 않은 상태를 만들어 진짜 휴식을 방해한다. 
이제는 제법 철이 든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약속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려는 자발적 마음이 게으름을 이겨내어 일을 도와드리는 것이 쉬웠다. 그리고 쇼파도 더욱 푹신했다. 
저녁에 쉬고 있는데 술이 거하게 되신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집으로 들어오신다.


아! 오늘 저녁에도 술이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술상을 차리는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 친구분들과 바이주 한 병, 양주 한 병을 비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친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이렇게 걱정하시는구나'를 깨닫게 된다. 
술자리가 이어지고 술자리 이야기 주제가 정치, 경제, 자녀 걱정, 자랑을 넘어 인생, 철학, 종교로 넘어가면 이제는 끝날 때가 되어가는 것이다. 
술이 되시어 얼굴이 빨갛게 된 아버지의 인생관을 들으며 내 안의 아버지를 본다. 그를 통해 나를 본다.

부모님 집에서의 짧은 2박 3일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아침, 내 방랑 인생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는지 쿨하신 어머니는 잘 갔다 오라는 말과 함께 트럭에서 손을 번쩍 드시는 것으로 나를 보내어주신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별다른 인사도 없으시고 일을 하러 가신다. 
물론 그런 어머니를 보는 나는 서운하거나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열심히 사시는 것이 아들로서, 떠나는 자의 입장에서 마음이 편하다. 만약 떠나는 여행마다, 원정마다 어머니가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걱정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셨다면 마음 편히 떠나지 못 했을 것이다. 
그저 떠나기 전 서울에서의 끼니 걱정을 하시며 이른 아침 일어나셔서 간단한 밑반찬을 냉장고 옆 한편에 놓아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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