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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03. 2017

누군가를 지켜냈다는 것. 영화 <택시운전사>

1997년이었다. 당시 학생운동으로 수배 중이었던 선배는 광주에 가고 싶다고 했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거긴 그의 고향이었다. 나는 꽤 어렵사리 차를 구해서 선배를 광주로 무사히(!) 데려다줄 수 있었다. 그리고 형은 그곳에서 죽었다. 처음에는 아파트에서 형사를 피해 달아나다가 추락사했다고 했지만 그 죽음의 원인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 후로도 몇 년이 지난 뒤였다. 형은 광주에서 대한민국의 공권력에게 맞아 죽었다. 하필 추석이었던 그날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았다. 나는 형을 죽이기 위해 광주까지 데려다준 것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이런 주제에 나는 내 발로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저 영화 한 편을 보려고 극장에 들어가 불이 꺼지고 화면이 밝아지는 순간. 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보러 온 건지를 계속 스스로에게 추궁했다. 다행히 팝콘을 사지는 않았다. 일어나 나갈 수도 없었다. 도망을 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서는 나와 다르게 그를 구했다. 그래서 난.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영화가.     


영화 택시운전사는 만듦새를 가지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훌륭한 점을 꼽기도 어렵다. 그저 평범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좋지만 많이 인상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 몰입한다. 영화 속 그 택시운전사가. 주먹밥을 나누어주던 소녀가. 막둥이가. 살아남기를. 노래를 못하는 재식이가 결국 대학가요제를 나가기를. 애타게 바란다. 결코 해피앤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얼굴을 아는, 혹은 이름을 아는 그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군함도 속 아름다운 배우들이 많이 멋져 보이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 속 배우들은 외모와 상관없이 모두 멋지고 사랑스럽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감독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서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는 다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막바지에 갑자기 등장한 택시운전사들이다. 어디선가 줄줄이 튀어나와 기자가 탄 차를 지키는 장면은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그 장면에 관대하다. 나는 이 장면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해피앤딩이 될 수 없는 사건에서 누군가를 지켜내는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 그들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바를 결국 지켜낸다. 광주에서 많은 이들이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지키지 못했고 같이 죽었다. 모두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지켜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택시운전사들은 그 위기의 순간에 마법처럼 나타나 구해주는 영웅으로서 그려져도 마땅하다. 개연성은 개나 주자.       


모든 콘텐츠는 그 콘텐츠가 위치한 맥락에서 기능한다. 시대의 맥락, 사회적 맥락, 개인적인 역사의 맥락. 1980년의 광주에서. 1997년의 광주에서.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또 얼마나 많은 날짜와 장소에서 우리는 지켜내지 못했을까. 지켜내지 못했던 경험을 동시대의 아픔으로 기억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래서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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