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코멘터리 / 별을 찾아서 1 – 온라인 식품유통
SUPIE 창업자 Sarah Balle (사진출처 – supplied)
2021년에 온라인 식료품 마켓으로 시작한 SUPIE 가 10월30일 갑작스럽게 서비스를 종료하였습니다. SUPIE 측은 pwc 를 Voluntary administrator 로 지명하여 사실상 청산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약 $3Million 정도가 400여 공급자들에게 지불되지 못하고 120명의 직원들도 급여가 밀려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Founder of Supie ‘devastated’ by closure of online supermarket
사실은 가장 최근에 망한 가설이어서 순서상 마지막에 다뤄보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SUPIE 뉴스를 접하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뉴질랜드 온라인 식료품시장의 이면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별을 찾아서 - 프롤로그 참조)
뉴질랜드는 뉴질랜드 소매협동조합인 Food Stuff 와 호주소유의 Woolworth 가 식품유통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시장지위를 이용하여 양사는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특히 팬데믹이후 과도한 가격인상을 통해 전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는 실정입니다.
SUPIE 는 두 거대 오프라인 업체에 대한 국민적인 반발과 저렴한 식료품에 대한 시장의 니즈를 확인하고 경쟁력있는 가격과 편리한 배송을 강점으로 한 온라인 마켓을 구축하려고 했었습니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도 과점 체제 개선을 위해 신규 업체의 시장 진입을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적인 전환을 꾀하고 있는 와중에 SUPIE 의 몰락은 독점적 시장지배력이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갖게 되는지를 반증하는 예일 겁니다.
New Grocery Commissioner gears up to monitor sector and competition
Supie failure puts spotlight back on dominant New Zealand supermarkets
정확하게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SUPIE 의 최근 실적은 6만여 회원에 약 $12M (약 100억원정도) 의 연매출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SUPIE 의 연매출에 턱도 없이 모자랐던 저의 온라인 식품유통 가설은 사실 편리한 배송에 더 큰 방점이 있었습니다. 가격은 소매점과 비슷하게 맞추고 온라인의 편리함만 강조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오프라인 소매점의 원가율은 60-70% 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설내내 원가율을 70% 에 맞추고 가격을 셋팅하였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바이지만 온라인에는 오프라인에 없는 원가 항목이 많았습니다. 특히 다루는 제품이 주로 신선식품이었기 때문에 주문에 대한 포장비가 원가에 반영되어야 했었고 폐기율 또한 원가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또한 온라인의 특성상 고객획득비용 (CAC : Customer Acquision Cost) 이 지속적으로 지출되어야 합니다.
30%의 마진으로 포장비와 제품폐기를 감당하고 온라인 마케팅까지 진행하는 건 산술적으로도 끝이 빤히 보이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물론 해결방안이 없는 건 아닙니다. 주력판매상품의 직접적인 공급자가 되거나 PB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지요. 대형 마트들이 농장과 직접 계약하거나 지속적으로 PB 상품을 개발하는 건 그들도 원가율에 대한 압박이 크기 때문일겁니다. 하지만 소규모 사업자에겐 그 또한 큰 리스크일 수 밖에 없습니다.
SUPIE 의 연매출을 직원수로 나눠보면 1인당 매출액은 약 10만불에 불과합니다. 10만불로 물건값을 지불하고 인건비를 지불하면 재투자에 필요한 현금이 없을 건 굳이 장부를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모자라는 현금은 끊임없이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했을 겁니다. 서비스 종료의 직접적인 배경이 투자자들의 투자중단이라고 했으니 당연한 인과관계이겠지요. 저의 가설 또한 똑같은 결론이었습니다.
출처 : envato
SUPIE 의 창업자는 대형마트에 농작물을 공급해왔던 집안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저의 가설은 사실 식자재에 대한 이해도가 1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마땅히 전문인력으로 팀을 꾸려야 했지만 최소기능상품 (MVP – Minimum Viable Product) 을 출시하고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취급하는 제품의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보관에 대한 이슈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고객의 이해정도 만큼도 안되는 얄팍한 밑천으로는 리텐션을 유지할 만한 풍부한 고객서비스 역량이 딸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육류나 해산물전문의 버티칼이 아니고 종합 식료품마켓을 지향했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군이 필수조건이었는데 전문지식의 부족은 제품의 큐레이션에도 상당한 장애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가공식품이 아닌 생물의 경우 계절적인 공급과 수요요소가 있고 공급가 또한 계절적인 등락이 있음을 알게 된 건 저의 가설이 막장으로 치닫기 시작한 시점이었지요.
원가측면에서나 고객서비스차원에서 혹은 제품의 큐레이션 측면에서 식자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끊임없는 공부가 절실한 대목입니다. 몰라도 하면 된다라는 무지하고 불성실한 신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B2B 비지니스의 관성에 젖어 있다 보니 마케팅에 대한 시각이 많이 올드스쿨적입니다. 광고 홍보나 마케팅의 도움없이 회사자체의 역량만으로 일정부분 성과를 이뤄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케팅은 언제나 후순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B2C 온라인 가설을 세우면서도 기본적인 홍보정도면 다 될 줄 알았습니다. 온라인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이 지표로 바로바로 확인되는 점입니다. 이용 고객수, 재구매율, 월간 활성이용자 등등. 어느 순간부터 회원수가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패시브한 홍보만으로는 한계에 왔음을 느꼈지요.
마케팅회사와 계약을 하고 일체의 마케팅 행위를 아웃소싱 했습니다. 마케팅 회사는 가장 기본적인 검색어 광고부터 컨텐츠 마케팅까지 동시에 진행 했습니다. 회원수와 매출의 증가가 있었으나 일정기간이후 다시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copy & paste 식의 홍보가 한계에 왔음을 감지하였습니다. 인하우스의 마케팅 역량이 전무한 상태에서 외부 의존만으로는 돈과 시간의 낭비만 심화되어 가는 형국이었습니다.
뒤늦게 자체 마케팅으로 전환을 하였지만 브랜드를 각인시켜가는 과정에 소홀한 채 광고와 홍보에만 전념하다보니 객단가와 재구매율은 떨어지고 고객획득비용은 계속 상승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되었지요.
불과 5백만의 인구, 난공불락의 양강체제 그리고 낮은 온라인 침투율등 식품유통시장의 온라인 전환은 그 어느것보다도 어려워 보입니다. 제2의 SUPIE 가 나온다고 해도 쿠팡처럼 거의 무제한의 현금과 시간을 쏟아 붓지 않는 한 수익성이 있는 비지니스로 성장시키기는 요원할 겁니다.
그렇지만 SUPIE 의 사용자 리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묘한 기시감 같은 걸 느꼈었는데 그건 온라인에서의 고객 경험이 SUPIE 나 저의 가설에서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단히 유사했기 때문일겁니다. 기술적으로 개선이 가능한 몇가지 불만사항들을 제외하고 고객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피드백은 온라인 식품유통업의 출현을 기대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적은 인구, 과점시장 그리고 낮은 온라인 침투율이 뉴질랜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한다면 뉴질랜드 전자상거래 시장의 현주소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오프라인이 병행되어 고객 접점을 다양하게 하고 온라인에서의 경험을 오프라인에서 심화시키는 기술적인 시도가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오프라인 업체가 온라인으로 확장하는게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일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DNA 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오프라인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온라인을 주도하는 인사이트 충만한 스타트업의 출현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